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서원으로 재기한 사림과 블랙홀에 빠진 한국 보수
[역사로 보는 정치] 서원으로 재기한 사림과 블랙홀에 빠진 한국 보수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12.1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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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훈구의 전철을 밟고 있는 보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영화 <관상>에서 훈구파의 지원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좌)와 지리멸렬한 한국의 보수 정치권 사진제공=뉴시스

조선 중기 훈구와 사림의 대결은 사림의 승리로 끝났다.

조선을 개국한 혁명파 사대부의 후예인 훈구의 몰락은 지나친 권력 독점욕으로 인한 부정부패와 엘리트 위주의 중앙 정치에 치중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조선 개국을 거부한 온건파 사대부의 후예인 사림은 향촌에 은거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묵묵히 기다렸다. 특히 이들은 서원과 향약을 세력기반으로 삼아 향촌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했다.

성종은 훈구의 전횡이 싫었다. 모친인 인수대비와 결탁한 한명회을 비롯한 훈구 대신들의 전횡을 막고자 사림을 중용했다. 하지만 중앙정치에 미숙한 사림은 기득권 정치그룹인 훈구을 견제할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성종의 뒤를 이어 연산의 시대가 열렸다. 연산도 왕권 강화를 위해 훈구와 대립했으나 그들의 정치공학적 기획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오히려 훈구는 연산군을 이용해 사화를 주도하며 정치적 반대 세력인 사림을 제거하고자 했다. 사림은 연산과 중종, 그리고 명종을 거치며 네 차례의 사화를 겪는다. 기득권층의 잔인한 정치보복에 수많은 인재들이 희생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조광조다. 중종의 최측근 인사로서 조선 도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광조는 위훈삭제를 주도하며 훈구의 세력 기반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반격을 받아 비명횡사했다.

이른바 ‘기묘사화’가 발생한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종의 배신과 훈구의 정치보복이 두려워 다시 향촌으로 숨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원과 향약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며 중앙 정치로 복귀할 시기를 기다렸다.

특히 서원은 겉으로는 성리학을 연구하는 교육기관이지만 속내는 사림의 정치적 은거지였다. 이들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자신들의 제자로 삼아 훈구와 같은 기득권층에 맞설 전사(戰士)로 육성했다.

선조가 즉위하자 훈구는 몰락했고, 사림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등장했다. 불행히도 훈구는 중앙 정치에만 집중하다보니 돌아갈 곳이 없었다. 향촌은 이미 사림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고, 재기할 발판이 없던 훈구는 역사의 현장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건국 이래 산업화를 주도하며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의 롤모델로 만들었던 보수 정치권은 2017년 탄핵 정국으로 궤멸의 위기에 처했다. 엘리트 군인과 유능한 행정관료, 그리고 재벌로 상징되던 보수 정치권은 이제 재기를 도모할 능력조차 상실한 ‘무능한 공룡집단’으로 전락했다.

반면 현 여권은 수십년 간 시민단체와 노조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시대를 준비했다. 보수 정치권은 지리멸렬한 계파 갈등에 빠져 돌아갈 기반이 없는 반면, 현 여권은 정권을 잃어도 재기할 발판을 구축한 지 오래다.

한국당 비대위는 지난 주말 김무성, 최경환 의원을 포함한 친박계와 비박계 등 당협위원장 21명을 물갈이하는 인적 개편안을 발표했다.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당선된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는 비대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며 반발했다. 지긋지긋한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보수 정치권의 대분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의 대한민국 보수의 모습을 보면 조선의 훈구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보수의 미래가 블랙홀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오각성하고 분골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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