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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철저한 대비 없는 협상은 위험 부른다”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32)> 이상의 전 합참의장
2018년 10월 04일 17:27:33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이상의 전 합참의장은 베트남, 예멘 등의 사례를 들며 철저한 준비가 바탕이 된 협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시사오늘

최근 한반도는 급변(急變)의 시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만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도 개최되면서 남북 관계에 훈풍(薰風)이 불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과거를 상기하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이처럼 대북(對北) 전략에 대한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시사오늘>은 지난 10월 2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오른 이상의 전 합참의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철저한 대비 없는 협상은 무의미”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개인과 개인 간에 이뤄지는 협상도 예측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물며 국가 이익과 안보가 걸려 있는 국가 간 협상을 예측할 수 있겠나. 그래서 오늘 할 일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한 과거의 케이스를 돌아보고, 거기서 교훈을 찾아보는 것이다.

제일 먼저 살펴볼 것은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에서 체결된 파리평화협정이다. 원래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프랑스가 나가니까 공산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생겨버렸다. 그래서 프랑스의 지위를 미국이 인수하면서 발생한 게 월남전이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공산화 도미노를 막으려 했고, 북베트남은 무력 수단을 이용해 공산 통일을 하려 한 거다.

그런데 월남은 거의 정글 지역이다. 정규군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이러다 보니 게릴라전이 되고, 전쟁이 길어져버렸다. 전쟁이 길어지면 반드시 염전(厭戰)과 반전(反戰) 분위기가 생기게 돼있다. 그래서 미국이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맺은 게 파리평화협정이다.

문제는 미국이 물러나고 나니까 북베트남이 수시로 협정을 위반하기 시작한 거다. 마치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남북 간 무수히 많은 충돌이 일어났던 것처럼, 베트남 내에서 좌익 세력들이 준동한 테러나 파업이 일상화됐다. 결국 베트남은 멸망하고, 무자비한 숙청이 이뤄지면서 보트 피플이 생기고 그랬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냐. 당시 미국과 북베트남이 협상을 할 때 남베트남은 철저히 배제됐다. 미국 국민들이 전쟁 장기화에 염증을 느끼니까, 미국은 북베트남과 일대일로 협상을 해버렸다. 남베트남의 국익이나 안보 이익이 무시된 것이다. 자연히 남베트남은 아무런 대비 없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2년 만에 느닷없이 망해버렸다.

예멘의 경우에는 1970년대부터 10여 년간 10여 차례 정상회담과 각료회담을 하고 해서 1989년 아덴정상회담을 통해 통일헌법 초안을 공포했다. 하지만 통일에 실패했다. 정부조직법도 새로 만들고, 헌법도 개정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정치라는 건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권력의 실질적 주인이 누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얼마나 알력다툼이 심했겠나.

군사적 통합도 문제였다. 예멘은 남예멘군과 북예멘군을 혼합해서 구성하기로 했는데, 이러니까 지휘 체계에 혼란이 왔다. 결과적으로 남예멘은 독립을 선언하고, 남북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1994년부터 내전 상태에 놓인 거다. 그나마 2개월 동안만 전쟁을 하고 북예멘이 승리해서 2012년까지 통일 상태를 유지했는데, 아랍의 봄으로 권력에 공백이 생기니까 2차 내전이 발발해버렸다. 지금 제주도에 와 있는 난민들이 이걸 피해서 와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협상에 의해 이념과 체계가 다른 두 국가가 통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수령독재체제가 연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군대가 통합되지 않으면 반드시 내전이 일어나게 돼 있다. 지금부터 신경을 쓰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고 해도 반드시 위험한 상황이 올 거다.” 

   
▲ 이 전 의장은 직접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려 가면서 강의를 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사오늘

“지도자는 여론에 따라 움직여선 안 돼”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뮌헨협정이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이 끝나고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지만, 능력이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히틀러가 나타나 독일을 군국주의화·전체주의화 했다. 이때 히틀러는 연합국 측에 주데텐 지역을 요구하게 된다. 주데텐 지역은 중공업지대에다 동부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군수산업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이때 서부유럽이 어떻게 했느냐. 1차 대전으로 전쟁에 지쳐 있던 서부유럽 사람들은 평화를 염원했다. 언론도 나서서 독일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니까 체임벌린 총리가 뮌헨까지 가서 협정을 체결했다.

여론이란 꿈과 같은 것이다.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움직인다. 언론은 그에 동조하고. 정치인이 여론과 언론에 따라 움직이면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법인데, 체임벌린은 여론 때문에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지 않나. 독일은 1년도 안 돼 폴란드를 침공했고, 2차 대전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독소불가침조약이다. 2차 대전이 일어나고, 독일은 체코를 병합한 뒤 폴란드를 침공해서 동부전선을 안정시켰다. 문제는 소련이었다. 독일로서는 동부전선의 전투력을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소련이 버티고 있으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동부전선에 배치돼 있던 40개 사단을 서부전선으로 옮겼다. 그리고 히틀러는 서부전선을 다 장악하고 나서 조약을 파기한 뒤에 소련을 침공했다.

이 네 가지 사례에서 우리는 치밀한 대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협상이 잘 돼서 통일을 하고, 강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이면에 숨겨진 위험에 대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오사카성 이야기로 강의를 끝내고 싶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인 히데요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한 후, 오사카성으로 들어와서 농성전을 시작했다. 오사카성은 삼중 사중으로 대비된 매우 견고한 성이다.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뚫리지가 않는다. 도쿠가와도 네 번이나 오사카성에 쳐들어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도쿠가와는 휴전을 제시하고, 휴전 회담이 끝난 다음 이벤트를 하기로 했다. 양쪽 군사들이 해자를 메우는 이벤트를 하기로 한 거다. 해자를 다 메우고 나니까, 도쿠가와는 협정을 깨고 공격을 해서 오사카성을 함락시켰다. 원래 도쿠가와는 덕장(德將)으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래서 가중에 가신이 물어본다. ‘덕망 있기로 유명한 분이 어떻게 그런 속임수를 썼습니까’라고. 도쿠가와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 아무런 대비 없이 적장의 말만 믿고 문을 열어주는 장수가 어디 있느냐.’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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