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7 수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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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정운찬 ˝남은 일생의 목표는 동반성장 사회건설˝
정운찬 전 총리
한국야구위원회 KBO총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야구계 격차해소, 동반성장 위해 최저연봉을 올릴 것˝
˝소득주도성장 성공하려면 동반성장 단기3정책 써야˝
2018년 09월 19일 15:15:13 윤진석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반전의 인물, 정운찬.’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데 중학교 입학도 못할 뻔했다. 공부벌레였을 것만 같은데 어릴 때부터 야구부, 야구광, 야생야사였다. 샌님처럼 물렁물렁할 것 같은데 1986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교수 개헌운동을 주도했다. 의외로 급진적인 점도 반전 면모다.

친 대기업 위주의 이명박 정부 때 오히려 재벌들이 싫어한 총리였다. 동반성장 정책을 처음 꺼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듣도 보도 못한’이라고 불쾌해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양극화 해소 연구를, 전 사회적 동반성장 건설이 목표다. 현 KBO(한국야구위원회)총재이자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인 정운찬 전 총리. 야구와 동반성장은 그 삶의 양대 산맥, 정수와도 같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강남 KBO사무실에서 가졌다.  

   
▲ 정운찬 KBO총재는 일생의 목표는 동반성장사회건설이라고 했다.ⓒ시사오늘

“용감함과 대담함”

시계를 거꾸로 돌려봤다.

정운찬 전 총리 저서 야구예찬(부제: 야구바보 정운찬의 야생야사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 서울대 교수시절 1986년 4월 나(정운찬)는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작성해 선후배 교수들의 서명을 받는 일에 나섰다. 동양사학과의 이성규 교수, 화학과의 김영식 교수와 함께 암울한 현실에 울분을 토하다가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2.12 총선을 통해 제1야당이 된 신민당이 나서서 직선제 개헌을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80년 민주화의 봄을 되찾으려는 국민들이 운동에 동참했다. 고려대, 성균관대, 한신대 교수들도 적극 참여했다.(책, 정운찬의 야구예찬 중)

# 전두환 대통령은 서명에 참여한 교수들을 전원 해직시키고 주동자는 엄벌하도록 지시했다. 어린 시절 함께 야구를 하며 놀던 친구들은 걱정을 해왔다. 어디 끌려가서 맞지나 않을까, 가만히 있으면 다치지 않을 텐데. 그런 용감함과 대담함은 저 자그만 체구 어디서 나왔을까…. 그러면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일화가 생각났단다. 파울볼에 맞고 졸도를 하고 코가 퉁퉁 부어올랐는데도 끝까지 경기를 하겠다고 나서던 그날의 나(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책, 정운찬의 야구예찬 중)

# 초조하게 소환을 기다리던 중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이던 김종인 박사가 찾아왔다. 초면이었다. 서명에 참가한 49명은 고사하고 주동인 3명만 해직시켜도 서울대가 발칵 뒤집힐 테고 국제적 망신도 당할 우려가 있어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말을 들었다. 김종인 박사와 내가 오래도록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책, 정운찬의 야구예찬 중)

자그맣고 여린 겉보기와 달리 용감함과 대담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일화다. 인터뷰에 앞서 정 전 총리를 먼저 만난 것은 하루 전인 13일 제55회 동반성장 포럼에서였다. 당시는 KBO 총재로서 민감한 시기였다. 또한, 화제의 인물이기도 했다. 전날(12일) 정 전 총리는 선동열 감독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선수 선발 병역 특례 의혹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역대 KBO총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구팬들을 비롯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권위주의 관행과 다른 점에서 호평도 들렸다. 한편으로는 정지 재개 행보 아니냐는 시선도 보냈다. 그러나 정 전 총리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세계경제는 호황이지만 불균형은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시사오늘

다음은 일문일답.

“상처받은 야구팬들 위로 드리고 싶었다
작년부터 전임감독제, 원칙 존중도 옳아 “

- 최근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단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KBO총재가 권위를 벗고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한 건 처음이라던데.

