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안시성>, 잊고 있던 영광의 역사를 일깨운 수고로운 고증
[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안시성>, 잊고 있던 영광의 역사를 일깨운 수고로운 고증
  • 김기범 기자
  • 승인 2018.09.13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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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화면을 채우지 못하는 미약한 서사와 캐릭터의 아쉬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영화 <안시성> 포스터 ⓒ NEW

어느 민족이나 나라를 불문하고 침탈 당하고 복속된 치욕의 역사는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오욕의 과거사를 드러내려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역사만 해도 그렇다.

남을 징벌하거나 점령하기 보다는 약소민족으로서 지난했던 애환의 과정이 훨씬 많았다.

만주 일대를 호령한 광개토대왕이나 왜적을 물리쳤던 이순신의 위대한 여정에 갈채를 보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숱한 드라마와 야사(野史)를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안시성(安市城)과 양만춘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해 왔다.

사실 645년 당시 당 태종의 대군을 격파한 양만춘이란 이름은 우리의 사료에선 극명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올 뿐, 삼국시대와 당나라의 역사를 다룬 <구당서>나 <삼국사기>와 같은 사서(史書)에 공식적으로 나오는 인물은 아니다.

당 태종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안시성주의 실제 이름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안시성주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대신 그의 전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영화 <안시성>은 훗날 대중에게 양만춘이란 이름으로 알려지는 한 영웅이 당나라 대군을 맞아 싸웠다는 기록 몇 줄을 기반으로 그의 승전보를 그려낸다.

타인을 정복한 역사는 일천하지만 함부로 물러서거나 항복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안시성>은 우리가 잊었던 승리의 기억을 반추하는 데에 유효하게 파고든다.

연개소문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고립됐던 양만춘(조인성 분)의 수성기를 그린 <안시성>은 영화 초입부터 장쾌한 비주얼과 스케일로 관객을 공략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펼쳐지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와 CG는 15년 전 <반지의 제왕>의 몹신(mob scene)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광대한 벌판에서 벌어지는 강력한 액션들과 거침없는 비주얼은 국내 VFX 기술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여기에 드론까지 동원해 구현한 웅장한 카메라 워크는 추석 대목용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안시성>의 정체성까지 느끼게 해준다.

당군 20만과 안시성 군사 5000 명이 벌이는 숨 막히는 혈전은 역대 국내 사극 영화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결국 웅혼한 고구려의 기상을 설명하려는 듯 감독은 모든 물적·인적 공세를 펼쳐가며 보는 이의 시선을 스크린에 묶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안시성>이 내세우는 현란한 화면에 비해 영화 속 서사와 캐릭터의 흡입력은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마치 우람한 장수를 태운 명마가 광활한 광야를 헤매다 헐떡이는 모습과도 같다.

무모해 보이기만 하는 역사적 전쟁의 전야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었을 안시성 내 인물들의 모습은 화려한 액션에 갇혀 나머지 서사를 이끌어 가는데 분명한 한계를 보인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안시성 전투를 충실히 고증하지만, 극적 이음새는 헐거워 보일 뿐이다.  

양만춘에 대한 암살 지령을 받고 안시성에 잠입한 태학도 사물(남주혁 분)이 자신의 타격 대상에게 동화되는 장면이 그렇다. 양만춘과 사물의 교감은 이미 정해진 바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정확히는 인물 간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뚜렷한 계기나 파고는 생략된 채, 전쟁의 주변 상황에 쉽게 함몰되는 과정이 납득하기 어렵다.     

전쟁 앞에 선 주인공과 주변인물 간 갈등 폭은 부족한 편이고, 안정적이다 못해 심히 모범적인 틀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쉽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양만춘과 당 태종과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영화가 전개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평면적인 캐릭터는 분명한 지적 대상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맡은 조인성의 연기 폭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양만춘이라는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기엔 조인성이란 배우가 가진 외모와 젊음은 어딘가 어색하다. 여기에 중후함과는 거리가 먼 조인성의 딕션(diction)은 보는 이에게 허탈함을 안겨준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멜로 라인을 형성하는 엄태구와 설현의 캐스팅까지도 다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미약해 보인다. 

‘이김’의 사실보다는 침략당한 역사에 좀 더 길들여졌을 국내 관객들에게 <안시성>은 일말의 쾌감과 벅참을 내어 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분명한 승리의 기록을 전하는 훌륭한 저의에도 불구하고 위압적인 화면만큼이나 가슴시린 호쾌한 전쟁 드라마를 완성한다는 게 그리 녹록한 작업이 아님을 <안시성>은 동시에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오는 19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안시성주에 의해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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