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원희룡의 ´제주도정 올인´ 발언,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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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원희룡의 ´제주도정 올인´ 발언, 아쉬운 이유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8.06.3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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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票心의 行間 읽어야…도민들의 염원은 대권도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지난 27일 제주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뉴시스

"투표에도 행간(行間)이 있다."

우리말에는 행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행과 행의 사이를 뜻하는 이 단어는, 글의 속뜻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행간을 읽어내, 문장 속에 한 차원 깊이 숨어있는 저자(著者)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독서의 묘미다.

선거도 그렇다. 정치인은 자신에게 던져진 표 안에 숨은 속뜻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열망일 수도 있고,  비판일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러한 숙제를 받아놓은 상태다. 원 지사의 재신임에는 어떤 행간이 들어있을까.

우선 제주의 이번 지방선거 현황을 분석해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50%를 상회하는 높은 정당지지율을 앞세워 도의원 선거를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45개의 의석 중 29석을 가져갔고, 교육감도 진보성향 이석문 교육감을 당선시켰다. 가장 중요한 도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압승은 자명해 보였다.

그런데 제주도민들은 원 지사에게 51.72%라는 득표율을 안겨주며 당선시켰다. 민주당 문대림 후보는 40.01%에 그쳤다. 10% 포인트가 넘는 격차다.

이제 이 선거결과의 행간을 들여다보자. 제주도민들은 정당으로서 민주당을 선택하고, 지역을 위한 일꾼들을 민주당 소속으로 채웠다. 하지만 그들과 손발을 맞추고, 이끌어야 하는 총책(總責)인 도지사로는 소속 정당도 없는 원희룡을 택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제주도민들의 염원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중앙정치에서 활약했던, 그 누구보다 대권에 가까이 있는 원 지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지지를 업고 대망(大望)을 노려보라는 웅변을 표에 담은 셈이다.

제주 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일 본지 통화에서 "4년 전 (원 지사가)고향에 돌아올 때도 반기는 여론보다 서울서 더 큰 일을 했으면 하는 목소리가 많았었다”면서 "우리 도민들은 제주 도정에 대한 기대와 함께, 원희룡에게 한 번 더 중앙정치 기회를 줘야한다는 생각도 있다"고 전했다.

대망을 꿈꿀 만한 정치인이 등장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호남은 벌써 10년 이상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 찾기'를 하고 있다. 충청은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후보군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제주도민 입장에서 원 지사에게 보내는 간절함이 있다. 원 지사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4위)보다도 앞선 순위다.

그런데 원 지사는 13일 당선소감에서 “도민들과 약속했듯이, 도민들의 부름과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를 바라보지 않고 도민과 함께 도정에 전념해 새로운 제주도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도백으로선 모범적인 답변이지만, 자신에게 준 표의 행간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오답이다.

학력고사와 사법고시에서 전국 수석을 하며 이름을 알린 원 지사다. 또한 젊어서는 시대의 고민을 안고 반 독재투쟁과 노동운동을 벌여온 그다. 이번에 자신에게 던져진 표들의 속뜻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도정 올인' 발언은 실언 아닌 실언으로 비춰진다.

제주도민들은 선거를 통해 원 지사에게 정치적 자산을 만들어줬다. 이제 원 지사에겐 선택이 남았다. 성공한 도지사에서 그칠 것인가, 아니면 표의 행간에 숨어있는 열망에 응답할 것인가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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