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 직전’ 한국당, 돌파구가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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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멸 직전’ 한국당, 돌파구가 안 보이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6.18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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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쇄신’ 필요성에는 공감…현실적 방법론 부재가 문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지방선거 후 한국당이 보여준 일련의 대처들은 강도 높은 ‘인적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시사오늘 그래픽=김승종

6월 13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자유한국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 지역은 대구·경북(TK) 단 두 곳. 한국당 당사는 정적(靜寂)에 휩싸였다. 탄식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숨 막히는 침묵은, 홍준표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끝났다. 그리고 홍 대표의 퇴장은, 한국당이 무거운 숙제를 떠안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과제를 받은 한국당은 선거 다음 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14일,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15일 오전에는 몇몇 초선의원들이 중진의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비상의원총회에서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결정했고, 의총이 끝난 뒤에는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모여 무릎을 꿇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인적 쇄신’ 필요성에 공감

지방선거 후 한국당이 보여준 일련의 대처들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하고 있다.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이른바 ‘친박 청산’을 해내지 못한 채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른 것이 연이은 대패(大敗)로 연결됐다는 진단이다.

김성태·성일종·정종섭·김순례·이은권 등 한국당 초선의원 5명은 1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보수 정치 실패에 책임 있는 중진들은 정계에서 은퇴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중진들도 당 운영 전면에 나서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권한대행도 이날 오후 열린 의총에서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뒤에서 다른 생각하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 보수를 청산하고, 노욕에 절은 수구 기득권을 모두 버려야 한다”며 “물러날 분들은 뒤로 물러나고,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곪아 터진 아픈 상처를 두려워 외면하지 말고, 후벼 파내고 썩은 고름을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18일에는 중앙당 해체를 선언하면서 “당의 혁신과 쇄신, 인적청산 등 많은 내용들은 전권을 가진 혁신비대위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혁신비대위원장이 처절하게 환부를 도려내 수술하고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당내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홍 전 대표 역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지난 1년 동안 당을 이끌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비양심적이고 계파 이익을 우선하는 당내 일부 국회의원들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제명은 2/3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이를 강행하지 못하고 속 끓이는 1년을 보냈다”고 술회했다.

이어서 그는 “이런 사람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한국 보수 정당은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이라며 “가장 본질적인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고 지적했다. 홍 전 대표를 비롯해 김 권한대행, 초선 의원들까지 인적 쇄신을 유일한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 정치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한국당이 내놓는 방법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 뉴시스

‘물갈이’ 방법 마땅치 않아

문제는 방법론이다. 현 상황에서 한국당의 인적 쇄신 압력은 혁신비대위를 통한 하향식과 초선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상향식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두 방법 모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18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 인명진 위원장과 류석춘 위원장이 친박 의원들을 출당시키려고 했는데 결과가 어땠느냐”며 “또 김용태 의원이 혁신위원장 맡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기자분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홍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한 말에 일리가 있다”며 “지금 당헌·당규로는 누가 와도 인적 쇄신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6년 12월 구성된 ‘인명진 비대위’는 일부 친박 의원들을 징계하는 수준에서 활동을 마무리했으며, 2017년 7월 출범한 ‘류석춘 혁신위’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는 데 그쳤을 뿐 서청원·최경환 의원 출당에는 실패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은 윤리위원회 의결 후 의원총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확정한다’는 한국당 당헌이 혁신위 활동의 한계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상향식 압력’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한국당 초선 의원들은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같은 과거의 소장파들과는 다르다”면서 “남원정은 당내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고 미움을 살 정도로 캐릭터가 뚜렷했던 사람들인데, 지금 초선 의원들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들은 전부 친박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 않나”라며 “그렇게 (국회에) 들어갔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냈으면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이러면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상향식) 인적 쇄신은 안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천은 2020년…당분간 위기 지속될 듯

실제로 지난 15일 초선의원들의 성명서가 발표되자,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총선 때 ‘진박 인증’ 모임과 사진까지 제시한 정종섭 의원을 비롯해 초선 5명이 ‘중진들은 정계 은퇴하고 결단을 내리라고 했다”며 “홍 대표 시절 입 한 번 뻥긋도 하지 않았던 이름만 초선인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한당 초선들은 ‘중진 찜쪄먹는 노회한 초선’들이다. 이들은 홍준표 대표의 막말에 버금가는 자한당 궤멸의 진짜 책임자”라며 “그렇게 보수가 걱정된다면 친박 초선부터 친박 중진 껴안고 같이 사라져 달라”고 조롱했다. 앞선 관계자가 지적한 대로, ‘침묵했던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의총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날 의총에서 김무성 의원은 “새로운 보수정당 재건을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전문가들은 김 의원의 총선 불출마가 차기 당권 도전을 위한 정지(整地) 작업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인적 쇄신’과는 거리가 먼 행보라는 의미다.

몇몇 중진들 역시 의총 후 ‘모종의 결단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사퇴한다고 해서 상황이 수습되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저런 수습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현실화되기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18일 김 권한대행이 중앙당 해체를 선언한 데 대해서도 재선의원 15명이 의총 소집을 요구하며 격하게 반발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심지어 원외당협위원장이 중심이 된 ‘한국당 재건비상행동’은 성명을 내고 “김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 참패의 책임과 홍준표 전 대표의 전횡에 대한 협력에 엄중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할 대상자”라고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당의 위기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수 혁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적 쇄신을 단행할 방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 혁신비대위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구성됐던 세 차례 비대위·혁신위와 마찬가지로 당내 세력 다툼과 당헌·당규의 한계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정풍(整風) 운동은 그 중심이 돼야 할 초선의원들의 태생적 약점이 장애물이다.

이와 관련해 앞선 한국당 관계자는 “대규모 인적 쇄신이 가능한 공천 작업은 2020년(제21대 총선이 치러지는 해)이나 돼야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며 “도저히 방법이 안 보인다.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뾰족한 수가 없지 않겠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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