"KBO최고책임자로서 상처받은 국민, 특히 야구팬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아시아게임 야구 3연패를 달성했지만 병역 문제 관련 질책을 많이 받았다. 더 늦기 전에 거기에 대한 사과 해명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국민스포츠인 야구는 아시안게임에서 외형의 성과만을 보여드리고 만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유구무언이다. 우승만 하면 된다는 것이 성과주의 관행에서 탈피하고 페어플레이와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높은 도덕적 기준의 국민정서를 일찌감치 감지해야 했다. 병역문제와 관련한 국민정서를 반영치 못해 죄송하다."

- 선동열 감독 책임론도 나온다.

“전임 KBO총재가 작년 7월 야구대표팀의 전임감독 제도를 만들었다. 선발서부터 운영까지 맡기겠다고 하고 선동열 감독을 임명한 건데 지금의 제가 이래라 저래라 여러 주문을 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생각이었다. 선동열 감독한테 전권을 줬으면 감독이 그 권리를 행사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선동열 감독이 코치 스텝들을 선발한 이상 저로서는 그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정서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 말씀 할 기회를 놓쳤다. 말씀 할 기회를 놓친 것이 저의 책임이다. 죄송하단 말씀이다.”

- 향후 시스템 정비 계획은

“앞으로 한국야구미래협의회를 구성해 불공정한 시스템을 정비해나가겠다. 이를 위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1차 실무협의를 가졌다. 추후 KBO에서 추천한 다섯 명, KBSA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추천한 다섯 명으로 구성해 야구 전반에 대한 점검을 해나갈 예정이다. 한국 야구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바로잡고, TF팀을 구성해 국가대표 운영시스템, 야구 경기력과 국제 경쟁력 향상 및 부상 방지 시스템의 체계적인 구축, 그리고 초중고 대학야구의 활성화 및 실업야구의 재건을 추진해 나가겠다.”

- 논란은 있었지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인도네시아 분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낙관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 6000만 명이 넘는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저는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고 미래가 밝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환경이 달라서 처음 선수들이 현지 적응하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그중 하나가 선수촌 시설이 부족하고, 물이 체질에 안 맞아 장염도 걸리고 배탈도 나는 등 여러모로 선수들이 고생을 했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큰일한 점에 감사한 마음이다.”

   
▲ 정운찬 KBO총재는 대표선수단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KBO최고책임자로서 상처받은 국민, 특히 야구팬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며 사과했다.ⓒ시사오늘

“야구의 동반성장 추구”

- 올 1월 KBO 취임했다. 야구계 격차해소, 국제화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던데.

“저는 야구의 동반성장을 추구한다. 큰 틀에서 선수와 선수간의 동반성장, 구단과 선수, 구단과 구단 간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선수와 선수간의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야구계 최저연봉은 2700만 원이다. 25억, 23억 등을 받는 선수들 연봉과 비교하면 100대 1에 가깝다.
격차해소, 동반성장을 위해 최저연봉을 올릴 거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최저연봉은 올리고 최고연봉은 낮출 생각이다. 야구 기량을 닦은 사람들한테 2700만원 주는 것은 너무 작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최고연봉이 너무 높으면 그 구단에 부담이 간다. 결국 구단이 성장하기 힘들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높은 연봉은 내리고 낮은 연봉은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남은 것은 선수협의회와의 의논이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해서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수협의회 내 출분한 설득과정에 노력하겠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취임 후 미국에 가서 스프링캠프를 하는 우리 선수들을 격려했다. 아울러 미국 프로야구 맨프레드 커미셔너를 만나 상호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 가서도 일본의 커미셔너를 만났다. 또 일본에 방문 중인 대만 커미셔너도 만나 발전적 교류 방안을 모색했다. 이 모든 걸 하려면 현장에 가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외국에 간 것에만 초점을 맞춘 일각의 지적에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미국에 가는 데 14시간 걸린다. 일 하러 가는 입장에서 누가 좋아하겠나.”

