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노회찬 悲報와 정치문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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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노회찬 悲報와 정치문화 숙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7.28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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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양산 정치자금 구조 혁신 시급
'드루킹 특검' 위축 말고 철저수사를
진보정치 큰 손실…당당히 진력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노회찬 의원(정의당 원내대표) 자살사건'이 한국 정치문화에 던진 교훈과 과제는 실로 크다.

후진적 정치자금 구조와 피의사실 공표 수사관행 인격살인 후유증에서 부터 진보정치의 앞날에 이르기까지 개혁되고 풀어나가야 할, 만만치 않은 숙제들을 남겼다.

오늘의 한국 정치문화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지, 관련 제도는 어떻게 정비되고 혁신되어 나가야 할지, 그리고 국민의 정치의식은 어떤 지향점을 향해 바로세워져 나가야 할 지, 다시한번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사건'으로 남게 됐다.

진보진영에 죄책감

노 원내대표는 포털 댓글 여론조작 혐의를 받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허익범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드루킹의 측근이자 자신과 고교 동창인 도모 변호사로부터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불법 정치후원금 5000만원을 받은 의혹을 받았다. 또 드루킹의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으로부터 2000만원의 강의료를 받은 의혹도 있었다.

노 원내대표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며 금품수수를 인정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유서를 남긴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누를 끼쳤다”면서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도저한 죄책감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정의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에 미칠 악영향에 큰 부담을 느꼈음을 드러냈다. 결국 평생을 헌신해 쌓아온 진보정치의 진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진보정치의 스타로, 재치와 논리가 풍부한 대중 친화적 언변으로 국민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 노 원내대표가 투신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가 최근 문제가 된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 법안을 발의하고 특활비를 앞장서 반납하기도 했고,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 진보정치의 주역이었기에 드루킹 연루 의혹과 관련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노 원내대표는 최근까지도 불법 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여야 원내대표들과의 미국 방문길에서도 자신있게 관련 혐의를 해명했고, 자살 전날인 22일 귀국 때까지도 특이한 기색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체류기간에 도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리적 부담을 느껴 '최후의 선택'을 하게된 것으로 관측된다.

▲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현관에서 열린 정의당 故 노회찬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헌화 후 묵념하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오른쪽)와 심상정 의원. ⓒ뉴시스

정치인 노회찬

노회찬 의원은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2년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며, 진보정치인으로는 드물게 3선 의원에 이르렀다.

정치역정 내내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기득권층의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맞서 싸웠다. 생을 마감한 날까지도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모임과 12년간 투쟁 끝에 복직한 KTX 승무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준비했으나 끝내 읽지 못했다.

62년 인생의 대부분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운동에 헌신했다. 좌파 운동권 동지들이 보수정당의 우산 밑으로 들어갈 때도 꿋꿋이 ‘좁은 길’을 고집했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이 담긴 ‘삼성 X파일’을 폭로했지만, 의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운동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추진 등 굵직한 업적도 남겼다. 노회찬은 언제나 서민과 노동자 편이라는 신뢰도 얻었다.

특유의 정세분석 능력에다 뚝심과 인간적 매력까지 더해 소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정의당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비극적 죽음에 정치권이 여야 구분 없이 한목소리로 비통해하며 애도를 표한 것은 노 원내대표가 진영을 불문하고 존경과 사랑을 받았음을 증명한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이 112석의 자유한국당보다 높은 정당 지지율을 얻은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따라서 그 동안 노 의원을 의심치 않았던 정의당은 충격파가 더 클 수밖에 없다. 6월 지방선거 이후 한국당을 제치고 승승장구해온 정의당은 이제 진보정당의 최대 무기인 도덕성 훼손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노 원내대표가 추구했던 정치적 가치와 목표는 계승해야 한다. 노 대표의 유언대로 당당히 진력해 나가야 한다. 정치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보수·진보 양 날개가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엄정수사 과제

노 의원을 향하던 특검 수사는 피의자가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밖에 없게됐다.

하지만 당초 노 의원 사건은 드루킹 특검의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 관련 의혹과는 별개 사안이었기 때문에 본안 수사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드루킹 특별검사팀의 수사는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노 대표의 죽음으로 인해 드루킹 특검이 결코 영향을 받거나 위축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노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은 드루킹 사건을 수사하다 불거진 곁가지에 불과하다. 드루킹 사건의 본질은 ‘킹크랩’ 등 자동화 프로그램을 사용한 댓글 조작이며, 여기에 어떤 인물들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관여됐는가를 밝히는 게 급선무다. 수사 과정에서 정치인의 연루나 불법 청탁, 금품 수수가 드러나면 엄중히 처벌돼야 마땅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수사에 박차를 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댓글 조작이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여론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의 드루킹 연루 의혹도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드루킹 김씨는 옥중편지에서 ‘김 의원 앞에서 댓글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사용을 허락받았다’고 주장했다. 송 비서관도 4차례나 김씨를 만나고 현금 200만원을 받았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동안의 경찰과 검찰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정의 칼날이 ‘산 권력’ 앞에서 멈췄다는 지적이 크다. 하지만 특검 수사는 그래선 안 된다. 특검은 성역 없는 수사로 불법 댓글 조작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야 한다.

