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기수론 6人①] 원희룡·송영길·김용태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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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기수론 6人①] 원희룡·송영길·김용태에 있는 ´것´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8.08.17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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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강점은…?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 주는 감동
합리적 실사구시의 중요성·현장에서 답을 찾는 정치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공자(孔子)는 50대의 나이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안다’ 는 뜻처럼 자신이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나이 때라 전해진다.

얼마 전부터 정치권에는 50대 기수론이 다시금 뜨고 있다. 조용하지만 중량감 있게, ‘안정적인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음이다. 그런 점에서 6인이 부각되고 있고, ‘왜 눈에 띄나’ 살펴봤다. 6인은 ‘김영춘’(57), ‘원희룡’(56), ‘송영길’(56), ‘김용태’(51), ‘하태경’(51), ‘김관영’(50)이다. 이번①은 원희룡, 송영길, 김용태.

▲ 원희룡 제주지사는 개천에서 용 난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시사오늘
▲ 원희룡 제주지사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 발가락이 기형이 됐다. 장애를 가졌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정신력을 보인 바 있다. 사진은 원희룡 지사 블로그 캡처ⓒ시사오늘

원희룡, 발가락 장애와 가난 딛고
학력고사 수석에 사법고사 수석도
학생․노동운동 後 선거서 연전연승
진짜 개천에서 용 나온 인물의 주역

사진에서 보듯 원희룡 제주지사(55, 이하 원희룡)의 발가락은 기형이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저서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에 따르면 어릴 때 시장에 물건을 팔러 나간 부모님을 따라나서다가 리어카 바퀴에 오른발이 짓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꾸준히 치료를 못해 두 번째 발가락이 수직처럼 세워진 채로 굳었다.

이런 발가락으로 2001년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내 완주 한 일화는 익히 유명하다. 그간 보면, 잠룡이라 불렸던 여러 정치가들은 자신의 가난을 토대로 성공스토리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가난했다 치면,‘원희룡’을 따라올 자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만큼 진짜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원희룡’이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원희룡’은 지독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3 때까지 집에 전깃불이 안 들어왔고, 그마저 소유권이 없어 10번 이상 이사를 다녀야했다. 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녔으며 쌀밥 먹는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배추 장사 등을 전전했지만, 잦은 실패에 빚쟁이들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원희룡’은 공부에 집중했다. 줄곧 1등을 유지하더니 급기야 1982년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전국수석의 영광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전국 1등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순탄치만은 못했다. 전두환 신군부 독재에 반대, 학생운동에 앞장서 수배와 유기정학 처분을 받은 이후에도 야학 등 사회변혁의 꿈을 놓지 않았다.

1985년 1월에는 인천의 한 금속공장에 취직해 노동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1989년 소련의 몰락 이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뒤늦게 사법고시 준비에 매진했고, 이 역시 수석으로 합격하는 쾌거를 올렸다.

정치권에서도 제주지사 2선, 국회의원 3선 등 도전한 선거마다 단 한 번의 패함도 없이 승전보를 울렸다. 특히 합리적 개혁보수로 정치 혁신에 앞장선 대표적 소장파로써 일찌감치 대선 출마 경선에 나서는 등 잠룡으로 꼽혀왔다. 제주도 토박이로 신화를 일궈와 제주도의 아들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이런 그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지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혹자는 자신을 무당층이라고 소개하며 “원희룡이 나오면 무조건 뽑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알고 보면 원희룡 만큼 대단한 인물도 없다며, 가난과 장애를 이겨낸 모습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 또한 힘을 주고 싶다는 단순한지지 이유를 전해왔다. 지지이유가 어떻든, ‘원희룡’은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도장 ‘꾹’이다.
 

