MB 개헌, 정운찬 역할론 부상…‘박근혜 옥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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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개헌, 정운찬 역할론 부상…‘박근혜 옥죄기’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1.2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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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낮은 지지도 만회키 위해 친이계로 이동
친박계 ‘정운찬 비토론’…친이계는 엇갈린 평가
개헌 고리로 정운찬 역할론 부상…실현 가능성은?
MB가 또다시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친박계와 범야권이 현실가능성 제로라고 압박해도 그는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MB는 지난 23일 한나라당 수뇌부와 이재오 특임장관, 임태희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당·정·청 만찬회동에서 “당이 개헌 논의를 제대로 해달라”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MB의 특명인 셈이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당초 오는 25일로 예정된 개헌 의원총회를 내달 8∼10일로 연기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개헌동력 상실을 거론하며 ‘개헌 불가론’을 설파했지만 친이계 속내는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 반(反)박 진영조차 사분오열돼 있는 개헌 여론을 수렴하고 내달 8일까지 개헌 찬성여론을 더 확고히 만들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라는 게 친이계 내부 분위기다.

친이계는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을 중심으로 또 한번 개헌 판을 뒤흔들 태세다.이 장관이 개헌을 진두지휘한다면, 물밑작업에서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역할론이 불거지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이 ‘더 오른쪽으로, 혹은 더 왼쪽으로’의 갈림길을 두고 갈팡질팡할 때, 친(親)이명박을 택한 정 위원장. 분권형 대통령제를 고리로 한 그의 역할론은 실체가 있을까.
또 ‘포스트 이명박’을 꿈꾸는 정 위원장의 행보를 친이-친박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사퇴의사를 표명한 정운찬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분권형 대통령제와 정운찬…조합 가능할까?

“장미를 논에 옮겨 심은 것과 같은 모습인데 꽃이 필지 의문이다.” 정 위원장이 MB정부의 총리로 내정됐을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이 같이 말했다. 노 전 대표의 말대로 그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정 위원장은 학자 시절 소신과는 달리 총리에 임명되자 4대강 사업의 옹호자를 자처했고 세종시 수정안 역시 무수한 상처만을 남긴 채 소모전으로 일관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앞길을 단언하기 힘들다. 그래서 종종 각본 없는 드라마가 탄생된다. 차기 대선 판의 태풍의 눈으로 불리는 킹메이커 이재오 장관의 의중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 그가 주도하는 개헌 판이 어디로 흐를지 단언키 어렵다.
 
정 위원장의 대권행보에 ‘이재오 역할론’이 불거지듯이, 친이 주류의 개헌론에 ‘정운찬 역할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실제 이 장관이 주도한, 친이계 개헌 비공개 회동이 지난 18일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친이계가 추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개헌 동력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개헌을 매개로 친박계에 친이의 세(勢)를 과시했다. 이날 친이계 40명 의원들은 당내 개헌논의기구 구성 후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데 동의했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개헌성사를 위한 전위대 성격의 강력한 추진위 구성을 제안했지만 친박계와 범야권의 반발을 우려, 끝내 무산됐다.

정 위원장의 역할론은 여기서 등장한다. 개헌에 불이 지펴지면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당 제3후보론으로 거론됐던 정 위원장에게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범야권의 동조를 이끌어 내는 역할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내 비당권파, 자유선진당 내 반(反)이회창 세력 등을 분권형 대통령제를 매개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헌 성공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론이다.

또 개헌 카드는 친이계가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박 전 대표에 의한 정권재창출은 ‘친이 대학살’과 다름없다. 친이계가 권력 1인자로 등극할 수 있는 길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밖에 없는 셈이다.
 
정치공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친이계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다. 때문에 친이 주류에서는 세종시에 이은 정운찬 VS 박근혜 혈투의 재연을 원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실패한 정 위원장에게도 개헌 정국은 여권 잠룡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왼쪽)과 이재오 특임장관.     ©뉴시스

정운찬 둘러싼 친이-친박의 속내는?
 
정 위원장을 바라보는 한나라당 내부의 속사정은 다소 엇갈린다. 대권잠룡에 포함될 수 있다는 긍정론부터 중량감이 낮다는 비관론까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친이계는 긍정과 부정이 섞여있고 친박과 비주류 의원들은 정운찬 대안론에 대해 강한 반발심이 엿보인다.
 