또한, 노 원내대표의 비극은 돈이 많이 드는 후진적인 정치 현실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후원문화, 그리고 그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정치브로커와 학연·혈연·지연의 유혹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노 대표의 금전수수는 실정법 위반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서 주장대로 ‘어떤 청탁이나 대가와 무관한 자금’의 처리 절차를 위반한 정도라면 범법의 정도가 위중하다 할 수는 없다. 이 또한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

이와관련, 드루킹 김씨는 지난해 5월16일 트위터에 “정의당과 심상정 패거리들, 너희들 민주노총 움직여서 문재인정부 길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내가 미리 경고한다”며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방에 날려버리겠다”는 트윗을 날렸다. 노 대표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 만큼 여야 의원들이 드루킹 일당에게서 얼마나 불법자금을 받았는지도 철저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드루킹 측이 노 대표에게 불법자금을 공여한 부분은 2016년 파주경찰서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수사 당시 무혐의 처분이 났던 사안이다. 경찰 수사가 수박 겉핥기였음을 입증한 셈이다.

‘본류 수사’는 더욱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진행돼야 한다. ‘드루킹이 노 의원을 이용하다 버린 것’이라는 소문 등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정치문화 후진성

노 의원의 이번 선택은 누구든 정치자금과 관련한 후진적 정치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새삼 일깨운다.

선거만 치르면 불법 자금수수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지구당운영제와 정치후원금제도를 포함해 고비용 정치구조를 청산할 혁신적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책임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클린 정치인’으로 통하던 노 의원마저 이런 지경이라면 몰래 정치자금을 받아 선거를 치르고 지역구를 관리하는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루빨리 근절해야 할 정치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후원금을 받는 관행에 대해서도 새로운 반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상대방이 봉투를 내밀면 일단 받고 보는 것이 정치인들의 일반적인 생리다. 돈을 건넨 의도에 대해서는 그다음 문제다. 결국 그러한 관행이 특정 기업과의 유착으로 이어지거나 심지어 조직폭력배들과의 배후 관계를 의심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국회의원들이 기본 세비에 자녀 학자금, 자동차 운영비, 출장비까지 받으면서 너무 돈을 밝힌다는 얘기를 들을 만도 하다.

이와관련, 현행 정치자금법에는 또다른 맹점도 있다. 현역 국회의원은 평소에는 1억 5000만원을,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신인이나 낙선한 국회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가 되는 6개월 전에는 후원금을 받을 통로가 막혀 있다.

낙선한 뒤에도 다음 선거까지 지역에서 활동해야 하는 정치인은 가혹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노 의원이 ‘검은돈’을 받은 시점도 ‘삼성 X파일’ 폭로 여파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야인으로 지내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이같은 맹점을 잘 드러낸다.

결국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은 개선돼야 한다. 정치자금을 모으는 입구와 사용하는 출구를 모두 규제하는 법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후원회를 통해서만 모금할 수 있는 현행법은 특히 인맥이 부족한 소수당 의원과 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 신인들에게는 지극히 불리한 제도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치 신인들이 친구나 친척 등의 도움을 받아 활발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을 넓힐 필요가 있다. 대신 정치자금 사용처를 꼼꼼히 감시해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대부분 선진국 정치자금법의 기본 원칙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행법상 불가한 법인과 단체의 후원도 길을 열어 줄 수 있어 불법·편법적 기부가 판을 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 교훈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등 한국정치 현대사의 굴절 파장과 교훈을 다시 일깨운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자살도 이번 노 의원 사건처럼 불법자금 수수 혐의에 몰리면서 비롯됐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4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아오던 중 전직 대통령으로선 세번째로 검찰에 출두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물론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까지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받았을 정신적 스트레스는 미뤄 짐작이 간다. 유서대로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며 막다른 골목에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

그 때도 정치자금 문제 등과 관련해 한치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되는 시대가 됐음을 노 전 대통령은 말 그대로 몸을 던져 보여준 셈이었다. 법적 유·무죄를 떠나 실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지금 우리 시대에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 차분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정치권과 공직에는 더욱 엄격한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고 있고, 고도의 청렴성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과거의 관행과 이전의 정치문화로 보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정밀한 확대경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사회의 변한 모습이요,시대적 요구가 됐음을 당시 노 대통령 사건은 웅변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한국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자세에 '큰 그늘'을 남겼다는 점에서도 '오늘'에 살아있는 경고와 교훈을 던진다. 정·관계 인사 수사 의지가 흐려져 반부패 사정(司正)의 본령을 그르치고 말았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21명을 기소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을 내사종결했다. 이로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구속 기소 이후 정·관계 로비, 세무조사 무마 로비, 노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6개월여 간 진행돼온 수사는 일단락됐다.

