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정기국회 난(難)기류와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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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정기국회 난(難)기류와 정치권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9.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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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현안 최우선 절실
정치 존재이유 증명해야
實事求是 협치로 정상화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정기국회가 지난 3일 10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어느 때보다 쟁점과 과제가 많은 회기다. 미중 무역갈등이 확산하고 국내 경제지표도 심상찮은 데다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새로운 고비에 직면한 엄중한 상황에서 열리기에 그 중요성은 막중하다. 국가운영 전반에 드리운 불확실성 때문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년간 문재인정부의 공과와 정부 정책을 놓고 여야의 첨예한 공방이 예상된다. 470조5천억원의 예산안과 민생법안, 판문점 선언 비준에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등 난제가 산적하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 지지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여야 4당의 '올드보이' 리더십 출범과 정치 격돌로 정국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야가 새 대표로 모두 교체된 후 맞는 첫 국회 일정인 만큼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예고돼 있다. 4당 신임 대표들이 치르는 첫 시험대이기도 하다. 협력과 공생의 묘를 살려 산적한 난제들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런지 주목된다. 국회 내부개혁 또한 주시할 대목이다.

기류는 가파르다. 여야는 개회 첫날부터 현격한 입장 차를 보이며 파열음을 냈다. 문희상 의장이 개회사에서 "촛불 혁명의 제도적 완성은 개헌과 개혁 입법"이라며 '적폐청산' 등을 언급하고 개혁입법 실패에 대해 야당에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자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 하수인이냐"고 강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야 대립은 물론 여권 내부 정책노선 갈등도 여전히 문제의 핵심이다.

대결과 반목으로 점철된 요즘 정치 현실에서 정치권 모습은 기대보다 걱정을 앞서게 한다. 올 들어 임시국회를 7번이나 열었어도 결과는 언제나 ‘빈손’이었다. 현재 국회에는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법안이 무려 1만여 개에 달하고 있는데, 또 다시 대립과 갈등으로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 국민은 정쟁 과열로 파행을 거듭하다 졸속·부실 국회로 끝나는 걸 한두 번 봐온 게 아니다. 이번에도 그런 폐습을 드러낸다면 국회 무용론까지 들끓을 지경이다. 정기국회 현안과 전망, 정치권 과제를 집중 조명한다.

입법 전쟁

현재 국회 구성은 야대여소이다.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이 안되며 단독으로 입법을 추진할 수 없다. 여당 자체도 과반수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소위 국회선진화법으로 여야 간의 이견이 있는 법안의 입법 추진은 어렵다. 여야 합의가 없으면 어떠한 법안도 국회에서 입법되지 못하고 정부 역시 주요 정책 마련이 불가능하다.

최근 각 정당이 새롭게 지도부를 구성한 후 일하는 국회, 협치하는 국회, 개혁 국회를 다짐했지만, 과연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과거에도 의장단과 여야 지도부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이런 약속을 했지만 결국 약속과 달리 정쟁으로 일관하다 정기국회가 끝날 쯤 무더기 각종 법안이 허술하게 심의, 통과되는 사례가 너무 많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현재 최하위 수준이다.

특히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를 맞아 여야 간에 각종 쟁점 법안을 둘러싼 본격적인 입법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처리가 시급한 민생·개혁 입법안이 산적해 있다.

470조5천억 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둘러싼 경제정책의 충돌도 예상된다. 고용과 성장 등 주요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슈퍼예산에 대한 현미경 심의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겨냥한 총공세를 벼르고 있어 어느 때보다 험로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으로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고비를 맞은 가운데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등 중대 현안이 겹쳐 있다. 올봄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정착 분위기가 최근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예측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이기에 이 또한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이와함께 장관과 헌법재판소 소장, 대법관 등의 인사청문회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치공방이 가열되면서 자칫 민생이 표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올드보이' 시험대

정당들의 자세와 역량이 중요하다. 6·13 지방선거 이후 주요 정당의 체제 정비가 끝났다. 60~70대의 ‘올드 보이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새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여야 4당 대표는 모두 60대 중ㆍ후반에서 70대 초반이다. 11년 전 여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선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앞서 세 차례나 당 대표를 역임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모두 대표 할 군번은 훨씬 지났다는 평가가 적잖다. 이들의 선출을 두고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20대 국회 후반기를 이끄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 역시 지난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한 70대이니, 외형만 보면 이번 정기국회는 그야말로 '올드보이' 전성 국면이다. 정치가 고단위 타협과 절충의 순풍으로 흘러갈 수 있을 듯도 하다.