- 그 밖의 당면 과제로 꼽는 것은.

“올해 목표는 한국프로야구 산업화를 위한 KBO리그 제도 확립 및 개혁이다. 외국인선수 계약 금액 상한선을 비롯해 FA드래프트 제도, 혹서기에 대비한 경기 시각의 탄력적 운영 등을 폭넓게 논의해왔다. 한국야구 미래를 밝힐 가시적인 결과물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야구계 흥행 부진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개선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기력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즉, 야구의 경기력을 높이려면 타고투저(打高投低)(타격은 좋을지 모르나 투수력은 나쁜 상태) 현상을 고쳐야 한다. 타고투저라고, 관중들이 볼 때 막 홈런도 나고 안타도 나는 게 재미있을지 모른다. 케네디 대통령은 야구를 잘 아는지 몰라도 8대 7이 제일 재밌는 야구경기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저께(12일) 저녁 한화가 삼성한테 8대 7로 이겼다. 이를 케네디스코어라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9대 8이 재밌는 게임이라고 해서 오바마 스코어라는 말도 있다. 케네디 스코어, 오바마 스코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야구도 타고투저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타고투저 경향이 너무 심한 측면이 있다. 오죽하면 야구가 아니라 핸드볼 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경기 본연의 경기력을 높이는 것이 흥행을 높이는 중요한 방안이 아닐까 싶다.”

   
▲ 정운찬 KBO총재는 어린시절부터 야구부 활동을 하는 등 야구광, 야생야사로 살았다.ⓒ시사오늘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어”

- 자타공인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저는 시골사람이다. 충청도 공주사람인데 초등학교 때 서울에 올라왔다. 1957년 4학년 때였을 게다.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운동장을 지나던 참이었는데 동네 형들이 나를 불렀다. 그때 형들이 ‘여덟 명밖에 없으니 센터에 가서 네가 하라’고 했다. 그런데 글로브를 처음 쥐어본 제가 센터로 온 플레이볼 두 개를 받았다. 지금도 그 짜릿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전부 우연이었지만, 동네 형들이 ‘너 야구 소질 있다’ 해줬다. 저는 그 말에 또 취해 정말 야구에 소질이 있나보다, 생각했다.(웃음)

다행히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친척 형이 있어서 덕분에 야구 관람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경기중학교 때는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야구부 감독님이 출전을 한 번도 안 시켜주는 거였다. 한 번은 용기 내 감독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저는 언제 출전 시켜주나요?’ 그 질문에 감독님은 ‘운찬이는 공부해도 된다던데….’ 하셨다. ‘아, 나는 주전은 못 되겠구나’ 그 길로 야구부를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후에 생각할 때 그렇게 말씀해준 감독님이 너무 고마웠다. ‘야 임마, 네가 무슨 출전은 출전이야’ 하실 만도 한데, 감독님은 아주 부드럽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넌지시 말씀하신 거다. 비록 야구선수는 못 됐지만 지금까지 야구광, 야구 마니아로 살고 있다.(웃음)”

- 야구 때문에 박사학위도 늦어졌다고 들었다.  

“1971년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메이저리그에 심취했다. 또 한국 유학생들로 구성된 야구 동호회를 구성해 우의를 다졌다. 그런데 한번은 야구경기에 몰두한 나머지 논문 작성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박사학위를 일 년 정도 늦게 받게 됐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야구 때문에 덕도 많이 봤다. 야구 덕분에 교수 채용 면접에서 쉽게 통과됐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대학 교수 인터뷰 때였는데, 당시 면접원이 가장 미국적인 것을 내게 묻겠다는 거였다. 마이애미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프린스턴에서 박사 과정을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미국생활이 아직 채 5년도 되지 않은 터라 미국적인 거라는 말에 얼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면접원 입에서 야구에 대해 좀 아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가장 신나하는 야구 얘기 아닌가. 흥분해서는 70여분 동안이나 면접원과 야구에 대해 말을 나눴다. 나중에 면접원이 그러더라. ‘메이저리그에 대해 잘 아는 것 보면 콜롬비아 대학교 학생들 가르칠만한 문화적 여력이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야구 때문에 박사학위가 늦어졌지만 그 야구 때문에 취직이 된 거였다.(웃음)”

