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칼럼>일본의 불행, 한민족 저력 보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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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칼럼>일본의 불행, 한민족 저력 보일 때
  • 김동성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3.2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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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거사에만 연연말고, 이웃 나라의 눈물 닦아 줘야

옛말에 먼 친척보다는 이웃 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다. 혈족이 중시되던 봉건주의 시대, 어찌보면 이 말은 당시 사회 구조와는 상반된 철학을 담고 있는 듯도 보인다. 가문과 혈연을 우선 하던 조선시대 등 유교주의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이 말이 진실을 넘어 인간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진리와도 같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해 왔다. 혈연으로 이어진 소위 '친척'이 명절이나, 집안의 행사 등 '특별한 날'에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데 비해, 이웃은 일상에서 늘상 마주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생활을 비교적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이는 좋은 일이 있거나 혹은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맞벌이가 늘고, 이웃 간의 소통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이 이 시대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이웃의 존재는 여전히 먼 곳에 있는 친척보다는 한결 든든한 친구 같은 느낌이라는 것.

그런데 이는 비단, 우리들 개인의 삶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 관계, 다시 말해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웃이라는 개념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촌락'의 개념으로 세계화 한 이후, 바로 이 국가 간 이웃의 의미는 한층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현대 사회에서 이웃의 의미를 장황하게 되새긴 이유를 한번 풀어 보려 한다. 하지만 눈치가 있는 독자라면 두말의 여지없이 '일본'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인간관계에서조차 이른바 '정(情)'의 철학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왔다. 비록 혈연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어려움에 대해 나 몰라라 하지 않아 왔고, 도움의 손길을 뻗어 난관을 극복하는 힘을 발휘해 왔다.

최근 이웃 나라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은 바로 이런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시험하는 하나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일본과 우리는 역사적으로 거리에서만 이웃이었을 뿐, 무수한 반목과 갈등을 펼친 '앙숙'으로 통한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과 지난 세기 민족에 치욕을 안겼던 '강제 합방'은 양국의 역사가 얼마나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돼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일본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각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처참한 불행에 앞서, 한번쯤은 지난 과거사를 떠올려 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본에 불어닥친 파고는 너무나 커 보인다. 수도 '도쿄'가 인접한 해안 도시는 쑥밭이 됐고, 인명피해도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엄청나다. 부모는 아이를 잃고, 아이는 부모를 잃고 울부짖거나 그마저도 참담한 심경에 눈물 마저 말라 버렸다.

평생을 일군, 삶의 터전은 바닷물의 침범으로 하루아침에 잃어 버려 오갈 곳도 없다. 당장 씻기는 고사하고 목을 축일 물(水)마저도 모자라, 속을 태운다. 매일 매일 다르게 올라오는 외신 뉴스 현장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충격적이어서 가슴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그들은 망자를 겨우 찾아, 간소하게 장례라도 치르고 싶지만 닥친 현실이 고통스럽고 힘겨워 슬픔까지 억눌러야하는 것, 그 모습이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우리 이웃 일본의 모습이다.

지난 과거는 과거대로, 훗날 그들에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당장의 불행만큼은 씻어줘야 하는 것이 진정한 한민족이 가진 정(情)과 이웃의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월요시사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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