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년 단임 대통령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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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년 단임 대통령의 비극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8.09.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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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합의제 민주주의 기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으로 비극 끝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토요일 오후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분당으로 가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2017년 탄핵 촛불 시위가 있었던 광장 군데군데에 경찰 병력이 집결해 있었고 여기저기 마이크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교보빌딩 앞과 청계 광장 쪽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시위 현장 도로변에는 ‘수괴 문재인 대통령과 주사파 일당을 일망타진하라’는 등 현 정부를 비난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1년 7개월 전 같은 장소에 걸려 있던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하라’는 현수막과 오버랩 되면서 ‘문재인 정권이 끝나면 문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문 정권과 함께한 고위층 인사 중 또 몇 명이나 감옥에 가게 될까’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채택되었다. 87년 체제라 불리는 9차 개헌 후 지난 30년 동안 6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후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 자식이 구속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살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9차 개헌 후 선출된 6명 대통령 모두 불행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현 정권의 사람들은 우리는 예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통계와 확률만으로 유추해 보면 현 체제가 유지되는 한 문재인 정부 역시 비슷한 운명을 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지역적 기반이 확실했고 오랜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확고한 지지 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 하에서 최 측근이었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구속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2년 앞두고 21대 총선이 실시된다. 일부에서는 공천 문제를 두고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의원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을 것이며, 21대 총선 후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소외될 것으로 생각한다. 소위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의 실제 임기 3.5년 론이다. 전직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임기 말이면 조롱을 당하고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처럼 무기력하게 추락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의 비극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9월 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두고 ‘국회의장이 모욕당하면 국회가 모욕당한다는 사실을 가슴 속 깊이 명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같은 논리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문 의장의 발언이 그의 정치철학에 입각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생각한다면 국회의장으로서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의 불구속 재판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내수 경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가 악화되는 원인으로 야당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지적하고 있는데, 필자는 경제 외적인 심리적 요인으로 지속된 적폐청산의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광화문 광장을 가로질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분당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분당행 버스는 시청과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에서 회차하여 남산 3호 터널을 넘어 가는데, 버스가 시청을 지날 때부터 차량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남대문에 이르러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버스 기사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태극기 시위대의 행진으로 차량이 움직일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커튼을 젖히고 반대편 도로를 보니 선도 차량과 이동하는 현수막을 따라 양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위대가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시위대가 동원되었다면 그 막대한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 것일까 궁금할 수 있다. 들리는 말로는 매주 토요일마다 수도권은 물론 먼 지방에서 오는 시위대까지 모두 자비로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정치란 적과의 동침이라고 말한다. 정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통합이라고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적폐청산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지는 않는다. 설혹 적폐청산이 초기 단계에서 갈등을 야기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의 폭이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하 사회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적폐청산이 국가 경영에 기반한 정치행태를 보이지 않고 권력 투쟁에 기반한 정치행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인적 청산을 최소화하고 제도 혁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사회적 저항과 갈등이 완화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김대중 정부였다면 탄핵이후 정국을 어떻게 운영했을까 생각해 본다.

제도 혁신은 헌법 개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헌법은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가치와 국민의 기본권 그리고 국가조직과 운영에 대한 근본적 규범을 정하기 때문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비극은 이젠 끝내야 된다. 다수결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통령제에서 합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절실히 요구된다.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현)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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