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주 52시간제' 정책부실 현장혼란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주 52시간제' 정책부실 현장혼란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7.07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경제 파장 면밀 점검이 우선
강력시행보다 부작용 최소화가 관건
당·정 혼선, 청와대가 정리 나서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주 52시간제가 시행에 들어갔다. 2004년 주 5일제 도입 이상으로 국민의 일과 삶을 바꿔놓을 획기적 전환이다. 그 의미는 단순 노동시간 단축 그 이상이다. 기존 생산 관행의 개선, 나아가 ‘일과 생활의 균형’을 목표로 삶을 개혁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 현장은 혼란 그 자체다. 해당 제도의 입법 후 4개월이 넘었는데도 근로시간 포함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초읽기에 몰려 내놓은 정부 관련 부처들의 대책들마저 중구난방인 탓이다.

문재인 정부내 정책갈등 현상이 역력하다. 세부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자칫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소송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취지는 맞지만 갈 길은 멀다. 산업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경제와 민생경제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위태로운 요소가 다가온다. 심층진단이 필요하다.

사전준비 취약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의 근로자는 7월 부터 휴일을 포함한 1주 근로시간으로 52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법정 근로 40시간과 연장 근로 12시간을 합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일단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3627곳이 대상이다. 이들 기업에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길 경우 이제부터는 대표가 처벌을 받게 된다.

50∼300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50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이 제도가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2007년까지 가장 길었지만, 2008년부터 멕시코에 오명의 1위 자리를 넘겨주고 10년째 2위인데 생산성은 여전히 바닥권이었다. ‘과로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악명이 높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번 정책의 취지는 맞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한 시기에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시행에 들어가는 바람에 후유증이 크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다 정부 내 관련부처들의 의견마저 제대로 조정되지 못한채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이미 시행됐는데 처벌을 할 것인지조차 정부 내에서 의견이 다르다.

기업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대기업은 자체적인 준비를 거쳐 그나마 적응하고 있으나 대다수 중견 기업은 노동 시간 단축에 따른 세부 기준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법을 위반해도 처벌 대신에 시정하는 기회를 주기위한 6개월의 계도 기간을 놓고도 정부 부처간 이견이 노출되고 있으며, 기업들이 상황에 따라 적용토록 하기위한 탄력근로제에 대해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이 많은 주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대신에 다른 주의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맞추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산업현장 난항

문제의 핵심은 기동성과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쪽이다. 어떤 업무까지 근로시간의 범위에 넣어야 할지, 계절산업 등 특정 시기에 업무가 몰리는 직종의 특수성은 감안될 여지가 없는지 산업 현장이 해법을 몰라 혼란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과 근로자 모두 당황스럽고 불편해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세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제2의 최저임금 인상 파동’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이번 조치의 영향은 장기적으로 일자리 나눠 갖기로 실업률이 떨어질 수 있고, 소비가 촉진돼 경제성장률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근로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생활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인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근로자 급여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 한국노총이 산하조직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중 임금 보전이 가능한 사업장은 열 곳 중 세 곳에 머물렀다는 소식이다. 주 52시간 근무가 실질적인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더욱이 업종과 기업마다 근무여건이 천차만별이어서 시행 초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후유증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처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혼선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실제, 제도 시행이 무섭게 일선 현장에선 사업자와 근로자 모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업무형태가 업종별로, 회사별로, 부서별로 다 다르고 근로시간 포함 여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회사는 회사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서도 기업은 변화된 환경에 맞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처지다.

난항 배경

예고된 혼란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6개월 계도’ 카드를 내놓았다. 일단 태풍은 피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응급책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과 특별연장근로 인정 등의 대안을 언급했다.

그렇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다른 목소리의 불협화음을 내며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계 출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혼란에 불을 댕겼다. 김 장관은 주 52시간 위반사업주 처벌 유예 및 6개월 계도기간 운영과 관련,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며 사실상 이를 뒤집었다.

실제로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별도 규정이나 지침까지 만들어 고소·고발된 사안 등에 대해선 6개월 유예 대상에서 제외할 뜻도 밝혔다. 고용부가 당·정·청의 권고도 묵살하면서 기업들은 지뢰밭에 더 내몰리는 형국이다.

김 장관은 주 52시간제 보완의 핵심 정책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과 관련해서도 "당장 모든 업종에 탄력근로제 기간을 6개월로 풀어주면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앞서 홍 원내대표가 최장 3개월로 돼 있는 탄력근로제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한 것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모호한 기준 탓에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헷갈릴 정도다.

