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노무현, 의(義)버리고 이(利) 택한 정치인”
박계동 “노무현, 의(義)버리고 이(利) 택한 정치인”
  • 정세운·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2.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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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동 한나라전의원
재야운동권출신…'노태우 비자금' 폭로로 개혁파 선봉
15대 총선 낙선·16대 피선거권 박탈 후 한나라당 입당
“DJ 정계은퇴 번복·DJ에게 간 노무현, 옳지 않았다”

박계동 한나라당 전 의원이 돌아왔다. 재야 운동권에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개혁파 국회의원으로, 또 한나라당으로, 그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매 순간순간마다 고뇌했고 선택했다.

그런 그가 오는 4·27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변화하는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통찰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을 쫓은 결과였을까. 궁금했다. ‘인간 박계동’과 ‘정치인 박계동’이. 그래서 지난달 19일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위치한 그의 선거사무실로 찾아갔다.

박 전 의원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2006년 동영상 파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고 보수이념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도 묻어났다. 또 솔직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비화들을 꺼냈다.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어느덧 은퇴시기를 맞았고 그 당시 청년들은 중년으로, 중고교생들은 어느덧 30대로 접어들었다. 한때 동시대의 시대적 아픔을 공유했던 우리들은 현재 어떤 모습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박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그런 궁금증을 가진 채 시작됐다. 
 

▲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은 DJ를 따라가 노무현이 의를 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1995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폭로해 스타의원이 됐습니다. 어느덧 16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12·12 사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보면,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 YS는 역사에 맡기자고 DJ는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법부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여기가 중요한데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폭로는 12·12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문민정부와 법치주의를 확고히 한 사건입니다.”

1996년 10월 1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시간. 박계동 민주당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 원이 시중 은행에 100억 원씩 40개 계좌로 분산 예치됐다고 주장,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300억 원의 비자금이 은닉돼 있는 S은행 서소문지점을 지목하며 관련 계좌번호 등을 증거로 제시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검찰의 조사과정에 불만은 없었습니까.

“불만이 많았죠. 당시 검찰이 대기업 30여개에 대해 액수 할당식 짜깁기 수사를 했어요. 삼성은 300억 원, 현대는 200억 원, 대우는 150억 원 등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것도 2∼3일 만에.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역사를 바로잡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권력형 부패를 바로잡는, 근본적인 척결 계기는 되지 못한 거죠.”

-YS정권에서도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지 않죠. 내심의 의사는 알 수 없지만, 표현의 의사는 행위만이 가장 명확한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시 YS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처벌을 꺼렸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었던 이현우 씨가 맨 처음 400억 원의 물증을 제시했어요. 근데 제가 받은 제보만 하더라도 강남의 동남타워빌딩 1000억 원, 서울시청 앞 센터빌딩과 정동주유소 1000억 원 등 벌써 2000억 원이 아닙니까. 어떻게 400억 원을 가지고 2000억 원에 달하는 물증을 해명할 수 있습니까. 결국 계속 드러나는 증거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YS도 근본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문민정부에도 화가 미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거죠,”

-노태우 비자금 사건 폭로 이후 오히려 정치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6공 차원의 보복이었습니까.

“노태우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행태를 시국강연회에서 비판했습니다. 검찰은 즉각 사전선거운동으로 몰아붙였고 그것을 명분삼아서 박계동을 퇴출시키려고 했죠. 일종의 ‘자기 성공의 희생자(victim of his own success)가 된 셈이죠.”

-당시 상황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15대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데, 당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꼬마 민주당 소속으로 종로에 출마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국강연회에서 ‘YS는 무능하고 DJ는 분열주의자고 JP는 부패했기 때문에 30년 3김정치의 청산은 종로에서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것에서 시작돼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발언을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본 거죠. 근데, 검찰은 유세위원장이 박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계동을 처벌을 했습니다. 정말 정치적인 법적용이 얼마나 혹독한지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박 전 의원은 이번 분당을 재보선은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J 따라간 노무현, 의(義) 버렸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스타정치임에도 불구하고 낙선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DJ가 3선 실패 후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며 국민회의를 창당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 내 재야그룹들은 3김 청산과 개혁이 주된 기치였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DJ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정구 선배가 ‘장렬전사론’을 주장했어요. 불명예스러운 재선이 아닌 명예스러운 초선을 선택한 거죠. 결과적으로 신한국당(영남), 국민회의(호남), 자민련(충청)으로 양분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낙선된 거죠.”