▲ 송영길 의원의 강점은 합리성, 민생실용, 실사구시적 대안을 제시하는 점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송영길, 합리적 진보·´실사구시형´
내집만들기 대안 등 민생실용 행보
특정 계파, 특정 이념에 치우침 없는
민주당 내 보기드문 합리적 남북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송영길 의원(56, 인천계양을4선, 이하 송영길)은 당내 특정 계파에 얽매이지도, 특정 이념에 치우쳐있지 않은 실사구시적 민생실용 합리적 진보인사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영남 출신의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호남 출신의 통합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영호남을 잇는 H벨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86세대로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인권 변호사로서 전문역량을 쌓은 후 국회에 입성했다. 또 광역시장으로서 행정을 섭렵했다. 영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에 능통한 4대 강국 외교통으로 대통령 직속 초대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역임했다. 남한의 경제위기를 신북방경제로 돌파하고, 집값의 10프로만 내면 되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 때문에 민생 대안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그가 합리적 진보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대표적으로 탈북자 정착에 공을 많이 들인 정치가로서, 남북 관계 등 한반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엿볼 수 있다.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처럼 북한에 대해 너무 경직된 이념도, 진보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동료 인사들처럼 북한에 대해 너무 치중한 이념도 갖고 있지 않은 운동권 출신이지만 실사구시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송영길’은 지난 7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탈북자 문제 관련, 여·야 모두에 소외된 탈북자는 조난자 신세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발언을 잠시 옮기면 이렇다.

“제가 인천시장일 때는 관내에 4천 명의 탈북자 분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시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기용도 많이 하고, 고충을 듣는 자리도 자주 마련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냐면, 국내 탈북자가 3만 3천 명이다. 문제는 이중 20% 가량이 북한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거다. 사실상 이념적으로 싫어서 넘어온 사람들은 일부이고, 생계형으로 탈북한 이들이 많지 않나. 문제는 이렇게 차별받을 줄은 몰랐다는 것인데, 거기에서 오는 갭이 큰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탈북자 3만 3천명도 통합 못 시키면서 어떻게 2천 3백만 명과 통합하려고, 북한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고사를 지내는 것인지….

제가 자유한국당 의원들한테 하는 얘기가 ‘북한이 당장 무너지면 당신 집에 한 명씩 맡아서 돌봐줄 자신 있습니까?’이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때문에 당장의 급격한 통일은 대한민국의 재앙이다. 수용할 수가 없다. 게다가 탈북자들은 또 어떤 이중의 고통이 있냐면, 자유한국당 등 한쪽은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하고, 민주당 쪽은 뭔가 실패해서 온 거 아닌가, 색안경 끼고 보는 것이다. 양쪽이 이렇다 보니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는 조난자 신세가 되는 거다. 그래서 탈북자분들이 저한테 감동하는 이유가 민주당 의원 중 이렇게 애정을 갖고 만나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저는 진짜 애정이 있다.”
 

▲ 김용태 의원은 민원의 날을 운영해 지역 주민의 고충 해결에 앞장선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용태, ‘민원의 날’ 히트 친 이유 왜?
“주민 위해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한다”
민주당 텃밭 강한 양천을에서 삼선 성공
현장에 답 찾고 주민 직접 만나 민원 해결

자유한국당 김용태 의원(51, 양천을․3선, 이하 김용태)이 히트 친 것이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둘째주, 넷째주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는, 주민과 직접 만나 민생을 해결하는 ‘민원의 날’ 운영이다. 언젠가부터 의원들 사이에서‘민원의 날’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도 ‘김용태 민원의 날’이 모범사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김용태’가 지역구로 있는 양천구 양천을은 민주당 텃밭이 강한 곳으로 통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만큼은 내리 ‘김용태’가 3선을 했다. 비유하자면 호남에서 영남 출신이, 영남에서 호남 출신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몇 해 전 민원의 날 간담회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접수된 민원 건만 상당했다. 주민이 민원을 접수하면 민원 건별로 자초지종을 점검해 피드백을 준다.

또 대면 약속을 잡고 어떤 문제인지 소상히 듣고 해결책 마련에 나선다. 그러다, 해결을 못하는 건이면 왜 못하는지 등 주민 속이 답답하지 않도록 투명하게 공개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민원해결 성공률로 치면 50%정도는 성공한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민원의 날을 시작한 초반에는 일 년에 2000명으로부터 민원 1000건을 접수받는 등 도움을 요청하는 발길들이 엄청났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했지만, 주민을 위해서라면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라는 원칙으로 민원해결에 주력했다는 전언이다. 덕분에 채무로 막막했던 주민이 일하고 안정적으로 갚아나갈 수 있는 살길이 마련되고, 갈 곳 없는 노인이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사기를 당한 주민은 변호사를 만나 법률 자문을 얻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대전이 고향이며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치열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지만 ‘원희룡’과 마찬가지로 소련 체제 붕괴 후 사회변혁 노선을 바꾸게 된다. 이후 정치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택했다. 한국당 비상대책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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