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영을 넘어 이슈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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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영을 넘어 이슈를 선택했다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8.06.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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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보수, 내부부터 복원해야 새 장이 열린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6·13 지방선거 후 야권은 충격에 빠지고 여권은 표정관리에 바쁘다. 언론은 보수의 몰락이라고 말한다. 보수는 몰락한 것일까? 보수의 참패라면 몰라도 보수의 몰락은 아니다. 참패는 이슈 경쟁에서 패배를 의미하지만, 몰락은 진영의 붕괴를 의미하고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가 보수·진보세력 간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져 정당의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민심이 진영을 넘어 이슈를 선택한 극단적인 결과다.

이념이 아닌 이슈에 반응했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이슈에 따라 언제나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 여당이 긴장해야하는 이유고, 반대로 보수 야당이 보수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 고심해야하는 이유다. 패배한 야당이 인적청산이라는 과거의 전철만을 답습하면서 내부적 갈등만 증폭시킨다면 민심의 이반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당 내 탄핵 찬성세력과 반대세력이 한데 모여 치고 때리는 한 마당 굿판을 벌여서라도 상대에 대한 미움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화해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대중정당(mass party)이 이념에 기초한다면 포괄정당(catch all party)은 이슈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한국의 정당이 전투적 대중정당의 시대에서 경쟁적 포괄정당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것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토대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 결과가 지방선거가 아니고 총선의 결과였다면 정치권은 급진적 변화와 혼돈에 몰릴 상황이지만, 지방선거의 결과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여유를 갖고 상황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야당의 경우 여론을 의식해 쫓기듯 변화를 시도한다면 그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 대한 총괄적인 분석을 떠나서 세간의 관심을 끈 몇 가지 쟁점을 이야기해보자. 첫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등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일부 지역위원장들과 언론이 우리사회에서 다당제의 한계와 양당제로의 복귀를 거론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남북 관계의 변화와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쓰나미처럼 전국을 휩쓸면서 나타난 단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2004년의 탄돌이 현상과 유사하게 2018년 문돌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중소 정당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당을 해체하고 거대 정당과 합당을 모색한다면 정치적으로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오히려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양 세력 다당제 하에서 분명하게 자당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필요하다면 합당보다는 연대와 협치를 도모하는 것이 좋다. 차기 총선까지 2년 가까이 남았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

둘째, 논란에 휩싸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당선이다. 이 후보의 당선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거나,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겼다거나, 묻지마 투표의 결과라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럴까? 그것이 다일까?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 당선자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두 사람 모두 막말에 있어서 순위를 다퉜지만 선거 결과 한 사람은 당선됐고 한 사람은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어떤 차이가 다른 결과를 가져 왔을까? 필자는 이슈에 대한 메시지의 차이로 본다.

이 당선자의 경우 포지티브한 메시지를 열정적으로 구사한 반면 홍 전 대표는 네거티브한 메시지를 야비한 비아냥으로 표현했다. 차량 유세 현장에서 유권자들의 반응을 보면 국민들의 표심을 알 수 있다. 후보자들로부터 지원을 거부당한 홍 전 대표와 달리, 이 당선자의 경우 선거 운동원들이 먼저 감동하고 유권자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에서 메시지 효과를 낮게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이 당선자의 경우 쉽고 강렬한 메시지로 네거티브 이미지를 잠재웠다. 진행 중인 이 당선자의 의혹과 관련된 법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선거가 시작되면 정당 간 이슈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이번 선거의 경우 야당은 제대로 된 이슈 하나 제시하지 못한 채 여당이 제시한 이슈의 문제점만을 제기하는 양상이 되었다. 가치 경쟁에서 패배하고 이슈 선점을 놓친 야당의 한계가 노정된 선거였다. 이슈를 선점하는 측이 주도세력이 되고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야당이 이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차후 더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인적 청산보다 보수의 가치 재정립과 방향 설정에 심혈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당 내 리더십도 보이지 않고 보수의 가치를 공유한 주도세력도 부재한 상황에서 보수정당의 전략적 선택은 보수 내부의 총질이 아니라 고통의 나눔이어야 한다. 보수의 상처는 외부의 치유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복원되어야 한다. 피하지 말고 서로 만나 화해해야 한다. 탄핵의 질곡을 넘어야 보수의 새 장이 열린다. 상처를 감출 필요가 없다. 새 살이 돋으면 상처는 떨어져 나간다.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국민 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현)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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