더구나 이해찬ㆍ손학규ㆍ정동영 대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함께 나선 ‘멀고도 가까운’ 인연이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3당 대표들이 한때 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뜻을 같이한 경험도 있으니 협치에 대한 기대를 그만큼 할 수 있을 만도 하다. 여야 대표들이 성숙한 지혜와 경륜을 발휘해 이른바 ‘골드보이의 환생’ 드라마를 쓸 수 있을런지 관심을 모은다. ‘정치 복원’에 대한 염원이 높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다. 민주당 이 대표가 ‘20대 총선 승리 및 20년 집권 기반 마련’을 공언하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국가주의적 반시장ㆍ저성장 정책 폐기’로 맞받았고, 바른미래 손 대표는 ‘적대적 공생관계인 수구적 양당제도 타파’를 주장했다. 평화당 정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하면서 약자를 울리는 여권의 정책을 연일 난타하고 있다.

여야의 전략과 목표가 상충하는 만큼 인사청문회, 규제개혁 입법, 국정감사, 새해예산 등 현안이 숱한 정기국회는 전쟁터가 될 공산이 크다. 국회가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원로들의 복귀는 이처럼 한국 정치가 위기에 직면했음을 말해준다. 각 당은 양보와 타협을 외면한 채 대결과 갈등의 정치에 매달리고 있다.

여야 '올드보이' 대표들은 세대교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치는 나이가 아니라 정책으로 말하는 것”(이해찬) “개혁의지가 올드보이와 골드보이의 가늠자”(손학규) “올드보이 아닌 베테랑의 귀환”(정동영)”이라며 경륜이 지배하는 정치의 새 장을 열겠다고 했다. 이같은 언급들이 그야말로 말로만 끝나선 안된다. 그들은 화려한 경력을 쌓아오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빚을 진 사람들이다. 막대한 정국 난제들 속에서 헛된 야망을 접고 국회를 통해 실제 어떤 족적을 국민적 유산으로 그려 나갈 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충돌 격화 가능성

그렇찮아도 이번 정기국회는 기본 흐름상 어느 때보다 여야의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적폐청산에 이어 집권 2년 차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여당과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이 실패했다고 공세를 강화하는 보수야당의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법,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고용보험법, 공정거래법 등 민생경제회복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법)설치법, 검찰·경찰수사권 조정법 등 국정과제 입법 실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4·27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와 통일경제특구법, 국방개혁법 등도 통과하도록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권의 기조는 확연히 다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기를 연일 강하게 비판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책임을 묻는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부동산과 교육,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반대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녹록지 않다. 슈퍼예산을 놓고는 태풍 전야와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공약인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원안을 사수해야 하는 여권과 퍼주기 예산으로 대대적인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야권의 주장은 예산안 처리에 심한 진통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관건은 협치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1년 4개월 동안 제대로 된 협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최근 발표된 2기 내각도 협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여당은 최근 정기국회에 임하면서 ‘강한 여당’을 외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의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말도 나왔다. 야당도 정기국회를 일자리 문제 등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장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강대강(强對强)’의 충돌이 우려되는 부문이다.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이 안 되는 국회에서 민생법안과 예산안이 처리되려면 여야 협력이 전제돼야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라면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민생법안 처리 지연으로 가뜩이나 경기침체와 소득감소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더 깊은 좌절만 안길 가능성이 있다.

특히 '슈퍼 예산'을 포함해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들은 이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추궁하며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자리와 적폐청산 및 사회개혁 등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입법과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를 둘러싼 남북관계 역시 여야 입장차가 현격하다.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흘러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국민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입만 열면 민생 개혁법안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이해가 걸리면 이를 뒤집기 일쑤인 탓이다.

