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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마약왕>, ‘연기왕’ 송강호의 아우라가 그려낸 70년대 범죄와의 전쟁
주인공의 독보적 마성에 가려진 조연들의 소모와 장르적 클리셰
2018년 12월 17일 08:37:18 김기범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영화 <마약왕> 포스터 ⓒ 쇼박스

한국의 격동기인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요즘 국내영화 공식은 대개 이렇다.

세상 밑바닥에서부터 가난과 척박을 딛고 일어나 온갖 수모와 역경 끝에 주인공은 나름의 성공을 이룬다. 그 과정에서 당시 시대상을 나타내는 의상이나 소품, 음악 등 엄격한 고증을 거친 여러 코드들은 관객의 기억 회로를 더듬는다.

여기에 산업화의 변혁과 혼란을 상징하는 정치사회적 부조리는 가장 중요한 영화의 필수 요소다. 주인공이 자신의 성공가도를 향해 질주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비합리와 폭압을 나타내는 거대 정치권력과 자본, 그리고 폭력과의 결탁은 주인공이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된다. 동시에 언제 쓰러질지 모를 불안한 디딤돌이기도 하다. 

물론 그 시대의 애틋한 낭만과 로맨스를 다룬 영화들도 적지 않다.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중장년 세대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3년 전의 <쎄시봉> 또한 옛 시절 통기타 낭만에 걸맞은 사랑과 우정의 추억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방황하고 추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많았던 것은 당시 몰상식의 시대와 맞물려 허우적거려야 했던 우리네 현실이 그만큼 사무쳤기 때문일 터다.

사람들은 지난한 현실을 타개하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도 해야 했다.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이성은 마비되고, 그렇게 우리는 집단의 일부가 됐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생존을 위해 부정(不正)과 손을 맞잡아야 했던 어느 사내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이제는 회귀해서는 안 될 ‘야합의 시대’를 살았던 한 가장의 명멸을 그린 이 수작(秀作)은 당대 사회에 만연했던 폭력과 범죄의 일상을 표출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과의 갈등, 음모와 배신은 주조연을 넘어선 등장인물 간의 완벽한 합(合)을 이뤄냈다.

19일 개봉하는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은 마치 <범죄와의 전쟁>의 70년대 버전을 보는 듯하다.

다만 <범죄와의 전쟁>이 조폭이라는 사회악을 담아냈다면, <마약왕>은 또 다른 범죄 수단인 마약을 소재로 한다.

수출입국의 기치를 높이 세운 70년대, ‘필로폰’으로 대변되던 마약이 해외로만 맴돌다 결국 국내에 유통돼 음성적 치부(致富)에 이용된다는 점은 삐뚤어진 경제발전의 이면을 드러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범죄에 서서히 빠져들어야 했던 한 남자의 드라마는 영화 초반 블랙 코미디의 옷을 입고 조금씩 관객 시선을 흡입한다.

마약처럼 범죄에 탐닉해 가는 송강호의 모습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독보적 존재감을 뿜어낸다.

<마약왕>은 철저히 송강호의,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다.

하정우, 이병헌과 함께 현재 충무로 흥행보증 수표인 송강호의 대사 하나, 동작 하나는 보는 이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모처럼 물 만난 고기마냥 송강호가 토해내는 특유의 걸진 부산 사투리마저도 이채롭다.

마약에 빠지고 범죄에 발목이 잡힐수록 어느새 사내는 사회 지도층에 다가선다.

범죄자와 기득권이라는 두 세계의 다른 듯 같은 속성은 분명 모순이면서도 엄연한 현실일지 모른다. 상반된 양쪽의 경계에서 끝내 자신을 찾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주인공은 왜곡된 욕망의 집착과 타락의 비례성을 보여준다.

송강호가 치닫는 극한 상황은 직소(Jigsaw)의 <Sky High>로 시작된 영화 OST가 슈베르트의 <마왕>으로 끝나면서 절정을 맞는다. 하늘 높이 정상을 향해 날아오르려던 한 남자의 야심은 마침내 클래식을 듣는 우아한 모습을 낳지만 그것은 악마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마약에 취하듯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할 관객들에게 영화의 마력(魔力)이 얼마나 호소될 지는 미지수다.

영화의 그 모든 것이 송강호의 일거수일투족에 의해 지배되는 만큼, 주변 등장인물들의 소모는 안타깝게 다가온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이격은 설득력이 있지만 각 배우들의 무게감은 아쉽다. 조연들의 두드러진 개성과 전체적으로 이를 아우르는 조합이 <마약왕>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송강호의 아우라에 전적으로 의존해 끌려가는 모양새다.

여기에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이르는 한국 현대사에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다 보니 영화가 주는 재미는 다소 결여된 느낌이다. 이야기는 무난하게 흘러가지만 보는 이에게 강렬한 ‘엑스터시’를 선사할 만한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끔 늘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송강호의 연기력과 존재감에 의해 끌려갈 뿐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신선하다고 할 수 없다. 사실에 기초한 한국 마약사(史)를 소개하는 드라마의 분위기다.

범죄를 소재로 한 주인공의 욕망과 타락, 그리고 파멸을 필두로 인물들의 일탈과 배신, 팜므 파탈의 출현 등 여러모로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하다못해 부산을 배경으로 한 검사의 끈질긴 추적과 주인공의 생명줄과도 같은 수첩 속 인맥까지..., 우민호 감독은 기존 유사 장르와의 차별화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마약왕>은 송강호의 조강지처 역할을 맡았던 김소진에겐 보다 분명하게 각인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긴 이미 <더 킹>에서 찰진 사투리를 쓰는 열혈 여검사로 확실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청소년 관람불가다.

 

뱀의 발 : 영화 말미로 갈수록 마약에 찌들어가는 주인공 모습치고는 송강호의 인상이 너무 후덕하다. 

 

★★★ 

 

 

 

담당업무 : 에너지,물류,공기업,문화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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