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재구성①>
노회찬-이정희-유시민, “이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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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①>
노회찬-이정희-유시민, “이게 최선입니까?”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3.18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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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진보 지지율 3∼5%…결국 통합 추진
‘반대만 하는 정당’…‘서민정당’, 극과 극 평가
지식인·평론가 “대안 없이 말로만 진보 외쳐”
시민들 진보에 애정 있지만 실제 표는 ‘글쎄’

‘종북주의·주사파·운동권·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정당’, ‘복지·혁명·개혁·노동자 서민정당’…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아! 진보정당.” 그렇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제도권 진보정당 앞에 붙는 수식어다. 전자는 진보정당에 부정적 이미지를, 후자는 긍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표현이다.

그들은 아웃사이더다. 혹자는 힘없는 소수정당이라는 현실론에 입각한 비판을, 또 다른 이들은 주사파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분단체제가 낳은 시대적 비극이자 사생아라는 동정론부터 교조적이라는 뼈아픈 질책까지, 긍정과 부정의 대명사로 전락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서민정당을 표방하는 진보 양당은 서민보다 고학력 중산층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역설적인 현실 앞에 서있다. 일종의 계급투표를 거부하는 ‘반전된 의식화’라는 정치 환경에 놓여있는 셈이다.

또 불신의 대명사로 전락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냉소가 깔려있다. “그 놈이 그 놈이야…” 일상생활 중 정치 얘기가 나오면 꼭 한명은 이 같은 양비론을 펼치며 ‘정치 논쟁 금지’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우리 사회는 양비론이 활개 치는 사회다. 특히 정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주의 유산물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는 여전히 ‘나라님’이 하시는 일에 반기를 들면 ‘투쟁정당’,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정당’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한쪽의 투쟁과 반대는 다른 한쪽이 제공한 원인에 대한 불가피한 파생물이다.

원인제공자에 대한 책임소재 묻기를 거부한 채 또다시 우리들은 말한다. “그 놈이 그 놈이야. 다 한통속이야…” 제아무리 진보정당이 서민을 위한다고 해도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오른쪽).
이 같은 반전된 의식과 양비론적 정치관, 그리고 진보정당의 주체 역량 부족이 맞물린 결과, 진보 양당은 위기론 차원을 넘어 ‘진보 무능론’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참여정부 당시만 해도 민노당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3%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하며 노회찬 심상정 등 스타의원을 배출시켰다. 또 참여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거 이동, 2006년 지방선거 전 한때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 민노당은 NL(민족자주파)와 PD(민중민주파)간 정파적 헤게모니의 골몰돼 현실에 대한 인식 부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안 마련에 실패했다. 게다가 2006년 발생한 ‘일심회’ 사건과 2007년 ‘북핵자위론’ 발언은 대중이 민노당에게 등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단초로 작용했고 이듬해 분당의 원인이 됐다.

노회찬 심상정 등 PD계열이 창당한 진보신당은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며 현재 지지율 2∼3%에 그치고 있다. 서민들이 서민정당을 배제시키는 이 역설적인 현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허영섭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시사오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진보정당이 대중정서와 유리된 현실에 대해 “천안함, 연평도 사태 등에서 보듯이 진보정당의 주장이 너무 앞서 나간 게 문제”라며 “그들은 거기서 본인들의 존재가치를 찾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 아닌 한 단계 한 단계씩 진보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자신의 신념과 가치만을 고수한다면 지지율 회복이 쉽지 않다”고 충고했다.

이봉규 시사평론가도 기자에게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라며 “영국의 토니블레어가 제3의 길을 통해 좌파노선을 일부 수정하는 등 유럽의 진보정당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느냐. 그러나 민노-진보신당은 말로만 진보를 외칠 뿐 전혀 진보하지 않았다. 진보는 변화를 거부하는, 꼴통이 아니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민심과 더 괴리될 수 있다”며 “진보 양당은 10년 전 창당했을 당시 지식인과 젊은 층의 지지가 왜 급속히 꺼졌는지, 반성 필요가 있다. 대중에 눈높이에 뒤처지니까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정당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는 진보 양당이 국민들에게 보편성을 인정받기보다 ‘급진적인 의제화’ 전략을 일삼은 결과, 대중정서와의 괴리감이 심화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민노-진보신당이 지금의 ‘골수’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진보양당이 통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파괴력은 미비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들이 생각하는 진보정당은 어떤 모습일까. 일반시민들은 전문가들보다 좀 더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다.

▲ 왼쪽부터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진보정당이요? 애정 있지만 지지는…”

“민노-진보신당이 노동자 서민 등 약자를 위한, 의식 있는 정당인 것은 알겠는데, 너무 힘이 미비해서 선거 때 표를 주지는 않아요. 반(反)한나라당 전선을 펼치려면 당선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에 표를 줘야지, 뭔가 변화되는 게 보이지 않을까요.”

화장품업계에 종사하는 심표근(30·남)씨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 양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대학생 강모(여·23)씨는 “진보 양당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면서 “추상적인 거대담론만을 논하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교조적인 부분과의 단절을 주문했다.

