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18일은 故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는 날이다.
DJ 추모 속 그의 명연설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새정치연합(현 더불어민주당)내 한 노(老)정치인은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DJ가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일화를 들려준 바 있다.
1967년 박정희 정권 때인 7대 총선에서다. 당시 DJ는 신민당 소속으로 목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로서는 재선에 도전장을 낸 초선의 신분이었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정식으로 달았기 때문.
물론 이에 앞서 1961년 5월 13일 강원도 인제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적도 있지만, 불과 3일 뒤인 5·16 쿠데타가 일어나 금배지를 달아보지도 못하고, 원내 입성은 무산된 바 있다.
DJ는 이후 독재에 저항했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7대 총선에 출마한 DJ를 낙선시키기 위해 선거를 앞두고 수차례 목포를 방문했다. DJ의 대항마로 총무처 장관 출신의 김병삼을 공천한 뒤 전폭적 지원에 나선 것. 급기야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을 이끌고 목포까지 내려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정일권 국무총리는 삼학도다리 기공식을 갖는 등 관권선거를 하기까지 했다.
박정희 정권의 적극적 방해 탓에 상황은 DJ에 불리한 형국이었다. 그런데 한방에 이를 역전시킨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DJ의 명연설이었다.
DJ는 유세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목포 유권자의 심금을 울렸다.
“유달산과 영산강의 영이 있고 삼학도가 혼이 있다면 이 김대중을 보호해 달라. 이 김대중이도 죽어서 목포를 지킬 것이다.”
이 같은 명연설은 전국적 유명세를 탔고, 국회의원 당선으로 이어졌다. 6월 8일 7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개표결과 56.3%로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적극적 방해가 DJ를 전국적 스타정치인으로 만든 단초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좌우명 : 꿈은 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