   
정운찬 전 총리는 동반성장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인권정책이라고 진단했다.ⓒ시사오늘

“정치 행보 재개? 전혀 아니다”

- 아무래도 정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최근 기자회견을 하자, 정치 재개 행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전혀 아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추측을 할 거라는 생각도 전혀 못했다. 그런데 그저께(12일) 아는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야 너 정치 다시 한다면서?’라고 묻는 거였다. ‘무슨 말이야?’ ‘그런 일 없어’라고 하고, 집에 가서 봤더니 인터넷에 그런 얘기는 있더라. 한편으로는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안타까웠다.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대표 등 올드보이 전성시대라는 점에서 복귀 기대도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손학규 대표보단 제가 아래지만 정동영 이해찬 대표보단 내가 더 올드보이다(웃음). 아까 말씀드렸듯 제 일생의 목표는 동반성장 사회건설이다. 한때 정치를 잠깐 고려했던 것 역시 동반성장 사회건설을 위해서였다.

동반성장 사회건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생각에 여러 도전을 거쳐 왔던 거다. 동반성장위원회도 이명박 정부 때 제안해서 만든 거고, 초대위원장도 하다가, 이후 동반성장 연구소를 만들어 7년 가까이 운영 중에 있다. 지금은 KBO도 맡고 있고, 스콜필드 박사 기념 사업회 명예회장이긴 하지만 그 일도 많이 하고 있다. 정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 19대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가 돌연 불출마했다.

“동반성장 사회건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러더라. ‘그러려면 너는 여의도를 가든지 세종로를 가야 된다’, 청와대가 세종로 1번지다. 그래서 ‘글세….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안 된다. 어렵다. 제 능력이 부족하단 생각을 했다. 돈과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다. 정치적 센스도 없었다. 우리 후배들이 저는 정치적 센스가 없다더라.(웃음) 그래서 1월  19일 선언했다가 4월 오면서 안 한다고 했다.”

- 여러 당의 러브콜이 많았을 텐데 한사코 거절한 이유는.

“저는 무색무취((無色無臭)한 사람이다. 무색무취하니까, 저를 데려가도 되겠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진짜 원하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더라(웃음).”

- 그래도 어디에 가깝다고 보는지?

“저는 중간이다. 노선은 중도요, 동반성장편, 진실편이다, 당으로 치면 동반성장당, 진실당이다(웃음). 그런데 보수적인 사람은 동반성장을 주장하는 저를 갖다가 빨갱이, 공산주의라고 한다. 반면에 진보적인 사람은 저보고 물렁물렁하다고 한다. 재미난 것이자 씁쓸한 시선이지만….”

   
▲ 동반성장의 개념은 광범위하다고 정운찬 전 총리는 말했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동반성장 단기3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시사오늘

“소득주도성당은 인권정책”

- 경제학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첫째 인권 정책이다, 둘째는 임금 정책이다. 헌법 32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를 가진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가 적시돼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월급을 충분히 줘야 되지 않나? 그런데 최저임금이 너무 낮지 않나?

예컨대 현대자동차에서 타이어를 끼는데, 왼쪽에 있는 사람은 비정규직이라 만 원 주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똑같은 타이어 끼는데 정규직이라고 2만 원 준다면, 이는 불공평한 것 아닌가. 같은 노동에 대해선 같은 임금을 줘야 되지 않느냐, 이게 바로 사람답고 살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득주도성장 인식의 출발선이다. 즉,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자는 인권 정책을 경제정책으로 전환한 것이 소득주도 성장이다.

