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 Year
스크롤 이동 상태바
Senior Year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8.12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ean's Office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교무실로 끌려오는 것이 너무 일상화 돼 버렸기에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낌새가 달랐다. 느낌이 안 좋았다.

3달 전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고등학교 졸업반Senior 성적이 대학교 진학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2학기가 끝나기 전 이미 대학교 합격발표가 나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C학점만 넘어준다면 무리 없이 대학교로 진학이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미국 학생들은 Senior Year를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일에 투자하거나 그동안 갖지 못했던 자유의 시간을 맘껏 만끽하는데 사용한다.
 

 
나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에서 합격통지서를 이미 받아 놓은 상태였기에 자유를 만끽하는 옵션을 택했는데, 그 동안 무리해서 공부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인생을 즐겼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됐다. Senior Year때는 뭐든지 해도 다 용서받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오로지 할 일은 즐기는 것…….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내 몸을 지탱해주고 있던 나사들이 몇 개씩 풀리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는 더 이상 공부 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컨닝을 일삼았다. 예전에는 족보Old Test(과거에 출제되었던 시험지로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많기에 학생들의 시험공부 가이드가 되곤 했다)를 달달 외웠지만 이제는 족보를 컨닝 페이퍼로 만들어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한번 편안한 길을 찾으니 어렵고 굴곡 있는 길로 돌아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 돼 버렸다. 오히려 더욱 편안한 길을 찾으려고만 했다. 나사가 몇 개씩 더 풀리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컨닝 페이퍼를 만드는 것조차 귀찮았다. 시험시간이면 A4용지 뭉텅이로 이루어진 족보를 교실로 그냥 들고 가서 시험지 밑에 깔고 아예 대놓고 베끼기 시작했다. 관대하기로 유명한 English IV의 Mr. Bunce도 엄한 눈빛을 보내며 헛기침을 할 정도였다.

결국 내 이런 '용기' 때문에 정학Suspension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정학으로 내 나태함과 무모함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 무모한 행동들은 점점 도를 지나쳤다. 나는 그 시절 학급 Vice-President(부회장)이었으므로, 아이들에게 내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판단아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를 퇴학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 와중에 기숙사 사감 중에 한명이 나를 노려보며 진지하게 한 말이 아직도 내 뇌리를 스친다.
"너를 보면 악마의 기운이 느껴져."

그런 부정적인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더욱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Anti-American 성향에 '귀차니즘'의 끝을 보는 나에게 또 한 번의 유혹이 찾아왔다.
AP Calculus BC Class. AP Course는 대학교 수업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듣고 대학교 학점을 이수하는 과정이다. AP과목을 들으면 GPA(학점)계산 시, 1등급이 더 올라가므로(일반과목 A학점=4.0, AP과목 A학점=5.0) 공부 잘하는 학생들한테는 필수적으로 들어야 되는 Course라 할 수 있었다. AP과목들은 필수 이수과목이 아니었으므로 F를 맞으면 단순히 Drop만하면 되는 과목이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받아먹기만 했기에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몰랐다. AP Calculus 쪽지시험Quiz시간 이었다. 성적에 별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쪽지시험으로서 간단한 다섯 문제로 이루어져있었다. 별생각 없이 옆 중국학생 것을 그대로 베꼈다.
 
성적이 F였기에 공부를 하지 않고 C학점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컨닝뿐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대학진학이었기에…….

Dean's Office 
"Jay, 여기 와서 앉게나."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Mr. Compton과 교장 선생님Headmaster이 손짓했을 때, 최악에 상황이 순간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 좀 갖다 주세요."
교장 선생님이 Mr. Compton에게 부탁했다. 이어 Mr. Compton은 종이 두 장을 갖고 왔다. 종이를 보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시험지와 내가 베꼈던 중국 학생의 시험지였던 것이다.

"여기 두 개를 보게나. 모든 답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나?"
"……."
"우리는 많은 기회를 주었네. Cheating은 미국 사회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야. 게다가 자네는 학급 부회장이 아닌가? 아이들한테 끼칠 영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나? 그래서……."

나는 불행히도 다음에 올 말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네를 이 학교에서 퇴학Expel시키기로 결정했네. 졸업이 2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어."

결국 퇴학이었다. 퇴학당했던 사람들 말에 의하면 퇴학당하면 보통 울음이 나온다는데 나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들을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진심을 다해 빌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화조차 나지 않았다. 무언가 묵직한 느낌뿐이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멍하니 허공만 응시한 채,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앞으로 졸업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퇴학당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겠네. 옆 학교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USC가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야"
단 2달만 있으면 졸업인데……. 막막한 감정이 밀려와 억울한 감정을 압도해버렸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기엔 너무나 허탈하고 막막했다. Dean's Office를  빠져나오기 전,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Jay, 자네는 인생을 살면서 쉬운 길Short cut만 찾아왔네. 하지만 인생은 쉬운 길로만 갈수는 없어. 어려운 길로 뛰어들어 도전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네. 자네는 험난한 길을 뚫고 나아갈 능력이 있는 친구야. 앞으로 인생에서 행운이 있길."

그토록 미웠던 교장 선생님……. 나와는 앙숙과도 같았던 교장 선생님이 마지막에 던진 말은 내 가슴을 후벼 팠고 아직까지도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힘들어서 쉬운 길을 찾고자 할 때면 항상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되짚어보곤 한다.

Dean's Office를 벋어나며 만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후련함 같은 게 느껴졌다. 앞으로 험난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2달만 고생하면 USC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애써 내 자신을 위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