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헛발질’한 한국당…사라진 국민성장론
스크롤 이동 상태바
[주간필담] ‘헛발질’한 한국당…사라진 국민성장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10.21 09: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극화 해법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성장 정책 제시…문제 안 읽고 답 제출한 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아무리 훌륭한 답안지라도,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답을 쓴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줄 출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시스

‘국민성장론’이 사라졌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소득주도성장론’에 대응해 내놓은 국민성장론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격에 안 맞다”며 토론을 거부한 후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대안이 될 것이라던 야심만만한 시작치고는 꽤나 허무한 퇴장이다.

국민성장론의 생명력은 왜 이렇게 짧았을까.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은 ‘핵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지난 7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적적인 경제활성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나날이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위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차제에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예 중·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장하는 데 주안점을 주는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 반대파의 공격을 불러일으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준구 교수의 말은 결국 소득주도성장론은 획기적인 성장 정책이라기보다 중·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주안점을 둔 분배 정책에 가깝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19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 대학교수 역시 “소득주도성장론은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고루한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의 절충점을 찾은 것일 뿐, 본질은 분배라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왜 소득주도성장론을 꺼내들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빠르게 신자유주의 체제로 경제 체질을 변화시켰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금융 시장 개방이 이뤄졌고, ‘진보 정부’를 기치로 내걸었던 노무현 정부도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애초부터 민영화·감세 등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에 방점을 찍고 탄생한 정부였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으나, 정작 당선 이후에는 흐지부지되면서 경제의 큰 틀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 심화·사회적 갈등 격화 등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요컨대 소득주도성장론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가 낳은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적 성격이 강하다. 앞선 대학교수가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소득주도성장론은 분배정책일 수밖에 없다”며 “단지 분배라는 단어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장’이라는 말을 붙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국민성장론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성공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어찌됐건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가장 큰 불만이 양극화에 있다는 점을 포착했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것이 효과적인 분배 정책인가를 둘러싼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양극화 해소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당은 뜬금없이 국민성장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김병준 위원장의 말을 빌리면, 국민성장론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촉진,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와 감세는 지난 20년 동안 들어섰던 정부 모두가 추진했던 정책의 방향성이다. 즉, 한국당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화된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이 무엇인가’라는 국민들의 질문에 ‘신자유주의’라는 답을 써낸 셈이다.

국민들은 ‘잘 사는 사람만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되는’ 경제 체제를 전환시킬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답안지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소득주도성장론은 틀렸다’라고 말하려면, 그 외에 어떤 다른 ‘분배 정책’이 있는지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무리 훌륭한 답안지라도,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답을 쓴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줄 출제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치도사 2018-10-21 10:40:49
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180 정답은 성장은 시장, 분배는 마을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철지난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