이 같은 기본 발상 아래 7530원은 줘야 먹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2018년 기준 최저임금 인상이다.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일할 권리를 갖는 거다. 근데 너무 오래 일하니까 일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래서 나온 게 52시간이다. 52시간만 일하게 하고, 나머지 더 필요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하자, 이게 52시간이다. 이것저것 다 안 되면 공적인 일이라도 80만개라도 만들자가 소득주도정책이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실 임금정책이다. 임금정책에 이데올로기가 끼어 있으니까 이를 중화시킨 것이 소득주도성장이 된 거다.”

- 문제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인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최저임금 올려주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주당 52시간하면 전체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조건들이 다 바뀌지 않나. 고용이 줄어들고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뭐하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때 고용이 일정하다면 괜찮지만, 자영업자는 오히려 어려워져 고용을 줄인다는 것 아닌가. 다른 조건들이 일정한 대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는 거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소득을 올려 경제를 살리자는 건데, 한 경제가 잘되려면 소비도 잘되고 투자도 잘되고, 수출도 잘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득을 올려 소비를 늘리려는 것 아닌가.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노동, 비정규직 정규직화 하면 소비가 늘어날 거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첫째 소득이 늘어나도 한국의 가계부채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자그마치 가계부채가 1500조 원이다. 인구 5000만 명으로 볼 때 세 살배기든 여든 살이든 1인당 3000만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소득이 올라가도 소비가 올라갈지 알 수 없기에 현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KBO총재는 야구계 최저임금 인상 등 동반성장을 추진한다.ⓒ시사오늘


“소득주도성장, 동반성장 정책 병행해야”

-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하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더 보태 동반성장 정책을 병행해야 된다. 경제를 살리려면 투자도 늘려야 한다. 또 투자를 위해서는 동반성장 단기3정책을 써야 한다. 대기업은 돈은 많으나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고 중소기업은 투자할 데는 많으나 돈이 없어 문제다. 이를 해결할 정책이 동반성장 단기3정책이다.

대기업으로 흐를 돈을 중소기업 쪽으로 흐르도록 합법적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는 정책이다. 중소기업은 그 돈으로 자금난이 해소돼 투자를 한다, 투자를 하면 생산이 는다. 생상이 늘면 고용이 는다.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는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는다. 소비가 늘면 경기침체도 완화되고 성장의 기초가 된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기업의 99%이상이 중소기업이고 대한민국 전체 고용의 88%가 중소기업의 고용이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려면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과 함께 당면과제인 양극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예컨대 (초과)이익공유제라든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라든지 정부가 중소기업한테 직접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환이 동반성장 단기3정책에 해당된다.

그런데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투자를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이를 위한 핵심은 R&D에 있다. 중장기적으로 R&D 결국 기술력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대기업의 문제는 투자할 데가 없다는 점이다. 혁신기술, 첨단기술이 없다. 왜 없나, R&D지출은 많은데 관련 지출이 주로 D(develop, 개발)에만 가 있는 거다. 그래서 D를 R로 가도록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그 R도 리파인먼트(refinement)가 아닌 리서치(research)로 전환을 해야 된다.“

- 세계 경제가 호황은 맞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은 어렵지만, 세계경제는 호황이다. 하지만 불균형은 더 커지고 있다. 성장은 성장대로 잘되고, 양극화 역시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낮다.(원인을 묻자) 우리가 실력이 없는 거다. 물론 저성장은 현 정부를 떠나 한국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1980년대 8.6%, 1990년대 6.7%이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최근에는 2%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작년 경제가 3% 성장됐다고 하는데, 몇 달 됐다고 성장률이 단번에 오른다는 건가? 어불성설이다. 야당 쪽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잘못해서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마치 의사가 최선을 다해 환자를 고치려 해도 더러는 고칠 수 없는 경우가 있듯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선의로 좋은 정책을 내놔도 효과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이런 겸손함이 있어야 된다.”

