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여가수 'Kany Garcia'
[칼럼]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여가수 'Kany Garcia'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17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38)> 푸에르토리코의 신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국기에 얽힌 '닭짓'

세계 80여 개국에서 이른바 '우버 택시'라고 부르는 차량 서비스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해가고 있는 우버(Uber) 본사에서 2017년 12월 22일 웃기지도 않는 사고를 쳤다. 푸에르토리코의 독립 기념일을 축하한답시고 푸에르토리코 국기를 본사에 게양하고, 이것을 사진까지 찍어서 페이스북에 홍보용으로 올렸다. 그런데 그 국기가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아니고 쿠바 국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엉뚱한 '닭짓'을 하고 비난이 빗발치자 뒤늦게 "푸에르토리코 국민 여러분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비슷한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사실 푸에르토리코 국기를 자세히 보면 쿠바 국기와 형태는 똑같고 색깔만 반대로 돼있다. 이는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기인한다. 쿠바 국기는 1849년 나르시소 로페스라는 독립운동가가 도안했다. 당시 푸에르토리코는 쿠바와 함께 스페인에 독립투쟁을 벌였고, 푸에르토리코 독립 운동가들은 쿠바혁명당의 일원으로써 투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쿠바 국기에 색깔만 바꿔서 푸에르토리코 국기로 사용하면서 비슷한 모양이 된 것이다.

▲ 푸에르토리코 국기를 자세히 보면 쿠바 국기와 형태는 똑같고 색깔만 반대로 돼있다.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푸에르토리코 국민은 대략 400만 명이 조금 안되고, 1인당 GDP도 3만 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중남미에서는 비교적 부유한 국가이지만 빈부격차가 상상을 초월하고 경제도 곤두박질쳐서 일반 국민들의 삶은 사실 팍팍해서 중남미 다른 국가들의 국민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게다가 현재는 미국령인데 주민투표가 무산돼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지못한 아주 어정쩡한 상태이다. 때문에 미국령이기는 해도 미국 본토와 완전히 동일한 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또 국민들 85% 이상이 영어를 못한다. 말하자면 영어도 못하는 반쪽짜리 미국인들이 사는 나라인 셈이다.

* 죽다가 살아난 여가수

미인에다가 노래도 잘하는 푸에르토리코 여가수를 한 명 소개하려는데 앞의 말이 너무 길었다. 보통 여가수들은 어떤 콘테스트에 입상하거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와 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거나, 사돈의 팔촌이라도 연예인 가족의 후광으로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여가수는 콘테스트(2004년 TV Objetivo Fama)에 나가기는 했지만 등수가 한참 밀려 안중에도 없는 후보였다. 때문에 지금은 콘테스트 쇼 역사상 가장 성공한 '탈락자 여가수'로 꼽고 있다.

라틴계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좋다는 단어 다 붙이고 엄마 아빠 이름 하나씩 또 붙여서 삼천갑자동방삭처럼 이름이 길다. 그래서 다 외우지 못하고 애칭으로 주로 부른다. 이 여가수 이름은 Encarnita Kany Garcia de Jesus인데 보통 Kany로 부른다. 하지만 Kany라는 이름만으로 찾으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엉뚱한 사람이 나온다. 그래서 하나 더 붙여야 한다. Kany Garcia.

▲ Kany Garcia는 1982년생으로 푸에르토리코 Toa Baja에서 태어났다.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Kany Garcia는 1982년생으로 푸에르토리코 Toa Baja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목회자 집안으로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다. 또 두 명의 삼촌들도 목사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일찍이 첼로와 음악이론, 합창 등을 익혔고 음악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작사, 작곡, 노래를 직접 하는 재주는 아마도 이런 기본기가 탄탄해서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가 성공하기까지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스무 살 무렵 그녀는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로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골반과 쇄골이 골절됐고 얼굴은 40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대수술과 집중적 치료 후 발가락 장애까지 왔지만 그녀는 계속 작사와 작곡에 전념해 결국 '인간 승리'를 이룩한다.

*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 노래

Kany Garcia는 싱어송 라이터로 대부분의 곡이 자작곡이다. 첫 녹음은 2006년 Sony BMG에서 했고 2007년 발매했다. 표제는 'Cualquier Dia'로, 해석하면 '어느 날' 아니면 '곧' 쯤 된다. 이 음반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해서 Kany Garcia를 일약 대스타로 도약하게 했다. 우선 그해 빌보드 라틴 트랙 40에 선별됐고, 6개 부문 라틴 빌보드상과 2개 부문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그래미 베스트 여가수 앨범상과 2008년 최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음반 판매도 미국과 멕시코에서 골든디스크를 기록했다.

그녀의 두 번째 앨범 'Boleto De Entrada'는 2009년 9월 발매됐는데 곡들은 대부분 팝이나 소프트 발라드였다. 이 음반은 다른 가수들과 함께 한 콜라보도 있는데, 같이 노래한 가수들은 Julieta Venegas, Reyli, Juan Luis Guerra, John Mayer 등이다. 그해 그녀는 최고 여가수 후보에 올랐고, 수록곡인 'Feliz'는 그녀의 곡중에 세 번째로 빌보드 톱 10에 들었다. 또 이 음반으로 최고 여성보컬 부문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한편으로 그녀는 자신의 곡 이외에도 여러 명의 다른 라틴 가수들에게도 작곡을 해줬는데, 사실 그 가수들 이름을 들어봐도 다 잘 모른다. 다만 멕시코의 디바 Thalia와 함께 듀엣으로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Estoy Enamorado)를 불러서 널리 알려진 푸에르토리코 남자 가수 Pedro Capo와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 정도만 알 뿐이다.

▲ Kany Garcia는 1982년생으로 푸에르토리코 Toa Baja에서 태어났다.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Kany Garcia는 최근까지 라이브 음반을 비롯해서 여러 장의 후속 음반을 냈다. 아무튼 최초의 음반부터 최근까지 낸 음반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고 녹음이 잘 되고, 또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곡들이 들어 있는 음반을 한장 선택하라면 2017년 제작한 'Soy Yo'를 꼽고 싶다. 이 노래들은 Ruben Martin 감독이 맡아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져서 이듬해 2018년 발매했다.

부제인 'Soy Yo'는 해석상 '나야 나' 쯤이 아닐까 싶다. 이 앨범은 빌보드 라틴 앨범 순위 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으로는 'Mi Duena', 'Dejarte Ir', 'confieso' 등으로, 이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마음속에 거문고가 울리는 것 같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