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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북미 '빅딜' 재시동, 북핵은 과연 ?
‘싱가포르 이벤트’ 재탕은 안 된다
남북미 릴레이 회담 실질적 진전을
비핵화 로드맵 '약속 아닌 이행' 끌어내야
2018년 09월 15일 12:18:11 이병도 주필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북미 정상 간 연내 2차 비핵화 담판 가능성이 새롭게 떠올랐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준비가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미 백악관이 밝혔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 친서에 대해 "우리가 만들고 싶어하는 미·북 관계 진전의 추가적인 증거로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 상당한 접근 기류를 일단은 드러냈다.

백악관은 또 "2차 정상회담에 열려 있고, 이미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혀 양측이 관련한 논의를 사실상 시작했음을 밝혔다.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시기는 10월, 장소는 워싱턴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2차 북·미 정상회담도 1차 정상회담 때처럼 남북,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순차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미·북미 간 릴레이 정상회담이 열리게 돼 교착상태를 맞은 북한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열린 자세로 '톱다운' 방식의 외교를 재가동한다면, 가로막혀 있는 '북한 비핵화'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기에, 그 향배가 다시 비상한 관심을 끌게됐다.
'실효'를 끌어내지 못했던 1차 북미 정상회담과는 달리 이번에는 과연 제대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런지, 그 배경과 기류에 다각적 진단이 필요하다. 

물밑작업 기류

북한과 미국의 이번 접근은 보다 적극적 자세로 두 정상이 다시 한번 ‘톱다운 빅딜’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상회담 개최가) 올해 어느 시점에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위한 물밑 작업의 긍정적 기류를 시사했다.

이로써 북·미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 연내 2차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커졌다.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 전에 워싱턴에서 열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앞으로 고위급회담, 실무회담 등 다양한 협상을 거쳐야 하겠지만, 벌써부터 ‘10월 워싱턴’ 유력설이 나오는 등 관심은 정상회담으로 옮겨갔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첫 북미 정상회담 전에도 회담이 무산 위기에 처하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바 있다. 이번에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불확실성에 빠진 2차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셈이다.

북·미 접근 배경엔 미국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김 위원장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협상 추동력이 관건

이와관련, 김 위원장이 남측 특사단 방북 때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에 비핵화 실현 희망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한 데 이어 북한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등장시키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목표에 합의했으나 이후 석달간의 후속 협상은 ‘디테일의 악마’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예정된 방북일정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양측은 상대방에 대해 탐색할 시간을 가졌다. 협상교착의 원인인 ‘핵신고-종전선언’ 대립이라는 난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정상들이 만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 간 2차 정상 담판이 이뤄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중대한 진전 모멘텀이 될 가능성은 있다. 종전선언과 핵 리스트 제출 등 초기 비핵화 조치의 선후관계를 놓고 큰 이견을 보여온 양측이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며 유연성을 발휘할 개연성도 있다.

결국 2차 회담이 열린다면 1차 회담 때와 같은 원칙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비핵화 합의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협상의 추동력 생성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큰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 내 여론이나 미 의회의 지형은 점치기 어렵다.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반드시 북한 비핵화 시간표 설정, 검증을 위한 핵시설 리스트 작성 등이 종전선언과 같이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벌써부터 김 위원장이 핵 신고서 제출과 관련한 구두약속을 한 뒤 종전선언을 하고 이어서 핵 신고서를 제출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이달 하순 유엔총회 기간에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긴밀한 공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지난 14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남북 고위 실무협의단 수석대표인 김상균 국정원 2차장과 대표단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 실무협의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뉴시스=청와대 제공

긍정 기류 배경

역시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는 '완전한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에 대한 구체적 합의 여부가 핵심이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체제 보장, 신뢰구축에 대한 로드맵도 나와야 한다. 김 위원장이 언급했다는 '트럼프 첫 임기 내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남은 시간은 2년여에 불과하다. 동결, 신고, 사찰, 검증 등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최근 일련의 흐름만 보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일단은 긍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 방북이 분수령이었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면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 달성’이라는 목표 일정을 제시한 데 이어 9ㆍ9절 행사를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치러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가 오고 있다며 긍정적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미리 띄웠다.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 열병식에서 핵미사일을 갖고 나오지 않은 데 대해서도 만족감을 나타내며 김정은에게 감사 운운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백악관의 전향적 반응으로 볼 때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한 결단의 뜻을 내비쳤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김 위원장이 미·북정상회담 개최 요청 외에 핵시설 리스트 제출 의향 등을 담았다면 진일보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백악관 난맥상의 공개로 코너에 몰린 국내 정치적 입지를 반전시키고 11월 중간선거에 내세울 가시적 성과물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넘어야 할 산