당시 개혁파 젊은 정치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박 전 의원에게 15대 총선의 낙선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이후 그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아 16대 총선 출마자격을 상실했다. 1992년 민주당 소속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에게 첫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가 택시운전을 한 시기도 이때다.

-야인생활 중 택시운전을 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여기서 솔직히 애기합시다. 노태우 비자금 폭로 이후 돈이 없었어요. 친구들 경조사 등을 챙기려면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때 완전히 우주에 떠있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국민들도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참 암담했거든요. 아! 민심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생각했죠.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전후교대시간 2시간까지, 총14시간 운전을 하면 하늘이 노랗게 보입니다(웃음).”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로 간 이유는 당시 이기택 민주당 총재와의 갈등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어요. 이거는 언론에 처음 고백하는 건데, 꼬마 민주당에 남은 재야세력들이 향후 진로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YS와 DJ가 아닌 제3의 인물로 가는 ‘독자후보론’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독자후보론 제언을 만들어 동료 정치인들에게 팩스로 보냈죠. 일종의 밀알 역할을 자임하면서.”

-통추는 누구를 독자후보로 밀려고 했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을 독자후보로 생각했어요. 반면 내부적으로는 제정구 선배를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노 전 대통령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DJ에게 갔습니다. 결국 통추는 독자후보도, 창당도 못하게 됐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로 갔을 때 심경이 어땠습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통추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아직은 독립적인 창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재창당하는 시기에 지분 40%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제정구 이부영 박계동 등이 (한나라당으로) 가게 된 거죠.”

-왜 DJ에게 안 가고 한나라당 입당을 선택했습니까.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90년대 초 재야세력의 상황을 봐야 합니다. 재야는 문제제기의 장인데 반해, 정치는 문제해결의 장입니다. 당시 재야세력들은 ‘언제까지 문제제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야세력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1991년부터 있었던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죠. 재야출신들은 과도적 문민정부인 YS정권에 몸담기보다는 야당을 선택해 온전한 문민정부의 창출을 원했습니다. 근데 DJ가 정계은퇴를 번복하면서 통추세력들이 둘로 갈라졌고 남은 사람들은 1997년 대선에서 실패한 신한국당으로 간 거죠. 내가 한나라당 창당 발기인입니다.(웃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을 모토로 삼았는데, 왜 DJ에게 갔다고 보십니까.

“DJ의 대통령 당선을 불가능하다고 본 거죠. 근데 막상 DJ가 대통령이 되니까 야당을 계속하느니, 여당의 길을 선택한 거죠.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초조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박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회의 입당과 관련된 비화를 하나 꺼냈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200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는 “노무현은 의(義)를 위해서 DJ를 따라갔고 박계동 등 나머지 통추 멤버들은 이(利)를 위해서 한나라당으로 갔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제정구 전 의원 4주기 때 그 당시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서 “내가 원고를 읽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곧바로 노 전 대통령은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게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이와 관련, “그래서 내가 소리를 질렀지. ‘무슨 변명을 그따위로 해, 그 당시에는 제정구가 옳았어’라고.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박계동이 왜 그런 얘기를 그 자리에서 했는지 몰라요. 서로 다 뜬금없는 얘기 같으니까. 노 전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 거야. 당시 야당이 어디였나. 신한국당 아닙니까”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의 입당은 재야시절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이 아닌가요. 3김의 퇴행적 정치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던 당이 한나라당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않죠. 정치인은 당이 자기혁신을 하려고 할 때, 그 진의를 믿어줘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기존의 신한국당이 가지고 있던 한계성을 깨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문을 연 것이죠.”

-제정구 전 의원은 DJ와의 갈등 때문에 신한국당에 입당하지 않았나요.

“제정구 선배는 옛날부터 DJ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한 확신에 따른 거죠. 단적으로 얘기하면, 6공 집권 1년 후에 예정돼 있던 민주화 7개안 조치에 대한 중간평가를 누가 제일 먼저 필요 없다고 했나요. DJ 아닙니까. 지도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어떻게 같이 갈 수가 있겠습니까.”

-DJ 자서전에서는 그 반대로 서술했는데요, 역사는 DJ의 자서전을 믿지 않을까요.

“역사는 승자의 역사입니다. 한 가지 더 얘기할까요. 당시 DJ에게 중간평가 반대를 명분으로 돈을 건넸던 사람이 바로 박철언 씨입니다. 내가 그 전달과정에서 박철언 씨를 소개하고 그 돈을 들고 갔던 사람에게 증언을 들었어요. 수사는 원래 입증주의에 따라서 거증책임이 검찰에게 있는데, 당시 사법부는 뇌물 수수 의혹에 있는 자가 부인을 해도 뇌물 공여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면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그게 박철언 씨 사건입니다. DJ가 대통령이 됐을 때 YS가 얼마나 혹독한 비판을 가했습니까. 그게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구입니까.

