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해법①] 文정부 성공조건…‘노동유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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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해법①] 文정부 성공조건…‘노동유연화’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10.26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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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론은 분배론…성장 동력 마련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소득주도성장론은 성장론이라기보다 분배론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뉴시스

소득주도성장론이 코너에 몰렸다. 양극화 해소와 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론은, 불과 1년여 만에 ‘고용쇼크의 원흉’으로 지목받으면서 벼랑 끝에 섰다. 일각에서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주도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김현철 경제보좌관·정태호 일자리수석·김수현 사회수석을 ‘청와대 4인방’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소득주도성장론이 묘수(妙手)에서 악수(惡手)로 이름표를 바꿔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 침체다. 정부여당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현재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엄중’하다. 경제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하는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그나마도 ‘고용 없는 성장’ 탓에 실업자 수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500일이 지났음에도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비판의 칼이 소득주도성장론을 향하는 모양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실패인가

소득주도성장론은 정말 ‘실패한 정책’일까.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지난 7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경제를 크게 활성화시키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하지 않는다”면서도 “나날이 양극화가 심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위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노학자(老學者)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문재인 정부 주장처럼 획기적 성장 정책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에는 더더욱 반대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나날이 양극화가 심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위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말을 종합하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장론’이라기보다 ‘분배론’에 가깝다. 또한 그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분배에 방점이 찍힌 정책을 제시한 것은 적절하다는 입장도 내보인다. 소득주도성장론이 ‘분배 정책’에 가깝다면,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렸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경우,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결코 실패라고 볼 수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발견된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소비성향이 높은 중·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면 경제 전체적인 소비가 늘어나 투자와 생산, 고용이 확대되고, 이것이 다시 국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면서 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배는 과정일 뿐,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성장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가 나서 분배론을 성장론이라고 포장한 셈이다.

이러자 각종 경제 지표 하락의 주원인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 주도의 분배를 통해 양극화를 완화시키겠다는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도, ‘이름표’를 잘못 붙여 뭇매를 맞게 된 것이다. 이 교수가 “차제에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예 중·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장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통해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 반대파의 공격을 불러일으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충고한 배경이다. 

▲ 경제 지표가 악화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비판의 중심에 놓였다. ⓒ뉴시스

소득주도성장론은 성공할까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론은 ‘성공한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이준구 교수 말처럼 소득주도성장 론이 분배론이고 양극화가 심화돼 가는 현 시점에 유효한 정책이라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공한 분배 정책’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분배는 결국 성장이라는 과실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의 소득주도성장론은 본질적으로 성장의 동력, 즉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형태라는 것이 부정론의 근거다.

지난 9월 <시사오늘>과 만난 서울시내 사립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비용만 증가시키는 문재인 정부 정책은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의 몰락은 결국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소득을 낮추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익명을 요구하며 조심스럽게 해법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결국 핵심은 노동유연화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경쟁 기업보다 적은 비용, 최소한 비슷한 비용을 들여 비슷한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인건비만 올라가면 그게 불가능해진다”며 “인건비가 올라가는 만큼 생산성이 올라가야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노동 유연화”라고 했다.

최남석 전북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역시 지난 9월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제도적 강제성을 기반으로 한 근로시간 단축은 오히려 노동투입감소로 이어진다”며 “노동 유연성 증가와 연계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그에 대한 제도적 보장 없이 고용만 확대하면 노동 경직성이 높아지고 인건비 등 생산비 증가로 이어져 매출이 감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 상승·근로시간 단축과 기업 경쟁력 유지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노동 유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6월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8)’에서 “생산성의 증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 수준을 목표치 이상으로 상승시키고 한국의 국제적인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정규직 고용 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직업 훈련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 노동 유연화 정책은 탄탄한 사회안전망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뉴시스

전제조건은 사회안전망 확충

10월 1일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유로존에서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6.2%의 독일이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15%를 상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독일은 노동 유연화의 모범 사례 중 하나다. 독일은 2002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였다. 임시직 고용을 증진하기 위해 규제를 풀었고, 파견근로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이러자 고용 지표가 크게 개선됐다. 2005년 11%를 상회했던 독일의 실업률은 2018년 5%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청년실업률은 더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하지만 독일의 정책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노동 개혁을 추진하기 전부터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만프레드 슈미트(Manfred Schmidt) 교수는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지국가”라며 “2009년 기준 독일은 GDP의 31%를 사회복지에 사용하고, 독일인들은 수입의 거의 40%를 복지와 관련된 부분에서 지원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은 교육비 대부분을 정부가 책임지며, 의료비 걱정도 적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미니잡(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면서 400유로 이하의 월급을 받는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임시직 근로자에게는 정부가 주거비·의료비·교육비 등도 지원한다. 무상교육, 실업급여, 낮은 물가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 덕택에 노동 유연화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1년 정책진단:최악의 고용성적표, 말뿐인 일자리 정책’ 세미나에서 “독일이나 유럽 등의 사례를 가져오면서 우리도 이렇게 유연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독일 등이 얼마나 사회안전망이 잘 돼있는지를 언급하지 않는다”며 “최저임금 수준이 한국과는 두 배 정도 차이가 나고,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이 정립돼 있는 곳과 단순비교하는 일은 결국 한 부분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도 지난 8월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대기업에서 고용을 조정하려 할 때 노동계가 극렬히 저항하는 이유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며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었을 때 최소한의 기본적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노동시장 유연화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뜻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우리 노동시장은 안정성과 유연성이 모두 낮은 덫에 걸려있다”면서 “우선 실업급여와 전직훈련 기회의 대폭적 확대와 같이 현저히 낮은 고용안전망을 강화하는데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또 “이런 기반 하에서 노동 유연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는 금기시하지 말고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획기적인 사회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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