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생’ 나경원은 어떻게 승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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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생’ 나경원은 어떻게 승리했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12.12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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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손잡고 ‘계파갈등 종식’ 메시지로 중도 포섭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친박을 빼놓고 나경원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모두가 50 대 50이라 했다. 원내대표 경선이 열린 국회 본관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한 의원 보좌진은 “양쪽 다 막강하다. 예상이 전혀 안 된다”며 “나경원 의원 쪽이 약간 앞서는 것 같긴 한데,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진은 “저는 김학용 의원 쪽이 이긴다고 본다”면서 “구도 자체가 김학용 의원이 유리한 구도”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68 대 35. 나경원·정용기 의원 조의 33표 차 완승이었다. 김학용 의원이 유리하다던 사람은 물론, 나경원 의원이 약간 앞선다고 내다본 사람들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격차였다. 나경원·정용기 의원 조가 68표를 얻었다는 발표가 나오는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비박’ 김학용 맞서 ‘친박’ 손잡은 나경원

그렇다면 나 의원은 어떻게 이 같은 압도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이번 선거 결과는 ‘친박(親朴)의 반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폐족(廢族)으로 내몰린 친박은 한동안 목소리를 낮추며 철저히 잠행(潛行)해 왔다. 친박의 묵시적 승인이 아니었다면, 홍준표 대표·김성태 원내대표 탄생은 불가능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평가다.

그럼에도 비박(非朴)은 당내 통합보다는, 친박을 적폐(積弊)로 간주하고 쇄신 대상으로만 바라봤다는 것이 친박 측의 불만이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국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비박 지도부가 계속 친박을 쳐내려고만 하니까 친박도 생존의 차원에서 뭉치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황교안 전 국무총리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친박 이미지가 덜한 분을 모셔서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이런 친박의 불만을 잘 파고든 사람이 나 의원이었다. 나 의원은 11월 9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한민국 바로 살리기 국민 대토론회’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평생 감옥에 있을 정도로 잘못을 했느냐”며 “지금 형사재판 중이지만, 거기에 공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지난 9일에는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로 ‘범(凡)친박’ 정용기 의원을 지명했다. 이러자 친박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는 찬성했으나 탈당은 하지 않으면서 ‘강성 비박’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다선 의원에 높은 인지도를 가졌으면서도 마땅한 세력이 없는 나 의원을 구심점으로 택했다. 12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당직자가 원내대표 선거를 “친박의 완승”이라고 규정한 배경이다. 

▲ 68표를 획득했다는 것은 비박 또는 중도 의원들 가운데서도 나경원 의원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중도’에도 어필…선거 전략의 승리

하지만 친박의 힘만으로 68 대 35라는 결과가 나왔을 리 없다. 68표를 획득했다는 것은 비박 또는 중도 의원들 가운데서도 나 의원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나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김 의원이 ‘비박 대표’라는 점을 언급하며 친박·비박 없는 계파 통합을 위해서는 자신이 원내대표로 당선돼야 한다는 선거 전략을 구사했고, 결과적으로 효험을 봤다.

나 의원은 원내대표 투표 직전 치러진 토론회에서 “지금의 시대정신 중의 하나는 계파 없이 통합하라는 것인데, 김 의원은 특정 계파 중에서도 핵심 세력”이라며 “과연 통합의 적임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시면 ‘누구의 시즌2’가 된다”고 덧붙였다. 비박이면서도 친박과 손을 잡은 자신과 달리, 김 의원은 특정 계파를 대표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 덕분인지, 원내대표 경선 직후 <시사오늘>과 만난 한 초선 의원은 “당이 조금씩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는데, 김 의원이 당선되면 또 친박이니 비박이니 복당파니 하면서 갈등이 일어날 것 같아 나 의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비박을 대표하는 김 의원이 당선될 경우 계파 갈등이 재현될 것이라는 나 의원의 공세가 효과를 거둔 셈이다.

12일 <시사오늘>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도 “김 의원 뒤에 김무성 전 대표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김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김 전 대표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다시 당이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국당 의원들이) 한 것 같다”며 “사람 자체만 놓고 보면 김 의원이 친화력도 좋고 정치력도 있는 분인데, 이번에는 김 전 대표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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