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주민 주도 마을공동체 회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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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주민 주도 마을공동체 회복의 길
  •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겸 변호사
  • 승인 2019.01.0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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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겸 변호사)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뤄냄으로써 단군 이래 오천 년 가난의 한을 풀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 중 하나가 마을공동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농촌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고 도시는 과밀화와 익명의 공간으로 변화되면서 마을공동체 전통은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한국정책학회가 수행한 ‘2015년 중앙부처 마을공동체사업 조사·진단 결과’에 의하면 정부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은 6개 부처 14개 사업으로 연간 예산규모는 약 1조 2천억 원(2014년 1조 1,700억원, 2015년 1조 1,8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주민 주도가 아닌 국가나 자치단체 중심의 하향식 추진 경향, 개별 부처 차원의 분절적 사업 추진으로 인한 사업의 유사·중복, 시설물 건축이나 장비 구축 등 물질적·외형적인 측면에 치중한 사업 지원방식,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마을종합계획의 부재 등으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주민 주도 하에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함으로써 마을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드디어 그런 목소리가 반영된 2개의 법안이 국회에 입법발의되었다. 2016년 11월 18일 유민봉 국회의원의 대표발의한 「지역공동체활성화기본법안」(이하 ‘지역법안’이라 한다)과 2017년 2월 24일 진선미 국회의원의 대표발의한 「마을공동체기본법안」(이하 ‘마을법안’이라 한다)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역법안과 마을법안 모두 주민이 주도적·자발적으로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틀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는 두 법안 다 중앙집권적 틀로 짜여진 기존의 법체계를 별다른 성찰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상 두 법안의 모든 문제점을 다루는 것은 무리이므로 여기서는 주민 주도의 관점에서 중요한 점 위주로 몇가지 문제점만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마을공동체사업의 주체를 보면, 지역법안은 ‘지역공동체조직’을, 마을법안은 ‘마을공동체’를 각각 들고 있다.

지역공동체조직 내지 마을공동체는 매년 1조 2천억 원이나 되는 엄청난 예산이 투여되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지역 또는 마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일선조직으로 사실상 마을정부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조직, 마을공동체 둘 다 그 실체가 모호하다. 만일 읍면동 단위로 지역공동체조직 내지 마을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면 주민자치회와 유사·중복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어도 읍면동 단위에서는 지역공동체조직 내지 마을공동체를 주민자치회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마을공동체 정책의 추진체계를 보면, 두 법안의 내용은 거의 같다.

즉, 지역법안은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로 자치단체장 소속의 ‘지역공동체위원회’를 두고 자치단체장이 ‘지역공동체지역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을법안도 같은 내용의 ‘마을공동체지역위원회’와 ‘마을공동체지역지원센터’를 규정하고, 덧붙여 자치단체장이 전담기구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지역법안에는 전담기구에 관한 규정은 없다. 어쨌거나 두 법안 모두 위원회와 센터를 자치단체장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주민 주도의 취지를 관철하고자 한다면 위원회는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대표기관(마을원 내지 민회)의 성격을 지닐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하고, 센터는 그 대표기관의 사무국이 되어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 차원에서 마을공동체 정책의 추진체계를 보면, 지역법안은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관한 주요 정책·사업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지역공동체 정책위원회’를 두고 동 위원회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하여 행정자치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역공동체 실무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출연기관인 한국지역진흥재단을 ‘한국지역진흥원’으로 개편하여 국가 차원의 지역공동체 활성화 업무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마을법안은 마을공동체 활성화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마을공동체중앙위원회’를 두고, 행정자치부장관은 ‘마을공동체중앙지원센터’ 및 전담기구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 법안은 중앙정부 차원의 위원회 구성 방법과 센터 관리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위원회를 주민대표기관으로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위원회는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중앙대표기관으로 구성해야 하고, 진흥원 또는 센터는 그 중앙대표기관의 사무처가 되어야 한다.

넷째, 마을기금을 보면, 지역법안은 지역공동체재단이 지역공동체기금을 설치·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마을법안은 마을공동체가 마을공동체기금을 설치하고 마을공동체재단이 관리·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기금은 특정 단체나 재단이 아닌 주민 전체의 공동자산이 되도록 설치·운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기금을 읍면동 단위로 설치하되, 국가 및 자치단체가 출연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금의 공동소유형태는 주민 총유가 되어야 하며, 기금운용심의위원회는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밖에도 개념 정의, 국가 및 자치단체 책무, 마을발전계획, 자치단체의 지역계획, 중앙정부의 기본계획, 공동체 역량 강화 및 전문인력 양성, 공동체재단, 특례와 지원 등 관련 언급할 내용은 상당히 많지만 차후로 미루기로 한다.

국회에 입법발의된 지역법안과 마을법안은 둘 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대한 숙고와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 지역법안과 마을법안을 통합한 주민 주도의 법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권재민을 실현하고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민 주도의 마을공동체 회복의 길은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이나 다름없다. 불안감에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학자 조엘 바커는 이렇게 말했다. “행동 없는 비전은 단지 꿈일 뿐이다. 비전 없는 행동은 시간만 낭비한다. 그러나 행동하는 비전은 세상을 바꾼다.”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전공)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원 졸업
(전) 부산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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