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청계재단과 건설사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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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청계재단과 건설사의 약속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8.07.20 09: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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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서울에서 진주로 가던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는데, 볼일을 보고 나온 통영行 버스 운전사가 그만 착각해 진주行 버스를 몰고 가버렸다. 목적지 통영에 도착한 뒤에야 진주行 버스를 몰고 왔다는 걸 알아차린 운전사는 뒷수습을 하느라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잘못된 운전사 한 사람 때문에 이날 애꿎은 여러 사람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방송인이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들려준 우스갯소리다. 실수를 해 많은 사람을 혼란과 고통에 빠트린 앞의 버스 운전사처럼 한 나라의 지도자도 정책 방향을 잘못 잡으면 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감사원은 최근 4대강 사업에 대한 4번째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기존 감사결과와 달랐다. 핵심내용은 4대강 사업이 이명박(MB) 대통령의 무리한 지시와 관련 부처의 무소신 속에 추진됐다는 것이다.

MB는 수심 2.5~3m로도 충분하다는 국토부의 보고를 무시하고, ‘통치 차원’이라는 이유를 달아 수심 6m로 굴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청와대는 녹조 발생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무시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MB가 4대강 사업을 자신의 뜻대로 강행한 것은 대운하 건설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4대강 사업은 성급하게 졸속으로 이뤄진 감이 없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정책은 추진되지 말았어야 했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건설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건설사들은 길을 잘못 들어선 ‘4대강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런저런 고초를 겪었다. 공정위 조사와 과징금 폭탄, 입찰참여 제한, 국세청 세무조사, 검찰 조사와 처벌, 그리고 사면을 위한 노력과 사회공헌기금 출연 약속 등등.

일부 호사가들은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을 통해 적지 않은 이익을 남겼으며, 비자금을 조성해 BH에 바쳤다느니 하는 폭로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조사 결과 비자금 조성은 실체가 없는 헛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만도 하다. 4대강 공사에서 이득은커녕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담합으로 국민혈세를 도둑질해 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건설사들은 지금도 비난을 받고 있다. 3년 전 사면을 받으면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광복절 특사로 특별사면을 받는 조건으로 20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공공공사 입찰이 제한돼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특사라는 단비가 내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건설사들이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며 질타를 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각각 10억원, GS건설과 대림산업은 각각 3억원, SK건설은 2억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출연했는데, 당초 목표액에 한참 못 미쳤다.

건설사로선 국내외 경쟁 심화와 해외수주 감소 등으로 힘겹다. 건설사들은 사회공헌기금 약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다. 하지만 4대강 공사를 졸속으로 강행한 MB는 재산 기부 약속을 여론무마용으로 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MB는 대선을 열흘 앞둔 어느 날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통큰 약속을 했다. BBK,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이 터져 선거 판세가 불리해지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MB는 자신의 소유 건물 3채를 출연해 장학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청계재단을 설립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랐다. MB는 청와대 입성 후 약속은 지켜야 하나 재산을 내놓기는 싫었던 것이다. 재산을 정말 사회에 환원하려 했다면 없는 재단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 청계재단은 상속을 위해 급조됐다는 의혹을 받았고, MB가 사실상 운영을 좌지우지해 왔다.

국민과의 약속은 억만금보다 더 중하다. 약속은 지킬 때 빛난다. MB나 건설사들이 이제라도 약속을 온전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MB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청계재단 재산을 ‘건설사 사회공헌기금’ 조성에 출연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청계재단에 가 있는 재산은 당초 사회에 기부하려고 했던 것이고, 건설사들을 어려움에 빠트려 사회공헌기금 조성 약속을 하게 한 장본인이 MB이기 때문이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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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send21 2018-07-20 14:22:14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사이다같은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