“제정구 선배입니다. 일단 그 분은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않아요. 항상 역사적 관점에서 먼저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불리해도 그 길을 걷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다 버렸습니까. 한마디로 ‘성직자형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죠.”

 
“분당을 보궐선거, 역사의 분수령”

-주제를 바꿔서 4·27 재보선 질문을 하겠습니다. 출마 계기부터 말씀해 주시죠.

“분당을 보궐선거는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겁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으로 갈 것인가, ‘분배’로 갈 것인가를 두고 선택하는 중대 기로인 셈이죠. 나는 이명박 정부의 정권재창출을 통해 대한민국이 성장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까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성장정책을 지지한다고 생각해요”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을 통한 시대적 사명을 유권자들에게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겠지요.”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도 분당을 보궐선거에 공천을 신청했는데, 자신 있습니까.

“당 대표를 했던 분인데, 쉽지는 않죠. 과연 누가 한나라당의 미래지향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 당과 분당구민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분당지역은 정치풍향의 바로미터입니다. (유권자의) 바른 선택을 위해 박계동이 출마해야 합니다.”

-강재섭 전 대표는 과거 지향적입니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의 이념적 포지션이 중도로 옮겨졌잖아요. 그러면서 민주당은 진보 쪽으로 갔고요. 정부여당의 중도 포지션을 위해 극단적 보수후보를 내보내서는 안 되죠. 판단은 분당구민이 할 겁니다.”

-당 내부에서는 ‘박계동-강재섭’ 불가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3후보론인데요, 이런 당내 여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분당에 아무나 말뚝 박아도 당선이 된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18대 총선에서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70%이상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50% VS 민주당 44%였습니다. 6%라는 것은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다는 의미죠. 4월 재보선에서 분당지역을 야당에 빼앗기면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될 것입니다. 안일하게 대처하면 안 됩니다.”

-야권은 반MB연대, 정권심판론으로 나올 텐데요.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이 있습니까.

“야당은 아직까지도 구(舊)패러다임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선진국 의식 수준까지 왔습니다. 싸우는 국회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야당은 (MB정부를) 과거 독재정권하고 등식화시키려는 유혹에 자꾸 빠지고 있습니다. 투쟁방식도 보세요. 과거 정통성 없는 정부와 싸웠던 투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야당이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백날 질 수밖에 없죠.”

-야당의 비합법적 투쟁은 한나라당이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발생된 불가피한 측면이 아닌가요.

“아니, 자기신념에 맞지 않는다고 몸으로 막는 국회가 말이 됩니까. 국민이 선거 때 한나라당에 이니셔티브(의안 제출권)를 줬잖아요. 오히려 소수당이 반성을 해야지, 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잖아요. 미국이나 영국의 의회정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민주주의적 발상도 아닙니다.”

4·27 재보선 질문을 마칠 때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천된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박 전 의원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18대 총선 2년 전에 지방선거가 있었어요. DJ-참여정부가 10년 간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아닙니까. 이미 권력이 선관위, 검찰, 언론 등을 다 통제하게 된 거죠. 그래서 야당은 쫓아가는 선거를 하면 안 돼요.

선관위, 검찰 등이 다 (선거에) 개입하게 돼 있어요. 근데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SBS여론조사에서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34%인 반면,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10%, 홍준표 의원 9.3%였습니다. 경선과정에서 둘이 하도 싸워서 시너지 효과도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서울-오세훈, 경기-김문수, 남경필’ 카드를 던졌습니다. 단번에 상황이 반전되니까, 민주당이 그때부터 박계동 동태를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영상 파문이 왜 일어났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당시 열린우리당 측의 계획적인 유포였다는 말입니까.

 ▲박 전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이 보수와 진보로 양분됐다고 밝혔다
“아니, 당시 동영상이 54초 아니었습니까. 몰래카메라로 더 찍었으면 더 진한 장면이 나오지 않겠어요. 왜 거기서 딱 멈췄을까요. (정치인들은) 호텔을 만남의 장소로 쓰지 않아요. 도어맨부터 시작해서 박계동이 몇 시부터, 누구를 만나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다 정보잖아요. 그리고 룸살롱이 아니고 그냥 오픈 카페입니다. (인터뷰 장소의 테이블 3개를 가리키면서) 여기하고 똑같아요. 근데 룸살롱으로 둔갑시키더니, 당시 터트린 언론사 정치부장이 연예부에 제목을 섹시하게 달라고 했나 봐요. 그래서 ‘놀란 가슴’으로 나온 거죠,”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의 성추행 사건으로 정치권이 들끓었던 2006년 5월 3일, 당시 같은 당 박계동 의원의 ‘술집 추태’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됐다. 문제의 동영상은 54초짜리로 편집됐고 박 의원은 여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의 옷섶을 만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박 의원은 다음 날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직자로서 부도덕한 처신에 대해 국민 앞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면서도 “검찰이 이번 불법 동영상의 촬영, 배포 의도 및 배후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의 가치는 시장과 자유…재벌 독점 인정해야”

