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 ‘체육관 대통령’ 탄생시킨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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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육관] ‘체육관 대통령’ 탄생시킨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9.06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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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체국민회의 개최 장소…제8·9·10·11대 대통령 탄생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1971년 대선에서 DJ에게 고전한 박정희는 개헌을 단행, 장충체육관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제9·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

“공화당 정부는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기어이 박정희 대통령의 당선을 저지하지 않으면 영구집권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정권 교체 가능성은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나선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는 이런 예언을 했다. 박정희가 3선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선은 치러지지 않을 것이며, 공화당이 영구집권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대선이 끝난 지 불과 1년 뒤, 이 끔찍한 예언은 현실이 됐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아들여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힌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27일에는 비상국무회의가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개헌안을 의결·공고했다. DJ가 예견했던 박정희의 영구집권 계획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27일 상오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는 전문 126조 부칙으로 구성된 헌법개정안을 의결, 공고했다. 이 개헌안은 1개월 이내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확정 시행된다. (중략)
개헌안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과 대통령, 국회의원(간선 의원은 3년)의 임기를 각각 6년으로 규정했고, 통일주체국민회의는 2천명 이상 5천명 이하의 민선 대의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를 채택했고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 정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의원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의원은 직접 선거케 되어 있다.

개헌안은 대통령이 국가의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의해서 결정할 것을 발의하는 권한과 국회 해산을 행사할 수 있게 규정하여 헌법상 영도자의 지위를 강화했고 국회에는 국무총리, 국무위원 해임결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중략)
개헌안은 국회 회기의 단축,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국회출선, 답변 요구권의 제한, 국정감사의 배제, 국회의원 선거의 정당비례대표제 폐지를 규정했다.
그리고 개헌안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의 발동 내용에 대한 국회의 승인을 요하지 않게 되어 있으며 국회는 긴급조치의 해제를 건의할 수 있고 동 건의는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 정치적 구속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1972년 10월 27일 <매일경제> ‘통일 지향한 유신적 체제개혁…국가 항상에 국민회의를 설치’」

▲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 1일 개관한 실내체육관이다. 사진은 개관 당시의 모습. ⓒ서울시설공단

유신헌법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대통령 직선제 폐지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대통령에게 헌법 효력까지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 부여 △대통령 임기 6년으로 연장 △연임제한 철폐 등이다. 더 쉽게 말하면, 한마디로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것이다.

12월 23일. 새로운 헌법에 의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열렸다. 전국에서 뽑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장충체육관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대의원들은 무려 99.9%의 득표율(찬성 2357표, 반대 0표, 무효 2표)로 박정희를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나흘 뒤 같은 장소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히는 ‘체육관 대통령’ 탄생이 한 장소, 바로 장충체육관에서 모두 이뤄졌던 셈이다.

「유신체제의 모체로 출범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23일 상오 10시 시내 장충체육관에서 역사적인 개회식을 가진 다음 곧이어 제1차 회의를 열고 대통령선거에 들어가 유신체제를 영도할 제8대 대통령에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 후보를 절대적인 지지로 선출했다. (중략)
이날 선거는 국민회의법 제18조의 규정에 의한 절차를 거쳐 후보 등록을 마친 박정희 의장을 대상으로 하여 각 시도별로 투표가 실시되었는데, 투표는 유신헌법 제39조의 규정에 따라 토론 없이 무기명으로 투표용지에 후보자 성명을 기입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한편 이날 투표 결과는 찬 2357표 반대는 한 표도 없이 무표 2표로 박정희 후보를 선출했다.
1972년 12월 23일 <매일경제> ‘8대 대통령에 박정희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장충체육관은 세 차례나 더 ‘체육관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봐야 했다. 1978년 7월 6일에는 에는 박정희가 제9대 대통령으로, 1979년 12월 6일에는 최규하가 제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역시 1980년 8월 27일 장충체육관 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치사의 ‘암흑기’를 모두 지켜본 것이다. 

▲ 현재의 장충체육관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재탄생한 건물이다. ⓒ시사오늘

한편,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 1일 개관한 실내체육관이다. 개관 당시 장충체육관에 대한 언론의 묘사는 아래와 같다.

「오는 2월 1일 동양굴지의 시설과 규모를 가진 실내체육관 장충단 시립체육관이 개관된다.
장충체육관의 건립으로 우리나라도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각종 경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인데 ‘맘모스’ 장충체육관은 60년 3월 서울시에서 총 예산 9백여 만 원을 들여 착공, 2년 9개월 만에 완공을 보았다.

건평 1511평의 이 체육관은 그동안 8만4천여 명을 동원, 시멘트 1756톤, 철근 627톤, 알미늄판 1360평을 들여 완성한 반원형 건물이다.
1963년 2월 1일 <동아일보> ‘장충단체육관…오늘 개관한 동양굴지의 실내코트’」

‘체육관 선거’ 탓에 이미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사실 장충체육관은 우리 스포츠사(史)가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66년 김기수는 장충체육관에서 한국 최초로 복싱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으며, 1983년 이만기의 초대 천하장사 등극도 바로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종목별 경기가 펼쳐지기도 했으며, 1990년대 최고의 인기 이벤트 중 하나였던 농구대잔치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과거 e-스포츠의 대명사였던 스타크래프트 리그 결승전의 단골 개최장소이기도 했다.

이후 장충체육관은 건물 노후 문제로 2012년 6월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돌입, 2014년 12월 31일에 완공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됐다. 지금은 프로배구 서울 우리카드 위비(남자부)와 GS칼텍스 서울 KIXX(여자부)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각종 공연 행사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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