여기에다, 근로시간 여부를 놓고 노사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근무시간을 따지는 문제 외에도 근로시간과 임금변화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의 소지가 훨씬 커지고 있다.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근무시간을 둘러싸고 소송대란까지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향후 근로자들의 반응도 관건이다. 시행 전 여론조사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찬성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연장 근로가 줄면서 실제 수입이 줄어들 경우 근로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 하강 조짐이 강해지는 지금 기업들이 정부가 예상하는 대로 새로 인력을 채용할지도 미지수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을 더 기피할 가능성도 높다.

현장 후유증 실상

실제 현장은 더욱 혼란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일선 현장 분위기는 참으로 어수선하다. 현재로선 기준이 명확치 않아 업무시간을 정확히 계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회사는 회사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이해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신상품 출시를 앞둔 연구개발, 24시간 상시 서비스 등 업종이나 직종의 특성상 업무량이 일정기간에 집중되어 불가피하게 주52시간을 키지기 어려운 곳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업무시간이 정확히 계량되기 어렵고 주관적 판단에 따라 업무시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의 경우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상 문상 또는 결혼식에 자주 가야 하는 홍보·영업 종사자들은 이를 업무 연장으로 생각하지만 사측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또 하루 8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막는다며 오후 6시 이후 인터넷을 끊는 기업도 있지만 작업시간이 줄어든 만큼 업무 마감을 늦춰주는 경우는 드물다. 부족한 업무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연장근로 수당도 받지 못하고 카페 등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전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10이라면 정부 가이드라인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불안하지 않을 기업이 없다.

실제, 버스 업계 등의 경우는 운전기사를 늘려야 하지만 당장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운전기사들이 보수가 높은 수도권으로 옮기려고 해 일부 지방은 '버스 대란' 조짐도 보인다는 소식이다.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근로시간 단축 규제로 특정 계절이나 공정, 제품 개발 시기에 몇 달씩 집중 근무해야 하는 업종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렸다. 스타트업(초기 벤처) 업계 CEO들 간에 "7월 이후에는 교도소에서 만나자"는 농담까지 오고갈 지경이라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다 보니 이런 파행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적응 방안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편법이고 어찌보면 현실화다. 예를 들어 한 중견업체의 경우 오전 오후에 각 30분씩 휴식시간을 집어넣었다. 흡연이나 개인용무 등 업무와 무관한 일에 직원들이 사용하는 시간을 휴식으로 상쇄하는 것이다. 결국 출근했다가 집에 가는 시간은 종전과 같은데 일주일에 5시간씩 근로시간을 줄여 주 52시간을 맞추는 셈이다. 일부 기업은 사내 인트라넷을 차단하면서까지 퇴근시간을 강제하다보니 멀쩡한 사무실을 두고 노트북을 들고나와 직장 근처 카페에서 업무를 마무리하는 일도 생겼다.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연장수당 등 월급이 깎여 퇴근 후 투잡에 나서야하는 웃지못할 사례도 있다.

여기에다 게임업체 등 일부에서는 회사를 분리하거나 명예퇴직으로 상시 근로자를 300인 이하로 만드는 곳도 있다는 소식이다. 회사 내부의 문제만도 아니다. 퇴근 이후 단체 일과까지 근로시간으로 간주되면서 회식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한 대형 음식점들은 서빙 인력을 줄이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당시의 후폭풍보다 위기의 심각성은 더하다는게 음식점 업주들의 호소로 전해질 정도다. 일상적 파장은 실로 크다.

부처간 정책갈등

이런 후폭풍이라면 그 대비척은 처음부터 철저했어야 마땅하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은 사실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효율적인 정부라면 새 제도 시행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치밀한 대책을 진즉 마련했어야 옳다. 그런 판국에 아직까지 정부 내에서 의견 조율조차 안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그동안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다. 6개월 처벌 유예, 탄력근로제 활용 권장,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확대 검토 등은 졸속으로 쏟아낸 대책들이다. 게다가 현행 최대 3개월인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도 당·정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와관련, 문재인 대통령이 병가(病暇)에서 복귀해 처음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과로(過勞) 사회를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도 시행의 장점만 설명할 뿐 고용 현장에서 정작 듣고 싶었던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시행 초기의 혼란과 불안을 조속히 불식할 수 있도록 후속 대책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을 뿐 처벌 여부 및 보완책을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선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번 제도 시행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정책갈등으로 총리 말까지 믿을 수 없게 된 상황을 정리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게 된 것이 지금 국정 현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만전을 기해달라"는 추상적 지시만 했을뿐 부처 간 엇박자에 대해선 침묵했다. 총리 말이 맞는지, 고용부 입장이 맞는지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혼선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원론적인 입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명확한 원칙과 지침을 밝혀 여권 내 혼선을 정리하고, 현장의 혼란과 불안을 불식할 필요가 있다.

