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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 천시(天時)가 왔다
여야 5당 이해관계 일치…문제는 거대양당의 의지
2018년 09월 20일 15:48:17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5당이 모두 선거제도 개편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시사오늘

“저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해왔고, 그 방안으로 2012년 대선 때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지난 대선 때도 똑같은 공약을 되풀이했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8월 16일, 청와대 원내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문재인 대통령

“기본적으로 (선거제도 개편) 취지는 소수당의 지지율이 의석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동형이냐 권역별이냐를 논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수가 적다. 때문에 전체 지역구 숫자를 바꾸지 않으면 아주 미미한 효과밖에 안 나고, 지역구 숫자를 늘리는 것은 민심에 맞지 않는다. 선거제도만 다뤄서는 한계가 있고, 개헌과 묶어서 다룰 때 권력형 구조를 어떻게 할지 성격이 달라진다.”

8월 25일, 당대표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저는 지난 2월 권력구조 개편과 더불어 선거구제 개편, 권력기관 개편을 함께 추진해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서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종식하는 한편, 국회의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9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지금 민심은 다음 총선에서 이 두 정당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난관이 있다. 큰 장애물이 있다. 바로 잘못된 선거제도,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없고 오직 승자가 독식하는 선거제도다. 유권자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안이다.”

9월 2일,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지난 8월 13일 선거제도 개편 관련 토론회에 여야 5당 대표들이 다 왔다. 이 운동이 시작되고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결사반대를 외쳐왔던 보수정당, 특히 자유한국당에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일찌감치 요구해 왔던 사안이다. 이제 공은 민주당에 넘어갔다. 민주당만 의지를 갖고 임하면 문이 열릴 수 있다.”

8월 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번 지방선거는 왜 선거구제가 꼭 개편돼야 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지지율의 50%를 얻고도 시·도의회의 90% 의석을 차지했다. 거의 모든 시·도의회가 독점적인 형태를 띠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권여당이 기득권을 조금 내려놓더라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7월 18일, YTN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여야(與野)가 입을 모았다. ‘입씨름’이 업(業)인 정치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속내야 어떻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5당은 모두 선거제도 개편을 말하고 있다. 이번이 선거제도를 바꿀 적기(適期),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제도 개편 토론회에 여야 5당 대표가 모두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는 정동영 민평당 대표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금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민주당과 한국당 역시, 표면적으로는 변화의 흐름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에 다소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사오늘

여야 5당의 사정

여야 5당이 이 같은 태도를 취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우선 민주당은 ‘명분론(名分論)’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해왔던 데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까닭이다. 민주당은 당론(黨論)마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향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정의당의 압박도 부담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과 민주당의 당론이 모두 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갑작스레 발을 빼는 것은 ‘기득권 지키기’로 보일 수 있다. 현재로서 민주당은 민심(民心)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선거제도 개편 취지에 반대할 명분이 전무(全無)하다.

한국당은 보다 정략(政略)적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반(反) 한국당’ 민심은 결코 일시적 이반(離反)으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현 시점에서의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조사해 1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당 정당지지도는 11%로 민주당(40%)의 1/4 수준에 불과했다.

이 같은 지방선거·여론조사 결과가 2020년 제21대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한국당은 존립(存立) 자체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다음 총선이 치러지기 전에 열세(劣勢) 구도를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게임의 룰(선거제도)을 바꾸는 것이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정의당은 단 한 순간도 선거제도 개편을 잊은 적이 없는 정당들이다. 이들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제3, 제4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우므로, 중·대선거구제 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하는 것만이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구제 개편은 군소정당들의 ‘숙원(宿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9월 5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물론 한국당, 바른미래당, 민평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또한 9월 1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입장에서는 불리해지는 면이 있지만, 선거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민심을 거스른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면서 “변화를 원하는 민심의 흐름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절호의 찬스’를 잡은 모양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문제는 각론(各論)이다. 바른미래당, 민평당, 정의당 등 군소정당들의 바람과 달리, 민주당과 한국당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총 의석수가 300석인 상황에서 A당이 정당득표율 10%를 얻었다면, A당의 의석수는 무조건 30석이 된다. 그저 지역구 의석수가 10석이면 비례대표 의석수는 20석, 지역구 의석수가 20석이면 비례대표 의석수는 10석으로 조정될 따름이다.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하더라도 30석은 보장된다. 다시 말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 확률은 낮으나 어느 정도 정당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는 군소정당에 유리하다. 