- 양극화 격차는 어쩔 수 없는 시대흐름인 건가.

“그런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 지난 2016~2017년의 촛불은 정치권력을 개혁할 뿐 아니라 경제 질서를 바꾸라는 엄중한 요구였다. 저는 촛불의 근본 원인에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가 있다고 본다. 모든 혁명의 배경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있었음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나.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거나 근접한 세계 7개 국가 중 하나다. 다른 6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다. 이처럼 밝은 면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양극화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소득분배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의 1년 매출액이 GDP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재벌 의존도가 커졌다. 이 수치는 80년대 초반만 해도 20%에 불과했다.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졌다. 이대로 놔두면 경제가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사회 전체가 결속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까 걱정이다.”

- 특히 격차해소에 많은 관심을 가진 듯하다. 케인즈학을 전공했는데, 그 영향인가.

“사실상 정부가 현재 하는 소득주도성장 이론도 후기케인즈학파의 이론이다. 고전 시장주의보단 규제가 훨씬 더 강화된 것이다. 케이즈가 볼 때, 흠이 많지만 견딜만한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에서 나온 모순을 고치고, 비자본주의 방법이라도 써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 간섭도 필요하다. 이게 케인즈 이론이다. 케인즈는 여러 경제체제 중에서 그래도 자본주의 체제가 괜찮다, 그것을 살려야 된다는 게 케인즈주의다. 때론 비자본주의여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필요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운찬 전 총리는 동반성장은 격차해소뿐 아니라 동반 동시에 성장을 말한다고 설명했다.ⓒ시사오늘

“나는 동반성장 전도사”

- 동반성장정책을 주창했고, 동반성장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전국의 200~300번 강연을 다녔다. 지난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 시절부터 현 동반성장연구소 운영까지 전국의 학교, 지방행정기관, 각종 경제단체를 다녔다. 매월 동반성장 포럼도 55회에 이르고 있다.

동반성장은 격차해소뿐 아니라 동반 동시에 성장을 말한다.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농 간 빈부 간 중소기업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국가 간 동반성장, 지역 간 동반성장 등 광범위한 개념이다. 서울대학교가 입시제도로 채택한 지역균형선발제는 지역 간 동반성장을 위한 고려다. 그뿐인가. 남녀 간의 동반성장도 있다. 제가 서울대 총장 할 때 마음먹고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여교수를 서장에 임명했다. 이 또한 남녀 간의 동반성장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은 또 어떤가. 남북한 간의 동반성장을 의미한다. FTA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가 간의 동반성장을 의미하는 거다. 동반성장은 사실상 포용성장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요즘 정부가 포용성장이라고 하지 않나. 포용성장이나, 동반성장이나 그게 그거다. 동반성장도 더불어 성장하고 공정하게 나누자가 취지다.”

- 포용성장정책은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욕을 많이 먹든 안 먹든 세계는 포용성장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모두다 본인들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 전 산업에 걸쳐서 이익공유가 이뤄지도록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그게 동반성장 개념이다. 이익공유 하면 빨갱이,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이익공유는 뭐냐면 대기업하고 중소기업하고 전부 같은 배에 탔다 치자.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본인이 잘해서도 있겠지만 협력중소기업이 잘 한 것도 있지 않나. 그 같은 공을 인정해주고 나눠줘라, 이거다. 7조이면 1퍼센트인 7백억을 나눠주면 된다는 것이다. 협력중소기업이 잘 되면 결국 대기업도 잘 되는 거 아니냐. 이 이치다.

이런 것이 동반성장이고 포용성장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의 5월 8일 이전에는 TV에다 광고로 ‘동반성장’ 하더니 선거 끝나고는 아예 없어졌더라. 그 이후 정부가 동반성장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유를 묻자) 단순히 개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이명박 정부 때 쓰던 단어라 안 쓰는 것 같다(웃음).”