▲ 지난 4일 오전 인천 영종도 BMW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제2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뉴시스

고용부 문제점

입법 후 4개월이 지났는데도 현장의 혼란이 여전한 이유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책임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고용부의 행태는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난 2월 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후유증이 예상되는데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제도 시행으로 달라지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철저히 대비해야 했음에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하나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법 시행 직전 부랴부랴 내놓은 가이드라인과 보완 대책은 여전히 모호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졌다. 그야말로 ‘땜질식 처방’이었다. 주 52시간 가이드라인을 불과 시행 2주 전에 내놓은 데다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확대 방안과 유연근로제 매뉴얼도 지난달 26일에야 공개했다. 또 게임·IT 업계의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오·남용을 규제하겠다고 밝혀 “노동시간 단축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여기에다 고용·노동 문제에서의 ‘정부 내 엇박자’ ‘당정 불협화음’이 김영주 노동부 장관을 중심으로 연거푸 나오는 게 ‘일자리 정부’의 고용창출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이 국무총리가 경제계 건의를 받아들여 ‘6개월 계도’ 안을 내놓았지만, 김 장관은 오히려  이 기간 근로감독관 600명을 추가 채용해 강력한 감독을 하겠다고 까지 반대의견을 내놨다. 김 경제부총리와 홍 원내대표가 필요성을 언급한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어깃장을 놓았다.

정책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 정부·여당 내에서 이런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노동 현안에서 한국노총 출신인 김 장관의 언행은 줄곧 노동계에 기울어왔다. 총선을 앞둔 의원 겸직 장관의 ‘노동 포퓰리즘’이 의심될 정도다. 단속·처벌 위주의 지금 고용부 방식은 하책(下策)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큰 틀만 제시하고, 노사 자율로 근로자 휴식과 생산성, 소득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정도(正道)일 것이다.

후속 보완책 시급

결국, 주 52시간 근로제가 부작용 없이 안착하려면 정부 내의 혼선부터 정리해야 한다.

계도 기간에 제도의 부작용과 단점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근에 주 52시간제 예외업종 검토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꼽았는데 조선, 화학, 해외건설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주 52시간제의 최종 목표는 저녁 있는 삶과 고용창출이다. 그 취지는 첫째도 둘째도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자는 이른바 ‘워라밸’이다. 6개월 유예 기간에 정부는 ‘워라밸’의 현장 안착을 위한 제도 보완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현장이 부딪치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무엇인지 진단 작업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탄력근로제 범위를 더 넓히고 단위기간도 6개월이 아니라 1년으로 늘려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작업이 필요한 게임업체 등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노사 합의하에 최대 1년까지 탄력근로제를 실시한다.
국회도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장 1년으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바른미래당도 비슷한 의견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홍영표 원내대표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 큰 이견이 없는 상태다.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더 이상 보완입법을 미룰 이유도, 명분도 찾기 어렵다. 정부 역시 엇박자를 내지 말고 국회와 보조를 맞춰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대기업 근로자들과 달리 중견 또는 중소업체 종사자들은 연장근로가 줄어들면서 임금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 노동제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단체 역할 중요

노동단체들의 역할과 인식도 중요하다. 노동단체들은 6개월의 계도 기간 설정을 개혁의 후퇴로 보고 정부를 규탄하고 있는데, 장기적 안목으로 잘 따져봐야 한다.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 확보는 기업이 경쟁에서 계속 살아남고, 성장세를 어느 정도는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저임금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들어 친(親)노조 정책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조세력의 요구에는 끝이 없다. 노사 간 쟁점들을 넘어 기업정책 전반에 노조 쪽 입김이 과하게 미치고 있다는 진단과 평가가 적지 않다.

정부가 양대 노총에 휘둘릴수록 비정규직, 구직자 등 고용시장의 진짜 약자들만 죽어날 것이다.