-한나라당과 민주당, 한국 정치사의 두 정당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여전히 개선해야 될 점도 있겠지만, 굉장히 긍정적으로 발전됐다고 봐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으로 양분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하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보수정당 아닌가요.

“더 진보적인 진영이 보면 둘 다 보수정당이고 더 보수적인 진영이 보면 둘 다 진보죠. (중립적으로 봤을 때) 한나라당은 중도보수-민주당은 중도진보입니다.”

-양당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적 가치의 핵심이 평등과 분배라면, 보수적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죠. 보수의 시장경제라는 것은 결국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보수의 핵심적 가치는 ‘자유와 성장’입니다.”

-정책을 둘러싼 한나라당-민주당 간 정쟁은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국민들에게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중간평가를 받지 않습니까. 근데 우리의 경우는 행태가 아니라 무조건 이념적으로 갑니다. 가령 복지논쟁의 경우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 등의 표피적인 정치행위만 가지고 극단적인 싸움행태로 가잖아요. 정책대결은 안 하고. 그러니까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할 수밖에 없죠.”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비판할 때 군부세력의 뿌리를 둔 정당이라고 하잖아요. 동의하십니까.

“관념적인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규정화는 굉장히 나쁜 겁니다. 그게 포퓰리즘이거든요. 어느 누구라도 단 한 순간, 깨끗하고 정당한 게 없어요. 박계동도 용감하기도 했다가 또 어쩔 때는 비겁하기도 하잖아요. 그게 세상만물의 실체죠. 민주당이 지금 쓰는 수법은 좌파 변형론의 홍보 수법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재벌위주 아닙니까.

“2007년 대선 때 경제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구조조정으로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산, 공원 등에 젊은 실업자들로 꽉 차고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직을 못했잖아요. 아니, DJ정부 때 반(反)기업정서가 얼마나 심했습니까. 돈 번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니까 결국에는 대기업들은 재투자를 안 하잖아요. 재벌들의 특정 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올바로 가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G20 의장국이 그냥 된 거 같습니까. 세계 경제 속에 한국의 역할이 변한 거죠. 지난해 3월 24일 한·중·일 3국과 동남아시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를 발효시켰습니다. 공동기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무려 1200억 달러 규모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의 헤게모니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니셔티브의 캐스팅보트는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바로 한국이죠. 그게 G20의 성과입니다.”

박 전 의원이 언급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외환 부족 사태 등 각종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IMF 등 국제기관에만 의존하지 말고 아시아 국가들이 스스로 위기에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논의됐다.

이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2000년 5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재논의 되며 합의에 이르게 됐다. 당초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위기 발생 국가가 자금을 요청하면 개별 국가에게 지원여부를 묻는 방식이었지만, 2006년 인도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 회담에서 집단적 지원체제로 탈바꿈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기금 형태로 출범하는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의 출현이다.

-재벌 중심의 체제가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기업들이 초국가자본이나 다국적기업과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겠어요. 재벌들을 중심으로 분산투자하고 리스크를 나누는 등 자본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삼성이 올해 43조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잖아요. 어느 외국 기업이 그 정도의 자본을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재벌의 투자가 이건희 회장 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죠. 기업이 자본의 투자를 놓고 갈팡질팡할 때, 그 선택을 누가 하겠습니까. 기업수장이죠.”

-한나라당이 2012년 재집권을 해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재벌 등) 부패라는 것은 단군조선이래로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지, 그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면 부분을 전체화시키는 오류를 낳게 되죠.”

-부패라는 재벌의 한 부분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전체로 수렴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우리나라 농민들이 농산물을 팔아서 살아갑니까. 직불금, 보조금 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돈을 누가 내느냐, 기업이 내는 거죠. 그런 요소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한국 경제의 재벌 종속화는 더 심화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국민들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재벌에 종속될 정도의 국민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벌써 필리핀식으로 갔죠. 그런 논리로 재벌들을 공격했던 게 DJ-노무현 정부 아닙니까.”