그렇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직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지금은 비핵화 조치의 선행 조건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해 온 북한과 최소한 핵 리스트 신고 등의 실질적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자’고 약속했지만 4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요구하면서도 비핵화 조치를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이 기껏 한 것이라고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전문가 검증도 없이 폐쇄하는 시늉만 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지상 구조물 일부를 철거한 정도다. 우리는 북한의 핵물질이 얼마나 되고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이 핵신고서 제출에 대해 구두약속만 하고 종전 선언을 한 뒤 실제 리스트는 그 뒤에 제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행동을 봤을 때 이런 식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설령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출해도 이를 검증하고 실제 해체하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린다. 사정이 이런데도 종전 선언부터 하는 것은 사태를 꼬이게 할 뿐이란 관측이 높다.

더욱이 북한은 1차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있는 상황이다. 미국 NBC방송은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 6·12 정상회담 이후 3개월간 북한이 최소 1곳의 핵탄두 보관시설 입구를 가리는 구조물을 지어왔고, 북한 노동자들이 핵탄두를 보관시설에서 운반하는 모습을 미 정부가 관찰해왔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정부는 현재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분주한 모양새다. 여야 3당이 남북 정상회담 후에나 논의하겠다고 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의결해 국회로 보내는가 하면 14일엔 개성에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까지 가졌다. 판문점 선언으로 합의된 지 140일 만이다. 남북 당국자가 연락사무소에 상주하며 24시간 상시협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어서 남북 소통의 새 전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국회 의장단과 여야 대표의 방북 동행을 요구한 문재인 대통령도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가운데 쏟아지는 정부의 요구는 자칫 일방통행일 수 있다.

때문에 북·미간 기류에 있어선, 트럼프 대통령이 중단시킨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2차 정상회담의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이달 하순 뉴욕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남북미 연쇄 외교전의 결과도 관건이다. 북미가 1차 회담 때처럼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도록 비핵화 협상 중재역을 맡은 우리 정부의 역할이 막중해진 만큼 북미 입장 조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역풍 가능성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정상회담만 열린다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비핵화 프로세스에 들어가지도 않은 터에 또다시 정상 간 담판으로 해결하는 톱다운 방식이 굳어지면 앞으로 북한은 동결, 검증, 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단계마다 이런 ‘독특한 방식’을 요구할지 모른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세에도 적지않은 문제점이 제기된다.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우리 둘(자신과 김정은)은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며 의욕을 앞세우고 있다. 이래선 화려한 쇼 뒤에 허점투성이 공동성명만 남긴 ‘싱가포르 이벤트’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역대 정부가 25년에 걸쳐 이루지 못한 북핵 폐기를 자신과 김정은 사이의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믿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트럼프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보고 철저히 이용하려 한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낸 것이 벌써 네 번째다. 늘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이 9·9절 열병식 행사에 ICBM을 내보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 트럼프는 "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외교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측면이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여전히 북한이 올해 5∼8개의 새로운 핵무기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치밀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신고와 동결 같은 분명한 조치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정상회담 역할

따라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조치로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중재안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상회담은 첫 만남이었기 때문에 선언적인 합의에 그쳤다 하더라도 이제는 실질적인 조치를 끌어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북핵 해결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현재 몇 가지 안이 핵신고-종전선언을 둘러싼 교착국면을 깰 중재안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북미 양측이 수용할만한 로드맵을 찾아 우리 정부의 '촉진자' 외교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한때 엇박자 평가를 받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의 궤도로 복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해야 할 ‘빅딜’을 위해 남북이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해 중재를 맡은 우리 정부의 책임이 무겁고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의 실질 이행에 있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비핵화 조치란 게 자신이 선정한 대상을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폐기하는 ‘셀프(self) 비핵화’로 국제사회의 믿음을 살 수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비핵화 로드맵을 가다듬고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 내용을 미국과 다시 협의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미 북·미 정상이 문 대통령에게 협상가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으니 여건도 충분하다.