이미 8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까지 해놓고도 다른 쟁점 법안과의 연계 때문에 본회의 통과를 무산시킨 바 있다. 대통령의 규제혁신 1호 법안인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의 합의 처리도 미뤄졌다.

여야가 큰 틀에선 합의하고, 세부 항목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임시국회에서 불발 처리했다고 하는데 민생 우선 원칙을 고려한다면 오는 14일로 예정된 이번 정기국회 첫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결국 관건은 협치다. 여당은 여소야대 지형을 인정하고 양보를 통해 야당의 협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당 또한 반대와 견제가 본연의 임무이기는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만으로는 결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없다. 여야 정치권은 달라진 정기국회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주길 바란다. 민생과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여권 갈등구조

여권내부 갈등도 문제다. 소득주도성장은 여야 간 대립이지만, 혁신성장은 집권세력 내 갈등이라 더 복잡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혁신성장과 관련, “국회에서 협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야당이 아니라 여당 내 반대파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규제개혁을 뒷받침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강조해도 그때뿐이다. 의료기기, 인터넷은행에 이은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통령의 세 번째 규제혁신 현장 행보만 해도 그렇다. ‘21세기 석유’라는 빅데이터 혁명, 인공지능(AI) 혁명 등이 꽃을 피우려면 보호 위주 개인정보 규제를 완화해 데이터 활용의 길을 열어주는 법제화가 시급하지만, 시민단체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고, 여기에 적지 않은 여당 의원들까지 동조하고 있다.
이들이 합세해 정부가 활용을 허용하겠다는 ‘가명정보’에 이런저런 제한조건들을 붙이기 시작하면 설령 법제화된들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물론 청와대가 책임감을 갖고 이들을 직접 설득하고 있다는 얘기는 결코 들리지 않는다.

규제개혁을 놓고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핵심 지지층에서는 이미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기국회가 다뤄야 할 29개 개혁과제와 4개 반대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4대 반대 과제는 은산분리 원칙 훼손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무분별한 규제 완화 ‘규제샌드박스 5법’, 규제 프리존 특별법 제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문재인정부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할 것을 고대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문 대통령이 강조한 ‘규제혁신 1호 법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서 영국의 ‘붉은 깃발법’에 빗대며 인터넷은행의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지난 8월 임시국회 처리에 제동을 건 데 이어 정부의 지지기반인 참여연대마저 정기국회 처리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장에 '국회는 규제완화 말고 민생개혁입법에 나서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인터넷전문은행 법안 처리가 불발된 데는 친재벌적이란 이유로 규제 완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주당 내부 일각의 기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의 경우 핵심 내용이 야당 시절 민주당이 반대했던 것이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 승리로 여당이 됐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법안을 처리할 경우 '전통적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해 5월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만기친람 속에 당청ㆍ정청 모두 일방적인 관계였다. 집권 초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당정이 숨을 죽였겠지만 당정청의 불균형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기 정부의 국정과제를 무난히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정상적인 당청 관계와 정청의 화합은 필수적이다.

▲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제364회 국회(정기회) 제4차 본회의에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규제개혁 법안 향방

규제개혁은 여야간 협치와 여권내 갈등 조정으로 제대로 이뤄져야 마땅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은 영세 세입자나 형편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하루하루 손꼽아 가며 기다리는 법안들이다. 지역특구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처럼 경제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규제개혁 법안도 더는 늦춰져선 안 된다.

이들 법안은 19대 국회 때부터 여야가 치열하게 다뤄온 법안임에도 정쟁에 발목 잡혀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됐다.