- 동반성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저를 키워주시다시피 한 스콜필드 박사가 있다. 이 얘기를 하려면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 1950년대 때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다. 순전히 호구지책이었다.
글 읽는 가문이었던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대까지만 해도 넉넉한 살림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광산 채굴에 가산을 털어 넣으시면서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로서는 자식들 가르치고 먹고 살 돌파구가 필요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무렵이었을 게다. 아버지는 어머니, 형, 누나들, 나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와 문리대가 있던 종로구 동숭동 낙산 자락 ‘하꼬방’이라고 불리던 판잣집을 얻으셨다. 단칸방에 일곱 식구가 살았다. 초창기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도꼭지도 동네 하나밖에 없었다.

강제 징용될까봐 할아버지가 학교도 안 보내셨지만,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필체가 좋으셨다. 또 그 재주로 남의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는 대서소로 생계를 꾸리셨다. 하지만 돈벌이가 썩 좋지는 못했다. 잘 안 되니 숯을 파는 구멍가게도 하셨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 굉장히 막막했을 것 같다.

“중학교 입학은 감히 생각도 못했었다. 등록금도 없고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려우니, 초등학교만 다니고 밥벌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새벽같이 신문배달을 나간 형을 대신해 물지게도 많이 졌다. 그것 때문에 키가 작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웃음).

암튼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박사님이셨다. ‘운찬이, 너 공부 잘한다며? 경기중학교 합격하면 우리가 등록금 줄 테니 걱정 말거라’ 라고 하신 거다. 
꿈인가 생신가 싶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셨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경기중학교 합격증을 손에 쥐고 박사님을 찾아갔다. 그 뒤 박사님 소개로 알게 된 분이 스콜필드 박사님이었다. 당시 70대셨는데, 그분의 도움으로 등록금도, 생활비도 얻을 수 있었다. 그분은 제 평생의 가장 큰 행운이자 선물이었다. 할아버지였고, 삶의 스승이요 나침반이셨다."

   
▲ 정운찬 전 총리는 남북한 동반성장에 필요한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시사오늘

“스콜필드 박사 당부가 곧 사명”

- 스콜필드 박사는 어떤 분인가.

“스콜필드 박사는 1919년 3.1만세운동을 주도한 33인의 민족 대표와 함께 3.1운동의 34인으로 추앙받으셨던 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연세대 의대 전신인 세브란스의전 교수로 우리나라에 건너오셨다가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이 문제가 돼 1920년 강제추방당하기도 했다. 이후 1958년 다시 한국을 찾아와서 1970년에 작고하실 때까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고 교육과 자선사업을 통해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셨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당신의 마지막 책 한권, 구두 한 켤레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 많지는 않았으나 전 재산을 보육관원 YMCA에 헌납할 정도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다. 이런 공로로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분의 독립정신과 박애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한국에 스콜필드 기념사업회가 창립됐는데,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 제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 동반성장과는 어떤 관계가?

“1965년이던가, 스콜필드 박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많이 됐는데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져서 안타깝다. 그러니 너는 소득격차, 빈부격차 등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학과에 가라.’
처음엔 이과생으로 대학가면 엔지니어나 해야지 했다. 그런데 박사님의 당부 말씀에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들기 시작했다. 경제과도 그렇게 가게 된 것이다.
대학가서는 또 한 분의 스승인 조순 선생을 만났다. 그분은 중용, 밸런스 등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이었다. 그런 계기로 유학 시절에는 케인즈 학파가 굉장히 강한 프린스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 거였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3년 정도 교수 생활을 하다, 서울대 교수로 왔다. 사회에 눈을 뜬 것 그때부터였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5.17 계엄포고령을 보고, 그때야말로 이게 정말 나라인가 싶었다. 1986년에는 왜 장충동에서 대통령을 뽑는가, 분노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 총장되기 전까지 재벌개혁, 사회개혁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도 이따금 자문을 하곤 했다. ‘스콜필드 박사가 빈부격차 소득격차 줄이는 노력을 하라고 했는데, 나는 하고 있는 것이 맞나?’ 반성을 항상 했었으나 본격적으로 동반성장을 생각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총리를 하면서 한 중견기업인의 성토를 듣게 되면서부터다.”

