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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YS와 JP 가는 길
오열의 무게감과 정치의 ´허업´
2018년 06월 27일 20:58:47 윤진석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지난 2015년 11월 22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YS(김영삼) 가는 길엔 오열(嗚咽)이 낭자했다고 전해진다.

"김영삼과 그들은 하나였다"라는 제목의 <시사오늘>이 쓴 ‘YS 조문기’를 잠시 옮기면 이렇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자 장례식장 입구에서 “어이구, 어이구”하는 곡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35분. 백발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었다. 이 모습을 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다가가 최 전 장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최 전 장관은 문 대표가 안중에 없었다. 최 전 장관의 시선은 빈소 안의 YS 영정을 향하고 있었다."

최형우 전 장관은 YS 정치 60년史의 오른팔이자, 정치동지였다. 사선(死線)을 넘나들기 일쑤였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이 선포된 직후였다. 중앙정보부는 ‘최형우’를 긴급 연행했다. 그들은 ‘김영삼의 정치자금을 대라’며 모진 고문을 했다. ‘최형우’는 만신창이 될 때까지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함구했다.

훗날 ‘최형우’는 뇌졸중으로 병환 중임에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요청에 어렵사리 응했다. 그리곤 “어떻게 그 지독한 고문을 견딜 수 있었냐”는 질문에 어눌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입…니…다.”

비단 ‘최형우’뿐이랴. YS 밑에는 ‘수많은 최형우’같은 정치적 동지들이 있었다.

1979년 유신말기, YS제거 작전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YS의 총재직을 박탈했고, 직계로 분류된 ‘문부식’, ‘김덕룡’ 등을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했다. ‘서석재’, ‘문정수’ 등도 지명 수배했다.

이중 김덕룡 전 의원은 YS의 복심으로 통했다. 그는 1970년 상도동 YS 사단에 입문한 이래, ‘2·12 선거혁명’,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투옥됐다.

수차례 구속을 당해 심적으로 위축됐을 법도 한데 김덕룡은 <시사오늘>과의 자리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감옥 생활이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난방이 안 돼 감방 안에 있는 물통이 다 얼었다. 그 물을 깨서 냉수마찰 하고 그랬다. 독재정권과 싸운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 기분으로 감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졌다.”

감옥에서도 독재세력과 싸운 YS사단 사람들. 이 정치적 동지들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YS 가르침을 믿었다. 지금이야 쉽게 자판 두드리며, 그 시대 서슬 퍼런 독재정권 정치사의 바늘 크기만 한 에피소드를 옮겨 적는 것이지만, 그들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간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독재 종식을 위한 험난한 민주화운동의 길에서, YS와 울고 웃고, 땀 흘리고 피 흘리면서 역경을 이겨냈다. 아니, 견뎌냈다.

그리고 YS 영정 앞에 모인 그들은 가슴을 치며 울었다. 형제 같고 가족 같고 피맺힌 동지 같던, 저 세상 떠난 스승 앞에서 어린애처럼 통곡했다.

YS계의 오열을 단순히 오열로 볼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갖는 의미가 이미 엄청나기 때문이다. 진정어린 오열의 무게감. 그건 YS를 위시해 고난의 역사를 써내려간 민주투사들의 절절한 심정이 농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고 고달팠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YS 영정 앞에서 자신의 인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흐느껴 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와 눈물과 땀으로 맺은 동지들의 끈끈한 우정이 YS 가는 길을 배웅했다. 

지난 23일 마지막 삼김(三金)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JP는 명암(明暗)이 뚜렷한 영욕의 정치인생을 걸었다. 5·16 쿠데타 주역으로, 군사독재, 부정축재 장본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산업화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논란은 있지만, 삼당합당과 DJP연대 등 군정종식, 민주화정권이 들어서는데 협조를 아끼지 않은 점도 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피맺힌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간, 피눈물 나는 동지가 없어서일까. 자기 정치 위한 현직 정치인의 칭송이 있을 뿐, 오열 속의 정치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 점은 YS 가는 길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때문일까. “정치는 허업(虛業)이다”라는 JP 어록처럼, 쓸쓸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기자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권력의 2인자로 화려한 무대를 오간 그이지만, 오열하는 동지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어떠랴. 한 평론가의 말처럼 JP는 현대역사를 바꾼 최고의 설계자이자 중재자였다. 일각의 비판도 있지만, 정치거목의 가는 길은 보수와 진보정당을 아우르는 애도의 물결이 흘러넘치고 있다. 

“살벌한 정치 이면에 여백과 멋이란 거름을 주었고”(청와대 윤영찬),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질곡마다 흔적을 남겼던 고인의 기억은 사료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정의당 추혜선)

“정치사에 남겼던 큰 걸음을 바탕으로”(바른미래당 유성원), “가르침 잊지 않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자유한국당 김성원)

27일 오열없는 JP의 영결식(永訣式). 2년 6개월 전 YS 장례식과는 대비되는 모습 속에서 '정치는 허업이다'라는 그의 어록이 더 새겨지는 하루였다.

   
▲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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