-DJ와 노무현 정부가 반기업적이었습니까.

“삼성 같은 공격적인 경영을 누가 하겠습니까. 삼성전자의 지난해 총이익금이 일본 전자업계 5곳의 총이익금보다 훨씬 많습니다. 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도 야당은 과거식 패러다임에 붙잡혀 재벌을 비판하고 있으니, 참 답답하죠,”

-정치인이라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나 잇따라 발생되는 반도체 사고 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크고 작은 사고는 나게 돼 있습니다. 사고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반도체 경영으로 지금 반도체 세계 시장의 점유율이 얼마나 됩니까. 무려 65% 이상입니다. 세계 시장 내 삼성의 위치가 그 정도인데, 국가가 지원을 해야죠. 삼성이 이익금을 (국가에) 내는 만큼, 국민의 세금을 상쇄시켜 줍니다.”

-재벌 독점 이면에 있는 사회양극화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까.

“좌파의 경제정책은 평등주의입니다. 무조건 똑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승만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를 추구한 집권당이 있었습니까.

“지난 10년 간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한 정부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DJ-노무현 정부가 국가발전에 기여를 못하니까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거죠. 올해 삼성이 2만5000명을 고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대가 한 학년에 1만 명 정도인데,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등을 빼면 3500명 정도가 취업시장에 뛰어들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무려 7∼8개 대학 졸업자들이 다 취업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어떤 게 진정한 복지냐,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당처럼 표만 의식한 복지 제안은 안 됩니다.”

-여야 정치권이 선거 때만 되면,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 밑으로 내려온다는 낙수이론의 허구성을 정치인들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분배가 때 늦는 법은 없습니다. 민주당이 ‘3+1’ 무상 시리즈를 놓고 8조원 VS 30조원의 논쟁이 일고 있죠. 근데 8조가 얼마나 많은 돈이냐 하면, 1000억 원짜리 공장 80개입니다. 그런 공장 80개면 일자리는 굉장히 많이 창출될 겁니다. 복지는 하방경직성 때문에 세수지출의 끝이 없습니다. 그걸 생각해야죠.”

“MB 개헌, 올해 안에 결론내야”

-이명박 정부의 개헌 안, 어떻게 보십니까.

“자꾸 정략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87년 이후 24년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는 한 정파의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 때문에 5년 단임제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4년 중임제로 가야죠. 생명권 등 헌법조항 중에 지금 통념과 다른 부문이 많잖아요. 아울러 외교 국방 안보 등 외치는 대통령이 관할하고 행정 등 내치는 국무총리가 관할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가미시켜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한나라당 수뇌부와 이재오 특임장관, 임태희 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당·정·청 만찬회동에서 “당이 개헌 논의를 제대로 해 달라”라고 말하며 개헌에 불을 지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그간 담론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개헌 논의가 정점에 다다랐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같은 달 26일 개헌 공론화 방안과 관련해 당내 개헌논의 기구 구성을 제안했고 친이계 의원들의 모임인 ‘함께 내일로(대표 안경률 의원)’도 긴급 토론회를 열고 개헌 불 지피기에 나섰다.

-친박계와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야당과 친박계는 개헌을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차단키 위한 승부수로 보는데, 개헌을 본질적으로 봐야 해요. 개헌을 역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을 음모론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까.

“당시는 개헌을 할 시기가 아니었죠.”

-친이계 정태근 의원은 19대 총선하고 개헌 투표하고 같이 하자는 입장인데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올해 개헌 논의를 시작해서 하반기 때 정기국회에서 개헌 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정치를 많이 해봐서 아시잖아요. 개헌이 가능 할까요.

“이미 188명의 여야 의원들이 국회 헌법연구회에 소속돼 있습니다. 사실은 논의절차가 간편하게 돼 있는 거죠. 한나라당이 야당과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개헌의 진정성을 잘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개헌발의 정족수) 200명 선은 가능하죠.”

-차기 대권주장 중 누구를 선호합니까.

“그건 지금 말해봐야 소용없어요(웃음). 한나라당 내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대권정책을 가지고 다시 대결해야 합니다. 세종시 등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그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국민들에게 알려야죠.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고서 대권 주자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차기 친이계 대권주자는 성장담론을 기치로 내세워 출마를 해야 합니까.

“사실 성장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개조론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죠. 제도나 의식의 구태는 변화시켜야 합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3후보론’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어떻습니까.

“대안론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 위원장에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대안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을까요.

“박세일 이사장하고 친하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차기 대권잠룡으로서 중량감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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