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며느리도 죽인 인조와 차기 권력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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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며느리도 죽인 인조와 차기 권력 투쟁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12.30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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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해결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JTBC 주말드라마 ‘궁중 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소현세자빈 역할을 맡은 배우 송선미(좌)와 청와대(우) 사진제공=뉴시스

인조는 자신의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를 죽인 비정한 군주였다.

소현세자 일가는 병자호란 참화의 최대 희생자로 청에 포로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청의 미래를 감지해 청의 지도자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나라 조선을 꿈꿨다.

아버지 인조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적국의 수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한 삼전도의 치욕을 절대 잊지 못했다. 하물며 자신의 세자가 불구대천의 원수 오랑캐와 친분을 맺었다니 옹졸한 군주 인조로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귀환한 지 얼마 안 돼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아직까지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지만, 인조 관련 의혹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의혹이다.

인조의 다음 목표는 자신의 첫째 며느리인 강씨였다. 강씨는 지아비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시아버지에게 거세게 저항했다. 인조는 자신의 며느리를 증오하기 시작해 결국 사약을 내린다.

<인조실록> 인조 24년 3월 13일 기사에 따르면, 인조는 “죄악이 가득 차서 후환이 우려되기 때문에 내가 처단하고자 한 것인데 누가 감히 저지하겠는가. 강씨가 큰 소리로 발악하기에 처음에는 몹시 이상하게 여겼으나 지금 와서 보니 필시 후원하는 당류가 많은 것을 믿고서 그런 것”이라고 분노했다.

인조는 “그런데 경들이 이처럼 여러 날 동안 서로 논쟁을 벌이니, 만일에 역적의 변란이 갑자기 일어나 국가가 전복돼 멸망하기라도 한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사론(士論)이 이와 같고 조정이 이와 같아 임금의 나쁜 점을 드러내어 사방에다 퍼뜨리고 있으므로 일을 예측할 수 없는데도 돌이켜 생각할 줄 모르고 있으니, 이는 무슨 의도인가”라고 신하들을 몰아세웠다. 

요즘 같으면 '답정너'라고 볼 수 있다. 강빈의 사사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인조는 이틀 후, 강씨의 사사를 명한다. 인조 24년 3월 15일 기사는 “소현 세자빈 강씨를 폐출해 옛날의 집에서 사사하고 교명 죽책(敎命竹冊)·인(印)·장복(章服) 등을 거두어 불태웠다”고 기록했다.

실록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의금부 도사 오이규가 덮개가 있는 검은 가마로 강씨를 싣고 선인문(宣仁門)을 통해 나가니, 길 곁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담장처럼 둘러 섰고 남녀 노소가 분주히 오가며 한탄했다”고 전한다.

특히 “그러나 그 죄악이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단지 추측만을 가지고서 법을 집행하였기 때문에 안팎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고 모두 조 숙의(趙淑儀)에게 죄를 돌렸다”고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인조 재위시절은 치열한 당파싸움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조의 사례처럼 권력 투쟁은 자신의 며느리도 죽일 수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함의 극치다.

이제 이틀 후면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가 된다. 5년 단임제의 한계는 집권 3년 차가 되면 현재의 태양 대신 미래의 태양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차기 대권을 향한 비정한 권력 다툼이 예상되는 시기다. 민생 해결은 또다시 먼나라 얘기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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