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471조 超슈퍼예산-경제운용 음영(陰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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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471조 超슈퍼예산-경제운용 음영(陰影)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9.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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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건전성 적신호
‘세금 살포’ 전면화
미래 세대 ‘빚 유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새해 예산안이 나왔다. 올해보다 무려 9.7%(51.7조원) 늘어난 470.5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증가율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때인 2009년(10.6%) 이후 가장 높다. 급팽창이다. 그야말로 超슈퍼예산이다. 여권이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 증액을 주장한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소득주도 성장' 고수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급격한 재정 확대를 통해 그 후유증을 감당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확장재정을 마중물 삼아 갈수록 심각해지는 투자와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읽혀진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 어느 때에도 이처럼 강하게 재정 확대의 가속 페달을 밟은 적은 없었다. 이 추세라면 예산 500조 시대도 2020년으로 앞당겨질 게 확실하다.

이번 예산편성은 사실상 '세금 살포’ 정책을 전면화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도 늘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기 하강 국면에서 마냥 세금에 기댈 수는 없다. 오히려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증세가 초래할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문 정부 들어 나라 곳간을 털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재정 중독’도 심각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차세대에 불건전 재정구조의 부담을 넘겨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않다. 일기 시작한 경제운용의 음영(陰影), 무엇이 문제이고 쟁점이며, 바람직한 개선방향이 되어야 할지, 심층진단이 필요하다.

과도한 팽창

정부는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총지출 470조5000억 원의 2019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올해 수퍼 예산에 이어 내년엔 울트라 수퍼 예산이다. 복지중심의 과도한 편중예산이 특징이다. 성격의 흐름은 올해와 비슷하다.

이번 예산 증가율(9.7%)은 내년의 경상성장률 전망치(4.4%)를 두 배 이상 앞지른다. 재정수입 증가율 전망치(7.6%)와 비교해도 2.1%포인트나 높다. 경제의 감당 능력이나 재정수입이 불어나는 속도에 비춰볼 때 과도한 팽창예산이 분명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일자리 상황이 대단히 어렵고 분배지표도 악화하는 등 체감 삶의 질이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예산안”이라고 확장 예산 편성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투성이다. 예산 편성 출발부터 그렇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내년 예산을 5.7% 늘리겠다고 한 바 있다. 올해 7.1% 늘린 만큼 증가율을 낮춰야 재정 부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였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대폭 늘리라”고 요구하면서 증가율은 9.7%로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세계 경제는 호황을 달리고 있다. 우리만 나락으로 빠진 상황에서 세금과 빚으로 조달한 돈을 살포하겠다니 그것이야말로 포퓰리즘 예산에 다름아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과속 스캔들’이 빚은 고용 참사를 메우느라 예산을 크게 팽창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예산안은 가히 역대급 확장정책의 투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2009년보다는 증가율이 낮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외부 충격의 여파로 성장률이 마이너스 1.9%로 예상됐던 당시와 지금 상황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건 무리다.

이같은 확장정책의 밑바탕에는 “국민의 삶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큰 정부론’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욱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올해보다 무려 22.0%나 늘어난 일자리 예산을 포함해 복지 예산(165조원) 비중이 역대 최대인 34.5%까지 늘어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세금 만능주의'

정부의 자세에는 '세금 만능주의'가 깔려있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꺾이고 일자리 부족이 심각해진 지금, 세금 지출을 늘려 선제적으로 경기 대응을 해나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적절한 선을 넘었다는 데 있다. 모든 문제를 손쉬운 세금 퍼붓기로 해결하려는, 이른바 '세금 중독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규제 혁신이나 노동 개혁, 기업 활동 활성화 같은 근본 대책은 지지부진하거나 역주행하면서 세금부터 쓰겠다고 한다. 국민 세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文정부 출범 1년 반 동안 일자리에 투입됐거나 사용할 예산은 총 54조원에 달한다. 천문학적 돈을 퍼부었지만 지난 7월 일자리 증가 폭은 1년 전 대비 5000개의 최하위에 그쳤다. 54조원이 모래 위에 뿌린 물처럼 사라지고 있지만 내년엔 일자리 예산을 무려 22%나 더 늘리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올해도 경찰·군인·교사 등의 공무원을 2만7000명 증원했다. 학생 수가 충격적 수준으로 줄어드는데도 거꾸로 교사를 늘리고 있다. 내년엔 공무원 3만6000명을 더 뽑겠다는데 5년 임기 동안 정말 17만명을 증원하면 그 막대한 세금 부담을 국민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런지 되묻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다.