1차 북·미회담 숙제

1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부문도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동성명은 포괄적·추상적 내용을 선언적으로 밝힌 것에 불과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을 뿐 공동성명에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도, 대략의 이행 시간표도 없었다.  회담 이후 양측의 실무협상에서 진전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명문화하지 않은 채 추후 협상으로 넘겼다. CVID라는 단어가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우회적으로 담기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추상적인 언어로 모호한 약속을 반복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였다.
회담 준비를 총괄해온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하루 전까지도 "CVID가 회담의 목표"라고 못 박듯이 다짐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당초 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합의문 속에 핵 폐기 시한(時限)과 CVID라는 핵 폐기 원칙이 명확히 담기느냐 두 가지였다. 북한이 늦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 이행을 검증할 사찰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반드시 담겨야 했다.

그러나 합의문 속에 담긴 비핵화 관련 내용은 '북한은 4·27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성명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는 것 뿐이었다.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판문점 성명 합의 내용 자체도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 때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이라고 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반 만에 나온 미·북 핵 담판 결과는 '비핵화'라는 추상적 한마디뿐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북한 측의 비핵화 약속은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미국 측 약속에 이어 세 번째 순서로 합의문에 담겼다. 또 서문에는 미·북 간의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면서 미국 측의 대북 관계 개선 및 평화 체제 구축 노력이 북한의 핵 폐기 약속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처럼 돼 있었다.

따라서 그 합의는 지난 2005년 9월 19일 채택한 6자회담 공동성명 내용보다도 못했다. 그 때 첫 번째 합의 내용은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한다"였다. 이 합의 이행을 위해 당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당시 9·19 성명은 완전한(Complete) 비핵화의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라고 구체화했고 '검증 가능(verifiable)'이라는 원칙을 담았으며 검증을 위한 NPT, IAEA 복귀라는 행동 계획까지 포함시켰던 것이다. 결국 1차 미·북 정상 합의문은 13년 전 6자회담 공동성명보다도 더 뒷걸음친 것이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1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이 끝날 때 까지도 끝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으론 ‘완전한 비핵화’조차 말하지 않은 채 싱가포르를 떠났다.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에서 난관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초 목표가 빗나가 버린 탓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안전보장'이라는 큰 틀은 짜였지만, 이행 방안을 두고 북미 간의 이견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내고 말았다.

북한 핵 파기 파행史

지난 날 북한의 핵 파기 파행史는 이를 더욱 확인시킨다. 앞으로의 여정에 더 확실한 경고를 던진다.
지난 24년간 한반도에는 세 번의 공인된 핵위기가 있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이 94년 6월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한 게 1차 핵위기다. 1차 위기는 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로 넘겼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면 보상해 주는 내용이었다.

2차 핵위기는 2002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하면서 찾아왔다. 제네바 합의는 곧바로 휴지 조각이 되고 새로운 9·19 공동성명(2005년)이 탄생했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되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적 합의였지만 이 역시 백지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은 세 번째 핵위기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1차 미북 합의문은 얼핏 9·19 공동성명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더욱이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12번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랬던 북한이 최근들어 남한과 미국을 향한 조기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외교적 관계 개선으로 돌파하려는 계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제사회의 북한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 그 중에서도 경제 압박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도발에 이은 대북 제재, 유화 제스처에 따른 국제사회 지원 그리고 또 다시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 갈수도 있다는 배수진의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유의하며 주시해야 한다. 언제든 돌변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향후 김정은의 태도 가변성에 대한 엄밀한 주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북·미 대화 내용상의 실질적 진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계속 빈틈없이 이행돼야 하는 근거다.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는 병행돼야 마땅하다.

해법은 구체적 로드맵

비핵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든 2차 미·북정상회담이든 또 한 번의 이벤트일 뿐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반드시 실질을 채워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 이행에 얼마나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로드맵을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이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느냐 여부다. ‘종전선언-핵 신고’의 선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비핵화 초기 조처부터 실현까지 북한의 구체적 로드맵 제시가 나와야만 비로소 北核 해법의 1차 단서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해결'은 남북한간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 중대 현안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사적 반복사례 처럼 다시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북측의 의도를 재평가, 대응방향을 새롭게 수립치 않을 수 없다.

이제, 북한은 진심으로 40여년전 온겨레에게 희망을 주었던 7·4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더 이상의 망상을 떨쳐버리고 당연한 핵폐기로 평화의지를 공인받을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떳떳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주변국과 협력할 수도 있고, 남한과도 경계와 경쟁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공존공영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남한 내부도 외형적 평화무드에 젖어들 때가 아니다. 북한의 철저한 합의 이행과 검증이 담보되지 않는 한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는 일이 결코 있어선 안된다. 역사의 경고에 바탕을 둔 치밀한 대응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미국과 한국이 명실상부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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