허지만 당시 검찰수사는 진실을 밝혀낸 성과에서나, 수사를 진행해가는 기법에서나 수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들은 사회 건전성을 위해서는 물론 검찰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란 높은 요구들을 그 때도 불러 일으켰다.

즉, 전체 21명을 기소했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이래 실속(失速)해온 수사를 마지못해 서두른 뒷매듭일 뿐이었다. 수사의 대미(大尾)를 위한 3대 현안으로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의 전모 발표, 박연차 피고인에 대한 뇌물공여 추가 기소 및 ‘살아 있는 권력측 비리’에 대한 수사 밀도가 요구돼 왔지만, 대미답기는커녕 한결같이 실적(失跡)이고 말았다.

즉, 당시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을 내사 종결하면서 ‘공소권 없음’ 기처분 사건이자 참고인들의 명예 훼손 우려 운운하며 구체적 내용은 아예 덮어 버렸다. 노 전 대통령 수뢰 혐의 입증을 자신해온 사실 자체를 ‘없던 일’쯤으로 다시 돌려 수사의 공정성·투명성을 부인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대 검찰에 그늘을 지웠다.

특히 당시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관련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축소수사의 결론을 내리고 말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특수 수사의 내재적 한계로 검찰 오욕사를 기록했다.

시대적 교훈은 역시 검찰의 독립성 부족이었다.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여론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당시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결과적으로 두 가지 오류를 다 범한 형국이었다.

한편으론 수사 내용을 중계방송하듯 흘림으로써 정치 보복의 시녀노릇을 했다는 오명을 썼고, 다른 한편으론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허겁지겁 공소권 없음을 결정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도 덮고 말았다. 검찰이 궁극적으로 겨냥한 목표가 '실체적 진실'이라기보다는 특정 개인이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도 한국 현대사는 검찰 수사중 주요 인사들의 자살 사건으로 얼룩져 왔다. 그 교훈과 의미 역시 간단치 않다. 왜 권력비리와 관련된 자살이 잇따르는가 하는 문제를 되새기게 한다. 2004년 박태영 전 전남지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시 비리문제로 사흘째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던 중 한강에 투신 자살했고, 대북송금 사건으로 나라가 들끓던 상황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투신했으며,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감상적인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당했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한강에 몸을 던졌다.

정치는 권력의 영역이고, 권력에는 반드시 비리가 따랐던 한국적 현상을 다시한번 확인케 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부패의 사슬이 있었던 것은 동서고금의 사실이지만 우리는 더욱 심했다.

후진적 수사관행과 정치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대형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확정되지 않은 혐의가 유출되거나 기정사실처럼 회자되고 당사자가 결백 증명을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되풀이되선 안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번 노 의원 자살과 같은 유사한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위한 제도적 방책과 과제도 한층 중요해졌다.

노 의원은 불법자금의 저격수로 불리던 그 자신이었기에 “정상적 후원절차를 밟지 않은” 정치자금을 받은 게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공개되자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일방으로 피의 사실이 공표, '인격살인'을 당하게 되는 후진적 수사관행은 반드시 손질 되어야 한다.

벌써 일각에선 그의 죽음이 현 정권의 몰아붙이기식 수사가 낳은 결과라는 주장에서부터 권력형 비리에 따른 사필귀정이라는 매몰찬 반론까지 위험스러울 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 접근들은 소모적 혼란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여당의 한 의원이 1년 전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 1·2순위로 꼽은 후보는 노회찬과 이재명이었다. 소위 ‘스타 정치인’들의 동시다발적 스캔들은 이른바 진보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뼈아픈 지적을 부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보수 정치인이라고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지난 정권의 실세들은 비리 혐의로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보좌파 정치인들이 단골 멤버가 돼버렸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조폭 연루설’,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구설에 올라 있다. ‘미투’ 때도 안희정, 민병두, 정봉주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우리나라 진보정치를 촌철살인으로 발전시켜온 노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덫에 걸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사실은 우리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이다. 한국에선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들의 안녕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은 물론 정치권 전체의 맹성을 촉구치 않을 수 없다.

검찰, 시대변화에 충실을

큰 흐름으로 보면 시대는 역시 분명 달라졌다. 시민의 감시가 갈수록 예리해 지고, 검찰도 독립적 기관화하고 있다.

생명이 아깝고, 자살이 안타깝지만 권력비리에 대한 사회의 감시망은 한층 촘촘해지고 있다. 수사도중 주요인사들의 자살은 바로 그 방증이다. 권력비리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될 때 그것이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이다. 합의와 승복이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일련의 자살에서 생각하고픈 메시지다.

‘살아 있는 권력측 비리’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가 법대로, 원칙대로 되지 않으면 안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수사의 정당성·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도 검찰은 특히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인권침해 소지를 가진 피의사실 누설을 방지할 제도적 보완책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검찰 스스로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봉사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겨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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