다른 일자리도 대부분 임시직으로 사실상 세금 살포와 같다. 일자리 예산이라며 음식점 주인에게도 세금으로 돈을 준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 30년간 일자리에 350조원의 세금이 투입될 것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다.

▲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뉴시스

복지예산 과잉

그 연장선상에서 새해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12.1% 늘어난 162조2000억원에 달한다. 복지 수레바퀴를 굴린 결과 이 부문의 예산 비중 34.5%와 증가액 17조6000억원은 역대 최고, 최대 수준이다.

기형적일 정도의 과도한 복지중심 예산이 주는 불안감은 지우기 어렵다. 복지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20조원을 넘겼다고 자랑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증가율이 고작 3.7%다. 고용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다. 환경분야 예산도 불과 2000억원 늘어난 7.1조원에 불과하다.

예산의 총 12개 지출분야 중 7개 분야(농림 수산 식품 /문화 체육 관광 /공공질서 안전 /외교 통일/환경/R&D/SOC)의 예산증가액은 1조원 미만이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수준으로 새로운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다. 행정분야가 9조원 가까운 8.9%의 증가율로 눈에 띄지만 공무원을 대거 채용해 생긴 인건비가 대부분이다.

복지예산의 과잉편성은 새해 뿐 아니다.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복지예산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있다. 2022년 총지출은 5년 전에 비해 41%(167조원) 늘어나게 되는데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65%(84조원)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 제고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급격히 늘리면서 일반·지방행정 예산도 48%(30조원)나 불어난다. 반면 산업 예산은 26%(4조원) 증가에 그치고 SOC 예산은 되레 20%(4조원) 줄어든다. 복지 분야 법정지출을 비롯한 의무지출은 올해 전체 예산의 50%를 넘어섰으며 앞으로도 재량지출보다 훨씬 빨리 불어나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떨어트릴 게 틀림없다.

의무지출 역기능 

재정 건전성이 실로 걱정이다.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면 위기 발생 시 정부의 대응력이 떨어지고, 국가 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게된다.

정부는 이번에 세수 증가를 예산 팽창의 이유로 삼았다. 김 부총리는 “세수 증가를 감안해 규모를 확대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금도 모자라 빚을 내야 할 판이다.

그런 실상은 새해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도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28조5000억원에서 내년에는 33조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1년 54조2000억원,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에는 63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있다.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복지 확대·공무원 고용에 따른 경직성 예산이 늘어난 결과다. 특히 복지 예산은 경직성이 높다. 한번 시작하면 줄지 않는다. 앞으로도 지출팽창은 외길 수순이다. 국가 재정이 만성적자 늪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재정 건전성이 우려되는 건 당연하다.

일단 반영되면 폐지나 축소가 힘든 의무지출의 급증으로 해마다 예산의 경직성이 커진다는 것은 실로 큰 문제다. 내년에도 경직성 예산이 늘면서 의무지출 예산 비중은 51.4%로 재량지출(48.6%)을 웃돌았다. 재정의 유연성과 위기대응 능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만성적자 구조

올해와 내년의 세수 여건이 좋기 때문에 재정을 넉넉하게 쓸 수 있다는 정부의 낙관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8~2022년 재정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3%다. 정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짜기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의 연평균 경상성장률 전망치(4.6%)나 재정수입증가율 전망치(5.2%)보다 월등히 높다. 나라 곳간에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게 더 많으니 재정건전성은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머지않아 국가재정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누적 적자는 179조원에 달해 이명박(99조원)·박근혜 정부(111조원)를 크게 뛰어넘게 된다. 건전 재정을 자랑하던 우리가 만성적 적자 구조로 전락했고 더 악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지금은 세금이 잘 걷히지만 경기 부진의 영향이 세수에 미치게 되면 적자는 더 커진다. 국가 채무도 향후 5년 동안 34% 늘어 843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GDP의 40% 수준이지만 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경제는 침체인데 재정까지 만성 적자면 이중(二重) 리스크에 빠진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파격적인 재정 확대의 효과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참사 수준의 고용과 분배 쇼크에 대응하려 대대적인 재정 살포에 나섰다가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제고 효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한 채 재정건전성만 악화시킬 수 있다. 이대로 가면 현 정부 5년 동안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모두 220조원을 넘어서고 국가채무도 230조원 넘게 불어난다.

