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이상과 현실이 다른 에너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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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이상과 현실이 다른 에너지정책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8.08.0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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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면 방학숙제로 곤충채집을 해야 했다. 당시 고향 마을에서 흔한 것이 잠자리와 매미, 메뚜기인지라 마음만 먹으면 방학숙제를 며칠 안에 끝낼 수 있었다. 마구간으로 가서 소의 꼬리털 하나를 몰래 뽑아 올가미 모양을 만든 후 겨릅대 끝에 묶었다. 쇠털은 가늘면서도 질겨 매미를 사로잡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감나무 그늘 평상에서 매미를 실에 묶어 날리며 바람 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한여름 더위는 성큼 물러나 있었다.

도시인의 삶이란 게 어릴 적 시골생활과는 딴판으로 그렇게 자연친화적이진 않다. 콘크리트 건물 더미 속으로 한낮의 열기가 쏟아지고 밤이 돼도 복사열이 빠져나가질 못해 도심 밤거리는 열대야로 휘청거린다.

매미는 아파트단지의 애물단지가 됐다. 대낮같이 환한 불빛 때문인지 매미가 밤낮없이 울음을 운다. 삶의 터전을 뺏긴 매미는 불모지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했다. 시골 논밭에 농약이 뿌려지기 시작하자 매미들은 독성을 피해 도시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명의 이기(利器)로 편한 세상이 됐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참 불편한 세상이 돼 버렸다.  전기의 소중함을 느낄 때는 정전이 돼서 암흑 속에 놓여 있을 때다. 궂은일을 당하면 대비를 하게 마련이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폭염 속 전기사용은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서민들은 그동안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걱정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지 못했다. 폭염 속 늘어난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해 정부가 누진제 완화로 전기료 부담을 한시적으로 줄여주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하지만 땜질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해 보인다.

알고 보면 우리 서민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산업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공급하고 그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해 왔다. 가정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해 전기료를 더 거둬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씁쓸해진다. 에너지 사용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삼성, 현대, GS 등 재벌기업들은 결국 서민들의 희생 위에 성장해 온 것이다.

국내에선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완료되는 2021년 이후에는 원전 건설이 중단된다.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것이다. 전기 생산 단가가 상대적으로 싼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으면 발전을 위해 석탄이나 석유,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전기료가 올라갈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소련의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단 한 번의 사고로도 큰 피해를 가져오기에 원자력은 현 정부에서 사라져야 할 에너지원으로 취급되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때 ‘원자력발전 단계적 축소’를 공약했지만 집권 후에는 축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마크롱 정부가 공약을 뒤집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전 시공 회사엔 비상등이 켜졌다. 수주 가뭄 속에 또 하나의 악재가 등장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수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일거리 확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최근 영국에 수출할 원전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린 것은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료 인상도 걱정이거니와 탈원전 정책이 지난 50년간 키워온 원전산업 생태계를 무너트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전기 수요가 폭증하고, 전국적으로 정전이 잇따른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도 지난주 이틀 사이에 세 번이나 정전이 돼 암흑으로 휩싸였다.

전기료 폭탄으로 전기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지났다. 폭염 속 에어컨 사용은 이제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최소한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요즘 매미 울음소리는 더 커져 사이렌 소리 같다. 매미는 여름 한철을 살기 위해 길게는 7년을 땅속 암흑에서 준비를 한다. 여름 한 달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기다려온 수년의 세월은 허투루 보낸 것이 된다. 이번 여름을 성공적으로 보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부르짖음. 매미는 그래서 더 우렁차게 소리 높여 우는 건지도 모른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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