정기국회로 넘겨진 규제개혁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처리되더라도 걱정이다. 논의가 ‘기·승·전·특혜논란’으로 흐르면서 규제개혁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역시 대표적이다. 자산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이어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매출이 50% 이상 일어나는 기업이라면 예외적으로 허용하자는 여야 간사단 절충안조차 ‘특정기업 특혜’ 논리에 막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논의에서도 대기업 특혜 논리가 걸림돌이다. 벤처기업, 스타트업, 지역기업이 나서 “우리가 먼저 죽게 생겼다. 제발 규제를 빨리 풀어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경제문제는 이념으로 풀 수 없고 풀어서도 안 된다. 이념으로 접근하다 파탄 난 것이 바로 공산주의 경제다.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성장은 규제 혁파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선 규제 혁파를 통해 원격의료·바이오·빅데이터·차량 공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만 이념적 사고에 갇혀 제자리걸음만 한다. 규제 하나를 놓고도 대통령은 ‘붉은 깃발’을 내리자고 하고, 여당과 시민단체는 새 깃발을 달기에 바쁘다. 깊은 수렁에 빠진 우리 경제가 실로 걱정이다.

그 수렁속에는 바로 '민생'이 있다. 통학차량의 어린이 갇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하차 확인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잠자는 어린이 확인 법안’(슬리핑 차일드 체크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7월 경기 동두천에서 통학차량에 어린이가 7시간 방치돼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10여건의 유사법안이 제출됐고, 여야 지도부가 지난 8월 국회 통과에 합의했던 법안이다. 여야 사이에 이견이 없어 무난한 처리가 예상되던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여야의 무관심과 태만, 무책임 탓이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 법안을 통과시켜 법사위원회에 넘겼으나, 법사위 전체회의에는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여야가 쟁점 법안에만 전력을 쏟는 통에, 정작 어린이 생명과 안전을 다룬 법안은 방치한 꼴이다. 당략과 잇속이 걸린 사안에는 그리 적극적이면서도, 시급한 민생 안건에는 이토록 무사안일이니 국회 신뢰가 바닥인 것이다.

인사청문회 효용성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사청문회도 정쟁과 파행없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정기국회 전체를 관통하는 여야의 전초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 대통령이 지명한 5명의 장관 후보자와 대법원장 및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등을 포함하면 10여명의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당시 한나라당 의석이 많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는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대법관과 국회 선출 헌법재판소 3인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인이 청문대상이었다.

법 제정 이후 7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청문 대상이 점차 확대되었으나 여야간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등 청문회의 문제점도 적지않다.

특히 청문회의 실질적인 구속력은 중요하다. 인사청문특위나 관련 상임위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안 되거나 임명 부적격으로 판정이 나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인사청문회의 구속력이 문제가 되곤 했다.

미국에서는 사전 검증이 철저하고 객관적인 시스템에 따라 이루어진다. 백악관 인사국과 FBI 신원조회,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직자 윤리위원회 등에서 다방면으로 철저하게 사전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99%가 인준에 성공한다.

이번 정기국회 청문회는 문재인 정부 집권 2기 내각을 구성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정부 출범 후 부동산 투기와 병역문제 등의 의혹으로 7개월간 인사청문 정국이 지속된 적도 있다.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기되는 지적은 전·현직 국회의원의 불패 신화와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었다. 당장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교육부 장관 내정에 대해서도 청와대에 지명 철회 청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세금 탈루, 병역 기피, 위장 전입 등의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인사청문회때 또다시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다면 지난 해 청문회 때 여러 비리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도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청문회때 어떠한 의혹들이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지만 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청렴성 등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관련 업무를 수행할 역량과 자질 및 철학에 대한 검증이다. 이번 청문회가 또다시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으로 점철되고 이에 대한 여야의 옹호와 공격 등 정쟁의 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청문회의 기능 정상화와 함께 정부인사에서 내정자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이 반드시 필요함을 다시 일깨운다.

예산과 국회역할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은 超슈퍼예산으로 불리는 내년도 예산심의다. 국회가 심의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조정할 것은 조정해야 한다.