그나마 반도체 경기까지 가라앉으면서 세수 호조가 막을 내릴 경우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지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일자리와 재정카드

그 관건에는 역시 일자리 예산이 자리한다. 새해의 경우 일자리 예산만 전년 대비 22.0%나 늘어난 23조 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증가율 12.6%의 2배에 가깝다. 이 또한 사상 최대 규모가 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일자리 등을 잃은 저소득 근로자 등을 지원하기 위해 근로장려금(EITC)을 대폭 확충한 결과다. 이와 별도로 일자리안정자금 등 영세 자영업자 지원에도 5조6000억원이 책정됐다.

‘세금 붓는’ 일자리인 공무원도 국가직 2만1000명, 지방직 1만5000명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제(官製)일자리가 과연 지속 가능한지는 치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의 결과는 초라하다. 문재인 정부가 고용절벽 해소를 위해 2년간 54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용성적표는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실업자는 10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고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반기에는 상황이 더 나빠져 지난해 30만명을 웃돌았던 취업자 증가폭이 올해 10만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재정만으로 일자리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또다시 재정카드만 들고 나오는 형국이다. 내년 예산도 공무원과 사회서비스직 등 관제 일자리와 구직자에 대한 직접 지원금을 늘려 실업 고통을 일시적으로 덜어주는 쪽에 집중됐다.

반면 중장기 성장의 기반이 되면서 고용 창출 효과가 큰 SOC 투자는 18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오히려 5000억원 줄였다. 근원적인 일자리 창조 분야인 R&D는 20조 원을 넘어섰지만 올해보다 3.7% 증가하는데 머물렀다. 기업 투자를 뒷받침할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은 14.3% 늘어난다고 하지만 다 합쳐봐야 18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투입 실효성

일자리 창출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의 핵심은 실효성이다. 그 돈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로 이어질 것인가, 그 일자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올해의 경우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예산의 집행률은 현저히 낮다. 현재 고용창출장려금은 14%, 청년내일채움공제는 23%, 직업훈련생계비융자는 38% 정도에 불과하다. 예산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면 사상 최대 규모라도 성과를 낙관할 수 없다.

이런 저효율 상황에서도 아무리 애를 써도 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으니, 내년에도 어김없이 공공근로같이 노인들이 참여하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10만개 늘리고 공무원을 확대하는 방법처럼 직접적이고 손쉬운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무엇보다 민간투자가 되살아나야 한다. 결국 기업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규제 완화와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산업구조 개편으로 신성장동력을 자극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을 외면하고 재정만을 내세운다면 일자리 예산은 나랏돈을 흡인 방류하는 유출구에 그치고 말것이다.

지난해에도 일자리 창출에 꼭 필요하다며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항목은 내년 예산안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시 제대로 검증돼야 마땅하다.

이번 예산안에는 지역밀착형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라는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그동안 SOC 투자에 부정적이었던 이 정부도 고용 사정이 급해지자 입장을 바꿔 SOC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항만·공항·철도·도로·통신 등 전통적인 SOC 투자도 미래의 성장 잠재력이나 국민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민생 체감만족도

중요한 것은 예산지출의 체감 만족도를 높이는 일이다. 민생 현장의 표정과 반응은 중요하다.

문재인정부 출범후 복지 지출을 그렇게 크게 늘렸는데 만족스런 표정의 국민은 현재 찾아보기 힘들다. 온갖 대책에도 저출산, 청년실업은 출구가 열리지 않았고, 고용안정자금을 준다해도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는 상황이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전례 없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일자리 사업은 확보된 예산조차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종합적인 계획 없이 백화점식으로 이것저것 일만 벌린 탓이 크다. ‘집중과 선택’의 원칙에 따라 성과가 부진한 사업들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자영업 지원도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자영업 부진은 근본적으로 공급 과잉과 온라인 거래 확대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단순한 지원 확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자영업 구조조정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 확대와 재취업 지원 등 고용 안전망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적극적인 재정 운영은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교한 전략 없이 재정 지출만 확대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부채 전망

최근 한국경제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저하와 내수 침체로 벼랑 끝 위기에 몰려 있다. 신규 취업자 수가 급락하고 취약계층의 소득이 감소하는 등 고용ㆍ분배 위기가 심각하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저소득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선 재정의 역할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더욱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8% 선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3%)에 비해 양호하다. 올해 상반기에만 추계세수보다 20조원 가까이 더 걷히는 등 나라 곳간 형편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국가부채 증가 속도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ㆍ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가만 있어도 복지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채무비율이 지난 5년(2012~2017년) 사이에만 6%포인트 넘게 높아졌다. OECD와 국회예산정책처는 2060년 한국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194~196%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나랏돈을 푸는데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내수와 기업투자 등도 부진한 데다 국제 경쟁력 악화에 따라 수출도 언제 꺾일지 모른다. 내년 경제성장률도 2% 중반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나랏돈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건 여러차례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적자재정 편성으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자칫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예산은 지속가능하면서도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적자는 빚더미로 나타난다. 기재부 추계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22년 897조8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16년 말 626조원과 비교하면 270조원 이상 불어난 액수다. 지난해 말 845조원선을 넘은 국가 충당부채를 합하면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1555조원에서 현 정부 마지막 해에 2000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 젊은 세대에게 빚을 유산으로 물려줄 작정인가. 국가경제는 반기업 정책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최악의 우려  