정부는 지금쯤에서 노동계와의 ‘관계 설정’을 돌아보고 ‘적절한 거리’도 재점검해 볼 때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을 장악한 민주노총의 소위 ‘전국노동자대회’는 그런 점에서 주목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대의 노동집회에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 설정’ 등 일련의 정부 방침을 맹비난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불가’ 같은 정부 입장에도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급속히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총파업 총력투쟁’도 언급했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주장과 요구에 답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을 제대로 응대하라는 차원이 아니다. 기업들과 많은 국민은 정부의 속내와 향후 노동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한다. 노동·고용정책이 연일 쟁점으로 이어지면서 장기간 최대의 이슈로 경제를 억눌러온 지난 1년여간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정부 여당 행보를 보면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손봐 산업현장의 충격을 줄였고, 근로시간 단축에서도 총리가 나서 단속 6개월 유예방침을 내놨다. ‘ICT업종’으로 한정한다지만 특별연장근로에서도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앞서 한국GM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나 금호타이어 중국 매각 때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단호히 뿌리쳤던 것도 짚어둘 만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등에 대한 견해나 입장을 밝히는 게 좋다. 그래야 양대 노총도 ‘사회적 책무’를 강하게 느낄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에는 일절 응하지 않은 채 자기 몫만 요구하는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사 교훈

한국 현대사에서 지난 날의 관련 정책 집행사례는 지금도 살아있는 교훈이 된다.

“열다섯, 열여섯 살 어린아이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혹사” 당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전태일이 몸을 불살랐던 게 반세기 전이다. 그 후 아동노동 문제는 개선됐으나 장시간 노동은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14년 전 ‘주 40시간 노동’이 법제화했지만 정부 행정해석만으로 유명무실화 했고, 한국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노동시간이 1% 줄면 산업재해율이 3.7% 낮아진다는 추산은 장시간 노동이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은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성장을 지탱해온 장시간ㆍ저임금 노동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혁신 없이 미래가 없다’는 말대로 지금은 노동의 양보다 질을 중시해 노동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더 이상 세계시장에서 한국 경제가 설 자리는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강도의 강화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 노사 모두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990년 1월 당시  정부가 공휴일을 다시 축소 조정하기로 한 결정을 내렸던 것도 참조해야할 현대사적 성공사례다. 그 때 공휴일의 확대는 단기적 안목으로 세론에 영합하는 정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게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설날 연휴와 추석 연휴는 말할 것도 없고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칠 경우 다음날 쉬도록하는 익일휴무제까지 실시되는 바람에 쉬는 날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결과를 빚었다.
늘어난 공휴일에 대한 뜻있는 사람들의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미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주5일 근무가 제도로 정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연간 휴가기간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여가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커지면서 휴무일도 늘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세로 보였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부작용은 컸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때 성장의 과일만을 즐기기에는 시기상조였다.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가뜩이나 노사분규로 노동의 생산성과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판에 대폭 늘려준 공휴일은 우리의 전통적인 근로정신까지 좀먹고 있다는 비판론을 불러왔다. 너무 잦은 휴무로 산업현장의 작업리듬이 깨지고 근로정신이 해이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당시 정부가 공휴일의 축소조정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적절한 조처로 평가됐다. 노사 모두는 이를 오늘에도 상기해야 한다.

정책 안정기조 명심을

한국 경제 전체와 관련해서도 이번 주 52시간제가 산업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 결코 일어나선 안된다. 최근들어 글로벌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무역장벽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꺾이고 있다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급격한 고용환경 변화가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획일적인 잣대만 들이대며 기업을 압박하다가는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크다. 근로시간 단축이 조기에 연착륙함으로써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속한 입법이 절실한 때다.

우리 경제의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법으로 강제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어떤 파장을 초래하는지 냉철하고 면밀한 점검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나라 경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직접적인 노동 현안들은 정리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동력 마련과 합당한 규제개혁 쪽으로 정책의 중심이 건설적으로 넘어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의 난국타개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분배우선정책보다 기업의 투자의욕과 근로자의 근로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강력한 성장드라이브정책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분배정책에서 성장정책으로의 전환이라는 것이 말로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성장과 분배ㆍ복지의 비중이 다같이 막중한데다 경제정책이 꼭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경제외적인 정치ㆍ사회적 요인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경제정책의 방향수정을 모색함에 있어서는 최대의 신중성이 요청된다.

정부의 경제정책기조가 분배ㆍ복지 우선이건 성장우선이건간에 모든 경제주체들이 난국극복의 의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도록 방향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정책의 안정기조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확보하면서 경기부양책도 강구되어야 하고 분배ㆍ복지책의 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