어학원에서 일하는 권재하(31·남)씨도 “이정희 민노당 대표나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모두 좋아하지만 세력이 너무 약하지 않느냐”며 “정치개혁과 정책 등에 대해 옳은 말을 하지만 힘이 약한 건 현실이다. 애정과 지지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인 김미연(여·32)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중을 따라가려는 특성 때문이다. 음악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락이나 인디음악보다는 대중음악을 좋아하지 않느냐”며 “회사에서 정치 얘기를 해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만 화두로 꺼내지 민노당과 진보신당 얘기는 잘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일반 시민들 대다수는 ‘진보정당은 세력이 약하다’라는 생각 때문에 표심이 이동하지 않는, 일종의 사표(死票) 심리가 내재돼 있다는 점이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세력의 분열은 필패라는 명령 앞에 언제나 진보정당의 ‘독자세력화’를 무력화시켰던 DJ를 향한 비판적 지지가 유권자들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참여정부 당시 지지층이 일부 겹쳤던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선거 때마다 사표 논쟁이 불거졌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민노당에게 가는 표는 권영길 후보의 경남 창원 등을 제외하면 모두 사표”라고 말하자 진보논객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열린우리당은 사표심리를 이용해 앵벌이나 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 충북유권자희망연대가 지난해 6월 1일 펼친 <투표 참여 자전거 대행진>.
인터뷰 도중 시민들이 느끼는 진보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궁금했다. 거대 담론이 아닌 ‘노회찬 이정희 진보신당 민노당’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즉 “진보는 도대체 뭘까”에 대한 솔직한 속내 말이다.

대학생 강모(여·23)씨는 민노당의 이미지와 관련, “강기갑 의원과 폭행 파문을 일으킨 이숙정 시의원이 떠오른다”면서 “당 홈페이지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실제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있다. 평소 흰색 계통의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강 의원이 농민을 대변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뭐랄까, 너무 토속적인 것만을 추구해 딱딱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반면 강 씨는 진보신당에 대해 “노회찬 전 대표가 있는 당 맞죠”라고 말한 뒤 “지난해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당시 ‘국민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나라’를 공약으로 내세운 게 꽤 인상 깊었다.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른 무지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추구하는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 씨는 진보양당 이미지와 관련, “진보신당은 창당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아서 새로운 이미지가 있는데, 민노당은 구좌파 이미지가 있다. 민노당이 노동자 서민 정당인 것은 알지만 더 이상 신생정당이 아니다. 지난 10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권 씨도 “이제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과 비슷해 보인다. 맨 처음에는 혁신적인 이념 때문에 관심이 좀 있었지만 자꾸 뭔가를 외치는 집단으로 변질된 거 같다. 협상과 타협이 아닌 짙은 당색만 고집한 결과, 처음 창당 취지가 퇴색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그는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민노당의 지지여부를 떠나서 굉장히 좋아한다. 기존의 진보와는 다른 포근한 이미지 때문”이라고 노회찬 전 대표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움직여주는 게 필요하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는 이미지로 전락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 씨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대해 “회사로 따지면 경영자라기보다는 노조에 가깝다. 그래서 정치권이나 국민들에게 핵심세력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뒤 다만 “노조가 있어야지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호되는 만큼, 진보정당의 존재로 인해 더 나은 미래가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시민들의 인터뷰 도중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유 원장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동시에 불편한 존재다. 민주당은 친노 지지층의 분열의 가져온다는 점에서, 진보양당은 진보의 영역을 침범 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이 돋보인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 진보자유주의라는 가치를 통해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판을 뒤흔들 것으로 본다.(대학생 강 씨)”, “진보 양당보다는 유권자들에게 친밀감을 준다. (심표근 씨)”, “유시민 원장을 응원한다. 굉장히 똑똑하고 바른 말을 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권재하 씨)”,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을 대변해서 정의를 추구할 것 같다.(김미연 씨)”

시민들은 유 원장에 대한 비판과 조언에도 거침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 때문에 애정을 보인다는 시민도 있는 반면, 권 씨는 “유시민 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기소신이 강하다. 그런 면 때문에 지금의 위치까지 갔겠지만,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적을 만들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고 강 씨는 “지난해 경기지사 선거 때 유심히 봤는데 한나라당에 맞서는 투사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홀로 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결속력이 있는 반면, 유 원장은 혼자가려는 경향이 있다”며 비토세력과의 거리감을 줄일 것을 조언했다. 

유 원장과 국민참여당의 이념적 성격에 대한 지식인들의 논쟁과는 달리, 시민들이 느끼는 ‘유시민’ 브랜드에는 개혁·변화·투사 등 진보 이미지가 내포돼 있는 셈이다. 이는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있는 야권연대에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진보진영은 ‘87년 체제’ 이후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국민들에게 보편성을 인정받는 데 실패하며 전환적 위기를 스스로 자초했다. 진보개혁진영에게는 그간의 계급정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로의 재구성이라는 과제가 남겨진 셈이다.

과연 ‘민노-진보-참여당’ 등 진보개혁진영의 트로이카 체제는 탈패권적이고 탈정파적인 새로운 정당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제 그들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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