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 격려금과 슬픈 종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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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 격려금과 슬픈 종이학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8.07.11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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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가끔 해외 대규모 공사를 수주하면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일정액의 격려금을 지급하고 떡을 돌리며 자축하기도 했었다.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지만, 앞으로 계속 열심히 일해 달라는 의무감 부여 같은 것도 있었다.

대한항공은 지난 5월 직원들이 예상치 않았던 일회성 격려금을 지급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대한항공이 성과급 외에 별도의 격려금을 준 것은 2005년 이후 13년 만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회삿돈으로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회사 상황이 어땠기에? 직원들이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오너 퇴진 집회를 독려하기 위한 격려금 지급인가? 달리 생각해 보면, 대한항공에서는 격려할 일이 생겼기에 격려금을 지급했을 뿐이다. 이게 맞는다면 경영진이 모처럼 제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라 하겠다.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오너의 갑질이 점입가경(漸入佳境) 끝이 없어 보인다. 내부 인터넷망 익명 제보란에 독단 경영의 사례가 폭주하고, 급기야 직원들이 광화문에서 규탄집회를 마다치 않는다. 이것을 보면, 그동안 두 항공사 오너 일가의 비상식적인 행위가 일상처럼 되풀이돼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블라인드 앱 아시아나항공 게시판에 ‘박삼구 회장의 성희롱을 더 이상은 참지 말자’는 글이 올라왔다. 박 회장이 2016년 4월과 최근 직원들에게 “백허그 안 해 주냐? 다음에 해 줘라”라는 말을 했으며, 신년사에서 “누가 나서서 허그해 주면 성희롱이 아니고 내가 하면 성희롱이니 누가 허그해 주길 기다린다”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아시아나항공 한 승무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 입장하면 주위를 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환호를 보내며 손뼉을 쳐야 한다”면서 “원 뒤에서는 임원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열심히 하지 않거나 쭈뼛거리는 여성 승무원들은 마치고 따로 불러내 혼을 냈다”고 말했다. 

지금은 종이학이 화제로 떠올랐다. 가수 전영록의 노래 ‘종이학’이 아니고, 박삼구 회장의 봉건적 사고와 처신 때문에 눈물짓는 1000마리 종이학의 슬픈 얘기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은 출산 휴가를 다녀올 경우 박삼구 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써야 했다고 한다. 물론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들의 충성경쟁에서 나온 압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감사편지엔 “복직시켜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아야 하고, 종이학 1000마리를 접거나 구입해 “1000마리의 종이학은 휴직 내내 회장님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정성껏 감사의 마음으로 접었다”고 말해야 했다는 것이다. 출산휴가는 오너가 시혜를 베푸는 대상이 아니고 법으로 정해진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인데, 현실인식이 시대정신에 한참 뒤떨어졌다.

조양호 회장이나 박삼구 회장은 다른 듯 닮은꼴이다. ‘봉건적 황제경영’이라는 구시대적 유물 속에서 국적 항공사를 마치 개인 회사인 양 지배해온 것이다. 이는 주주 친화경영에 힘쓰기보다는 오너의 기분을 맞추고 충성 경쟁을 해야 하는 잘못된 대기업 조직풍토가 일조한 측면이 있다.

지금 오너 본인이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으니 똑같은 일을 죄의식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아들과 딸을 피붙이라는 그것 하나로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로 앉혀 ‘인생수업’을 시킨다. 철부지한테 회사경영을 맡겼으니 온갖 갑질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기업을 자식에게 세습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간혹 있더라도 한 명 정도, 그것도 경영능력을 철저하게 검증 받아야 하고, 사원으로 입사해 일을 배운다고 한다. 

서울의 도심 광화문에서는 두 항공사 직원들이 함께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두 항공사 오너 일가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 지분만큼 배당금을 받고 살아도 좋지 않은가. 수시로 안아달라는 회장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제발 아들 딸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직원과 국민이 고통스럽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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