- 어떤 얘기였나.

“2010년 5월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중견기업인이 찾아왔다. 당시 7000~80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었는데, 갑자기 이민을 가겠다고 하는 거였다. ‘왜 그러십니까.’ ‘해도 너무해서 그렇지요’ ‘뭘요?’ ‘후려치기가 너무 하지 뭡니까?’ ‘뭘 후려친다는 겁니까?’ ‘납품거래처지 뭐예요.’ 말인 즉슨 대기업이 수출거래 할 때 납품가격을 터무니없이 깎는다는 거였다. 수출이 잘 되려면 물건이 좋거나 값이 저렴해야 된다. 물건을 좋게 만들려면 시간이 소요되지 않나. 저렴하게 하는 방법이 뭐냐, 원가절감을 해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볼 때 만만한 게 중소납품업체로부터 수출단가를 낮추는 후려치기밖에 없는 거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던 상당한 원천이었던 셈이다.

그 다음날 곧장 이명박 대통령한테 갔다. ‘대통령님 중견기업인이 이민 가겠다고 합니다. 중견기업이 그러는데, 중소기업은 오죽하겠습니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 사회 파탄 납니다.’ 그랬더니 이명박 대통령이 ‘정 총리는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에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라고 물어 오시더라. 어린 시절 가난했던 얘기를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들한테 알아보라고 했는지, 그해 가을 늦게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하자고 하시더라.

정확히는 2010년 12월 13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겼다. 그런데 한 일 년여 이끌어오는 동안 위원회만 만들어주고 정부가 전혀 도와주지를 않는 거다.  그 자리는 월급도 없는 자리다.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되는 자린데, 정책만이라도 힘있게 추진돼야 하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대통령도 안도와주고 지식경제부장관도 방해 놓고 전경련도 방해 놓고 여당 국회의원도 방해 놓고….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관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스콜필드 박사님의 유훈을 잊지 않고, 동반성장 사회건설을 목표로 연구소를 만들어 7년 가까이 이끌어오고 있다. 좋아하는 야구 명언 중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경제도 동반성장, 야구계도 동반성장 할 수 있을 때까지 포기 않고 노력하겠다.”

- 최근 논문에서도 남북 간 동반성장을 제언했다. 어떤 내용인가.

“악화일로의 남한 경제는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북한 핵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긴장이다. 이 긴장감이 우리의 지정학적 위험을 가중해 남한의 경제 재도약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구축이 먼저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안정은 북한에도 절실하다. 북한에도 경제성장의 기회를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우리가 동반성장을 추구하면서 통일과정을 잘 관리해 간다면,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또 이는 남북한 간 서로 윈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남북경제공동체는 남북한 동반성장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기나긴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관계를 깊고 넓게 만드는 과정에서 통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이다. 그러려면 통일이 가시화되기 이전에 북한이 상당 수준의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 나가도록 남한이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한 동반성장에 필요한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 구체적인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 교역을 통한 경제협력이다. 북한의 1차 생산물이 교역물의 중심이지만 장기적으로는 2차 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남북교역을 통해 북한은 특화된 산업의 육성을 도모하고 남한은 북한생산물의 안정적인 수요처를 제공함으로써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둘째 개성공단 모델의 확대판으로 북한에 지역별로 특화된 공단을 만드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남쪽의 기술과 자본, 중간재를 가져와 북한의 인력에 의한 단순 가공 수준이라면 제2, 제3의 개성공단은 북한 농수산물 가공에서부터 각종 천연 광물자원의 개발과 광물가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협력모델을 상정할 수 있다. 더불어 남북 간 동반성장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위치한 지정학적 과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중국ㆍ러시아를 포함한 ‘다극협력 동북아 동반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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