역시 큰 갈등이 예고된다. 정책기조면에서 정부·여당과 야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시장주도성장 정책을 융합해 새해 예산안에 반영하는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정치 쟁점의 상당부분이 자연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내년 일자리 예산 편성에는 실효성을 담보할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이 부분을 검증해 필요한 요소를 보완하고 정부는 예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집행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급팽창 예산안은 당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올 들어 고용과 분배 관련 지표들이 나빠지자 재정을 최대한 동원하는 전략을 세웠다. 지난 6월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부터 깜짝 놀랄 만한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개혁 없이 재정만 늘린다고 경제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경제도 살릴 수 있도록 경제정책의 전면적 재점검이 시급하다. 국회 예산심의는 이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체 SOC 예산을 더 늘리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SOC 투자는 단기적으로라도 고용 창출과 내수 진작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전년보다 7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 R&D 예산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확대 편성이 검토돼야 한다. 신성장동력 발굴 등 혁신성장의 동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고용의 실질적인 주체인 기업의 일자리 만들기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국회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요예측이 정확한지, 투입경로나 책임기관은 명확한지, 따져볼 세부 항목들이 적지 않다. 큰 틀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성장 동력을 확충하면서 경기의 마중물 역할도 해낼지 제대로 점검하는 예산 심의가 돼야 한다. 정부의 세수(稅收)낙관론과 재정건전성 등 함께 논의돼야 할 사안들도 적지않다.

이런 때 일수록 야당의 제 기능이 요구된다. 예산 심의와 관련법안 심의를 소홀히 한다면 야당이라 해도 위축된 경제와 고용 대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470조원에 이르는 예산의 방향성 점검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스며든 거품을 제거하고 비효율·낭비 항목을 차단해야 한다. 시야를 넓혀 규제 개혁, 기업 기(氣)살리기, 시장기능 활성화 등 ‘돈 안 드는 대안 정책’을 적극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당들은 이번 국회에서 수권능력을 심판받겠다는 각오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FTA' 교훈

과거는 오늘에 교훈을 남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혁신성장 관련 법안은 초미의 관심사다. 여권 내부의 흐름이 특히 관건이다.

민주당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 진영의 반대와 반발에도 국익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한 일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그로 인해 재임 중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훗날 '옳은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아 오늘날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혁신성장은 문 대통령과 보수 정당이 같은 편이다. 그 맞은편에 진보 진영이 있다. 1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FTA 체결 카드를 꺼냈다. 보수 야당은 찬성했지만, 스크린쿼터 폐지를 놓고 영화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 배우 이준기씨를 초청, "한국 영화 정말 자신 없는가?"라고 물었고, 이씨는 "자신 있지만,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것은 걱정된다"고 답했다. 결과는 어떤가. 스크린쿼터 폐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는 건재하다. 보기에 따라선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졌다.

혁신성장은 기득권을 파괴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기득권층의 저항을 뛰어넘었다. 개방한 나라는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쇄국한 나라는 성공한 적이 없다는 논리로 한·미 FTA를 성사시켰다. 지금은 혁신이 나라의 성패를 가른다. 이번 '혁신성장' 향방의 경우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혜안과 돌파력 사례는 다시 상기될 필요가 있다.

국회 스스로도 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단행해야 된다. 말썽 많은 특별활동비 문제도 아직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정도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활동비를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업무추진비 등과 같은 다른 항목에 적당히 전용하는 꼼수를 부린다면 이 또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국민신뢰 회복 계기로

민생은 역시 중요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뒷전에 밀려서는 안 된다.

국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전환기적 위기와 기회가 위태롭게 공존하는 작금의 상황은 여야 정치권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여야가 양보와 타협의 협치로 국민 불안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수렴함으로써 시장과 경제 주체들에게 안정감과 확실성을 보여주는 성과를 나누어 가지도록 해야 한다.

여야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 그 폐해는 곧장 국민에게 돌아간다. 명분도 없는 정쟁 놀음으로 민생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겠다. 결론 없는 대치 끝에 파국에 이르는 정략정치는 대표적인 적폐로 청산해야 마땅하다. 적폐를 되풀이 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무엇보다 민생·경제를 살리는 일이 급하다. 여야가 네 탓 공방만 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절충점을 찾아 위기에 빠진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 그 밑바닥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줄 때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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