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당 인적청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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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당 인적청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8.10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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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총선 ‘공천 학살’로 한국당 의원 절반 이상이 친박…‘친박청산’은 불가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왜 인적청산을 안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10일 기자와 만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단언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왜 인적청산을 안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미소를 띠며 기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힘도 없고, 힘이 있어도 못 합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대국민 소통 차원에서 시작한 ‘김병준 메모’에서 “국회의원을 청산할 방법이 없고, 공천권도 없어 쉽지 않은 길”이라며 “6~7개월 일하는데 당의 기본적인 것들을 바꿔야 한다. 사람을 자르려고 들어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현재 김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차기 총선 1년 반 전에 들어선 비대위원장이 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리 만무하고,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비대위원장이 인적청산을 해낼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앞선 관계자의 “(인적청산을) 못 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힘이 있어도 (인적청산을) 못 한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장을 좀 보태면, 한국당 계파 갈등의 역사는 ‘인적청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총선 때마다 ‘친박(親朴) 학살’, ‘친이(親李) 학살’, ‘비박(非朴) 학살’ 등 끔찍한 단어로 언론을 도배했던 것이 한국당 아니었던가. 이에 대한 앞선 관계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16년 총선 때 기억나시죠? 비박 학살이니 뭐니 했던 공천…. 이재오, 유승민, 진영, 조해진 이런 분들 다 잘라내지 않았습니까. 뭐 개중에는 무소속으로 나와서 다시 돌아온 분들도 계시지마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다 잘라냈어요. 그 자리에 다 친박이 들어왔잖아요. 지금 한국당에 있는 의원들 절반 정도가 다 그렇게 들어온 분들이에요.”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필두로 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유승민 의원과 ‘유승민계’로 분류됐던 조해진·이종훈·김희국·류성걸 의원 등을 모두 컷오프했다. 그밖에도 ‘친이계’ 이재오 의원,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반발해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내려놨던 진영 의원 등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그 자리는 모두 ‘진박(진실한 친박)’으로 채워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는 조용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한국당 의원 중 절반 이상이 전부 친박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박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 반대했던 분들, 기권했던 분들, 무효표 던진 분들 다 합하면 60표가 훌쩍 넘었어요(부결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한국당 의석수가 112석 아닙니까. 반 이상이 친박이라는 이야기예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말하는 인적청산이라는 게, 결국 친박 잘라내라는 거잖아요. 근데 한국당에 친박이 절반 이상이라고요. (김 위원장에게) 공천권이 있다 칩니다. 제대로 인적청산을 하려면 한국당 국회의원 절반 이상을 날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 분도 친박 저 분도 친박인데 누구는 날리고 누구는 놔둘 수 있겠습니까.

근데 국회의원 반을 날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2016년보다 더한 난리가 나겠죠. 친박 꼬리표에 공천까지 탈락하면 정치 인생이 끝나는 건데 (탈락자들이) 가만히 있겠냐고요. 2016년에 그렇게 싸워대다가 박살이 났는데, 2020년에 또 공천으로 난리를 피운다? 어지간해서는 못합니다. 다음 총선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박살이 나면 한국당은 진짜 망하거든. ‘안전빵’이라도 하려면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냥 다 안고 가야 하는 거예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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