혈세를 뿌려 경제 실정을 땜질할 수는 없다. 재정 투입만으로 경제를 살려 내기는 어렵다.

규제 혁파와 같은 투자 유인책 없이 ‘재정 총동원 전략’을 편다고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복지가 개선된다는 보장은 없다. 정부는 국민 앞에 세금청구서를 들이밀기 전에 반시장·반기업 정책부터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우리가 지난해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단계에 이른 ‘인구 절벽’도 감안해야 한다. 미래 먹거리 창출에 관심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가채무의 악화일로 전망속에서 ‘세금주도 성장’이 지속 가능할 리는 없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확장 예산이 결합하면 민간은 더 위축되고, 성장도 고용도 놓치면서 국고만 탕진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의 넉넉한 세수는 반도체와 금융 등 일부 산업의 호황이 가져다준 것이다. 후년 이후에는 이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정부 스스로 2020년 이후 세수 증가세 둔화 가능성을 인정할 정도다. 내년에는 조세부담률도 처음으로 20%를 넘는다.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 경제가 반전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국가 재정의 균열은 불문가지다.

국회 심의와 역할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국회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표한 정부 예산안은 최종안이 아니다. 국회가 심의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조정할 것은 조정하게 된다. 여야는 심의과정에서 민간분야에서 활력이 생기도록 하는 방안을 좀 더 깊히 고심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자리는 결국 민간분야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년 일자리 예산 편성은 실효성을 담보할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이 부분을 검증해 필요한 요소를 보완하고 정부는 예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집행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급팽창 예산안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올 들어 고용과 분배 관련 지표들이 나빠지자 재정을 최대한 동원하는 전략을 세웠다. 지난 6월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개혁 없이 재정만 늘린다고 경제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경제도 살릴 수 있도록 경제정책의 전면적 재점검이 시급하다. 국회 예산심의는 이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체 SOC 예산을 더 늘리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SOC 투자는 단기적으로라도 고용 창출과 내수 진작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전년보다 7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 R&D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확대 편성이 검토돼야 한다. 신성장동력 발굴 등 혁신성장의 동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고용의 실질적인 주체인 기업의 일자리 만들기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결국 국회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요예측이 정확한지, 투입경로나 책임기관은 명확한지, 따져볼 세부 항목들이 적지 않다. 큰 틀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성장 동력을 확충하면서 경기의 마중물 역할도 해낼지 제대로 점검하는 예산 심의가 돼야 한다. 정부의 세수(稅收)낙관론과 재정건전성 등 올가을 정기국회에서는 함께 논의돼야 할 사안들이 많다.

이런 때 일수록 야당의 제 기능이 요구된다. 예산 심의와 관련법안 심의를 소홀히 한다면 야당이라 해도 위축된 경제와 고용 대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470조원에 이르는 예산의 방향성 점검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스며든 거품을 제거하고 비효율·낭비 항목을 차단해야 한다. 시야를 넓혀 규제 개혁, 기업 기(氣)살리기, 시장기능 활성화 등 ‘돈 안 드는 대안 정책’을 적극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당들은 올가을 국회에서 수권능력을 심판받겠다는 각오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예산안 기조 반성을

정부 예산은 한정된 국가 자원에서 민간이 쓸 돈을 정부가 가져다 대신 쓰는 것이다. 정부의 돈 씀씀이는 민간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자세에는 국민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데서 무거운 책임감이나 엄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드러난 처참한 고용 및 양극화 통계조차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경제 활력은 시장에서 나오고, 정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경제의 기본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취한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소비를 촉진해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일자리 나누기 등이 이런 정책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는 사실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기는 커녕, 그들의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줄여 소득감소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결과다. 새해 예산안 기조도 이같은 사태를 외면해선 안된다. 크게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지도부의 정확한 상황 인식과 실질적 학습 노력, 그리고 진정한 '위기돌파 리더십'의 확보가 절실하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정책의 완급을 조절하고 이해관계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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