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선위(禪位)의 역린을 건디린 양정과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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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선위(禪位)의 역린을 건디린 양정과 이재명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11.25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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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 주자의 조기 부상은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는 역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계유정난을 그린 영화 <관상>에서 세조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좌)와 '혜경궁 김씨' 의혹으로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이재명 경기도 지사(우) 사진제공=뉴시스

선위(禪位)는 왕이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국가의 중대사다. 조선 왕조 최초의 선위는 동생 이방원에 의해 억지로 왕이 된 정종이 원래 주인인 태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이다.

반대로 태종은 자신의 아들 세종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선위를 선택했고, 선왕(先王)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왕위 계승의 혼란을 조기에 차단하며 조선 왕조를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했다.

특히 비운의 군주 단종은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쟁취한 숙부 세조에게 선위의 형식을 통해 왕권을 찬탈당했다. 한명회, 홍윤성, 양정 등 계유정난의 주역들은 단종을 겁박하며 왕위를 내려놓을 것을 강요했다.

이들은 단종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세조 제거를 도모했던 혜빈양씨·상궁박씨·금성 대군·한남군·영풍군 등을 역모로 몰아 귀양을 보내는 등 숙청을 단행했다.

겁에 질린 단종은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며 선위한다.

결국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귀양을 갔다가 집권 세력에 의해 암살을 당해 한(恨)많은 인생을 마치게 된다.

하늘은 세조의 세력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특히 계유정난 당시 반대파의 수장인 김종서와 황보인 제거에 가장 앞장섰고, 단종의 선위에도 총대를 맸던 양정은 선위 파동으로 처형을 당했다.

양정은 다른 공신들과 달리 십여 년을 함길도와 평안도 등 변방을 떠돌다 한양으로 귀환했다. 세조도 이를 안타깝게 여겨 양정을 위로하는 축하연을 베풀었다. 하지만 양정은 세조의 역린을 건드렸다. 무엄하게도 세조에게 여생을 편히 보내라며 선위를 주청했다. 한 마디로 너는 노쇠했으니 ‘뒷 방 늙은이’가 되라는 불충(不忠)의 죄를 지은 것이다.

양정의 반대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당장 양정을 처벌할 것을 거듭 간했고, 결국 세조는 참형을 명한다. 개국 공신의 최후는 이처럼 비참했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혜경궁 김씨’ 의혹으로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 씨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현 여권의 지지자들도 이 지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문제의 혜경궁 김씨는 SNS를 통해 故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독설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이 지사는 차기 대권의 유력한 주자로 손꼽히던 대중 정치인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여권의 핵심부와 대척점에 선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난 경기지사 경선에서 친문계의 최고 실세를 상징하는 ‘3철’의 전해철 의원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적지 않게 친문 지지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재명 지사는 현재 성폭행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비문계의 대권 주자로 인정받았지만 정치적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재명 논란'은 사실여부를 떠나 현대판 선위파동으로 볼 수 있는 정치적 모험이다. 역린이 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지 거론하며 현 권력과 맞서는 차기 대권 주자의 조기 부상은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 즉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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