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철새 정치인, 기준은 무엇일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주간필담] 철새 정치인, 기준은 무엇일까?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8.12.30 2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 눈높이 맞는 ´명분´없인 낙인만 찍혀
'야망 쫓아´ 옮겼다면 '결과 내야´ 면죄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는 이학재 의원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바른미래당 당직자들로부터 정보위원장직과 관련해 몸싸움 등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옷자락을 잡힌 인물이 이 의원. 이 의원은 ´철새´라는 낙인을 떼어버릴 수 있을까. ⓒ뉴시스

철새 정치인이다, 아니다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당적(黨籍)을 옮기는 것은 정치인에게 큰 부담이다. 정치인의 생명은 유권자의 신뢰에 달려있으며, 그렇기 위해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당적을 이동하다가 자칫하면 ´철새´라는 조롱 섞인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학재 의원이 지난 18일 바른미래당을 탈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동했다. 국민의당 출신으로, 무소속이던 이용호·손금주 의원도 지난 28일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했다.

당연히 조용히 넘어가지 못했다. 이학재 의원은 정보위원장직 문제로 '먹튀 논란'까지 나왔으며, 분노한 바른미래당 당직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용호·손금주 의원을 바라보는 민주당 내의 시선도 곱지 않다. 옛 국민의당 호남계가 주류인 민주평화당도 반발했다. 세 사람 모두 일단은 정치적 신의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대다수.

당을 옮긴다고 해서 꼭 이러한 비난을 듣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정당이 시시각각 생몰(生歿)하는 정치판에서는, 당적을 한 개만 가지고 있기가 더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철새'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다. 크게 두 가지다. 명분이 좋거나, 아니면 승리로 증명해야 한다.

우선 명분이다. 정치권의 한 원로 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정치는 명분이 전부"라며 "돈도없고 운도 없을 수 있지만 명분이 없이는 애초에 정치가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적어도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바로 명분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험지로의 도전이 아닌 양지로의 편입이라면 더욱 명분이 선명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의 핵심 중진이 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을 보자. 이들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의 쇄신을 주도하다가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당적을 옮겼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철새'라며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당시 이들을 비롯한 '독수리 5형제'의 탈당 명분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김영춘 장관의 경우, 창조한국당 등 그야말로 양지는 커녕 오지에 가까운 곳에서 정치실험을 해왔다. 이후 또다시 고향에서의 지역주의 타파 시도 등의 행보를 통해, 이들은 오히려 박수 받았고 끝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가장 최근의 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새누리당 의원 33명이 집단으로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사례다. 당시엔 아무도 이들에게 '철새'라는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탄핵정국에서 명분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의 희망, 현명한 결단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 중 일부가 복당할 당시엔 '철새'라는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에도 '보수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긴 있었지만, 앞선 명분에 비해선 빛이 바랬다. 국민들 대다수에게 이해받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철새'라고 불리지 않는 또 다른 경우로는 '승자'가 돼야 한다. 야망을 위한 당적변경이었다면 결과를 내야 했다는 이야기다.

정치사적 시대상황 등을 감안해야 하지만,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이 사례에 속한다. DJ도 수 차례 당적이 바뀐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1987년, DJ는 대통령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통일민주당을 나가 평화민주당을 만들었다. 이후 결국 1997년 정권을 잡으면서 결국은 결과를 낸 셈이지만, 자칫하면 1987년 군정종식 실패의 원인으로 DJ의 대권 야망이 지목당할 수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한 사례다. 삼당합당에 반대할 때는 명분이 공감받았고, 국민통합추진회의를 나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몸을 실었을 때는 대권을 향한 야망이 있었다. 2002년 승리하며 결국 대망을 이룬 노 전 대통령을 철새라고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표적 반례는 이인제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1997년 대선 경선 불복, 독자출마와 함께 정치적 방랑을 시작했다. 이후 이 전 의원은 양지도 마다한 채 대권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결국엔 실패하며 '철새' 낙인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바로 이번 달에 당적을 옮기는 이학재·이용호·손금주 의원에게도 각자의 이적 명분이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를 감안하면, 현재 정가를 양분 중인 거대 양당으로의 편입인지라 이들에겐 보다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다. 이학재 의원의 경우 보수대통합의 필요성을 내걸었고, 이용호·손금주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꼽았다. 그러나 이들이 직면한 비판의 수위를 감안하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명분이었는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연말을 맞아 정치권에서 또다시 '신년 정계개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혹시 당적을 변경해야 할 인사들이 있다면, 과거의 사례를 통해 '철새의 기준'을 한번 고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자신에게 붙는 '철새' 딱지가 억울하다고 생각된다면 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