   
▲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제20대 총선 결과를 대입할 시 민주당은 110석, 한국당은 105석, 국민의당은 83석, 정의당은 23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 양당의 의석수는 줄어들고, 제3, 제4당의 의석수는 불어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과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확보하는 데는 최적의 방안이지만,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앗아갈 가능성이 다분한 까닭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9월 17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유지시켜 주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의원 수를 최소한 40~50명은 늘려야 하는데, 이러면 국민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라며 “정작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과 한국당은 (선거제도를) 바꿔봐야 아무 이득이 없는데,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까지 무리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떠오르는 중선거구제

이런 상황에서 제시되는 대안이 중선거구제다. 이론적으로 중선거구제는 그리 좋은 선거제도로 평가받지 못한다. 비례성 강화라는 당초 취지와도 거리가 있고, 거대 양당 중심의 독과점 구조도 깨기 힘들다. 이미 2~3개 행정구역이 한데 묶여있는 선거구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도 ‘중선거구제는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중선거구제가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2~5명의 당선자를 뽑는 중선거구제는 사표(死票)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2~3위 후보가 당선되므로 지금처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소선거구제보다는 비례성도 높고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각 당의 이해관계(利害關係)도 맞아떨어진다. 민주당은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명분을 살려가면서 ‘전국정당화’를 이룰 수 있다. 제20대 총선과 6·13 지방선거 결과로 추정컨대, 중선거구제 도입 시 민주당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당선자를 낼 수 있다.

한국당도 손해 볼 것이 없다. 6·13 지방선거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당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자칫 ‘TK(대구·경북)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 중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를 경우, 한국당 역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당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면, 현실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은 중선거구제 또는 현행 유지 중 양자 택일 구도로 흘러갈 확률이 높다. 이 경우, 바른미래당·민평당·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커지는 중선거구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당 강석호 의원 역시 8월 30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소선거구제보다는 중선거구제로 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다당제가 돼있고, 실질적인 각 당의 이익적 측면에서도 그렇다”면서 “우리 당도 소선거구제로 가면 수도권에서 극히 힘들다. 선거구제는 이제는 포괄적으로 따라 가주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셈법이 다당제와 맞는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군소정당에 유리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원하고 있다. ⓒ뉴시스

갈 길 먼 선거제도 개편

다만 최근에는 선거제도 개편이 아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입장 변화 탓이다.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 PK(부산·경남) 광역단체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면서 이미 전국정당화의 초석을 닦았고, 총선을 대비한 조직 정비에도 성공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더 밝은 미래를 노래한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한국갤럽>에서는 한국당 지지율을 네 배 가까이 앞서고 있고,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해 14일 발표한 결과를 봐도 민주당(40.5%)은 한국당(20.9%)보다 두 배가량 많은 지지율을 획득하고 있다.

지난 7월 <중앙선데이>가 지방선거 득표율을 총선에 적용한 결과에서는, 민주당이 300석 중 228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은 50석에 그쳤다. 이 정도로 큰 차이는 나지 않을지언정, 과반 의석 이상을 차지하는 원내 제1당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예측이다.

한국당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 직후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한국당은, 지지율 차이가 좁혀지자 관망(觀望) 모드로 돌아섰다. 당의 존립을 걱정하던 단계에서, ‘해볼 만 하다’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앞선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을 앞질렀다. 대전·충청·세종과 부산·경남·울산에서도 차이를 줄여가는 추세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지금 붙어도 충청과 PK는 막상막하”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 바람까지 불어준다면, 제1당 탈환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한국당의 계산이다.

개헌과 선거제도를 연계하겠다는 양당의 태도는 이런 속내를 대변한다. 권력 구조 변화와 연관돼 있는 개헌은 선거제도 개편에 비해 입장차가 크다. 정동영 민평당 대표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똑같이 가져다 놓는 것은 말과 마차를 나란히 세워놓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앞으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무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9월 1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정치는 결국 공천 싸움인데, 선거제도가 달라지면 공천 싸움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바른미래당이나 민평당은 몰라도, 민주당이나 한국당은 국회의원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학량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장도 같은 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중선거구제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민주당에게 유리할 것이 없어 보인다”며 “1, 2당이 당론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번에 선거구제 개편은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편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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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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