MB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인 박계동 전 의원은 기자에게 “정운찬 위원장이 차기 대권 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운찬 대안론에 불을 지폈다.
 
반면 한 친이계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부결 전까지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대권잠룡에게 가장 중요한 권력의지가 그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운 좋게 총리직에 오른 뒤, 동반성장위원장까지 오르지 않았느냐. 편한 길만 고수하면 권좌에 오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친박계 의원은 “정 위원장은 총리시절 수차례의 여론 수렴과 여야 합의를 거친 세종시법을 두고 국가가 거덜 난다고 비판하지 않았느냐. 그것으로 그의 정치력 검증은 끝난 것”이라고 쏘아 붙였고 다른 친박계 의원도 “정 위원장은 당내 자신의 계파라고 할 만한 의원이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뿌리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 했다.
 
여기에 당내 비주류를 자처하는 홍준표 최고위원의 정운찬 때리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 총리는) 부처가 다 갈수도, 안 갈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 간다는 것은 위헌이고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총리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발언 자체가 진중하지 못하다. (2009년 12월 9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 “인사청문회를 본 결과 정 총리는 선출직으로 적합하지 않다. 대권후보로 보지 않는다. (같은 해 12월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김빠진 맥주로 건배를 할 수 있느냐. 정 총리가 유임된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얘기다. (2010년 7월 21일 MBN 뉴스M)”
 
홍 최고위원뿐 아니라 당내 중도파 의원들의 시선도 냉소적이다.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정 위원장과 이념적 포지션이 겹치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부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일종의 반감까지 섞여 있다.
 
실제 2009년 9.3 개각 당시 ‘정운찬 총리’ 카드는 예정에 없던, 일종의 깜짝 카드였다. 정 위원장은 학자시절 케인지안 1세대인 조순 교수의 수제자로서 MB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해 왔고 2007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당 대권 후보로 거론됐다.
 
그런 그가 신자유주의 노선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MB정권의 행정부 2인자 자리를 수락했다. 과연 당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친이계 의원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제1안으로 충청 총리를 찾았다. 그래서 나온 카드가 심대평 카드다. 하지만 이회창 대표의 반대로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총리 추대가 무산됐다. 청와대에서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모두 고령의 인사였다. 심대평 카드가 무산될 바에야 차라리 젊고 참신한 총리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기류가 (청와대 내부에) 흘렀다”고 전했다.
 
결국 ‘정운찬 총리’ 카드는 충북에서 지지도가 높은 박 전 대표와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를 흔들려는 포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MB의 정운찬 카드는 미완에 그쳤다. 박근혜 대세론을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여권 내 대권구도의 다각화에도 실패했다.
 
‘포스트 정운찬’으로 내세웠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낙마 이후 박 전 대표의 독주 체제는 더욱 심화됐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친이 주류에서 정운찬 대안론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친이재오계가 대권잠룡의 다자구도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정 위원장이 총리 시절 야권으로부터 사퇴요구를 받을 때 사실상 정 위원장을 보호했다. 그 이전부터 정치권 안팎에서 정운찬 총리 카드에 이 장관의 막후 역할론이 불거졌기 때문에 이 장관의 정운찬 보호는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어차피 아직까지 여권 내 박근혜 대세론에 필적할만한 잠룡이 없기 때문에 친이 주류는 정운찬 카드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게다가 ‘정운찬과 이재오’의 결합은 한나라당 대권 구도의 판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빅카드다.
 
친이 주류의 정권재창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은 이 장관으로서는 박 전 대표를 고립시킬 수 있는 ‘수도권-충청권’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는 카드도 정운찬 대안론밖에 없다.
 
정운찬 카드는 박 전 대표를 영남에 포위시킨 채 나머지 비영남권을 묶을 수 있는 일종의 승부수인 셈이다.
 
정 위원장도 최근 YS를 비롯해 친이 주류 등과도 정치적 스킨십을 강화하며 본격적인 조직력 다지기에 들어간 이유도 친이계 내부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또 정 위원장이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 MB에게 ‘선(先)청와대 인적 쇄신’, ‘후(後)대폭 개각’을 요구하는 거사설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당내 소장파에게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지목, 청와대 실세들의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7월 29일 “우리 정치 지형은 너무나도 험난하다”는 말을 남기며 10개월 단기 총리라는 불명예 퇴진을 선고 받은 정 위원장.
 
과연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 화려한 귀환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고 영원한 유배생활을 떠나게 될지, 국민들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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