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뜨거운 감자-‘文정부版 블랙리스트’ 의혹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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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뜨거운 감자-‘文정부版 블랙리스트’ 의혹 파문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1.05 11: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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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일로 靑 특감반 민간사찰 의혹
舊 정권 블랙리스트 반복 가능성
현 정권 블랙리스트 환경부뿐인가
현대 정치사 사찰 참사 적폐 극복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을 둘러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정국이 또 요동치게 됐다.

청와대와 정부가 공공기관 및 정부 산하 기관장과 주요 임원의 정치 성향 등을 분석해 문건으로 만들어 관리해 왔다는 것이 의혹의 요지다. 민간인사찰 의혹은 공공기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블랙리스트 작성 및 표적 감찰설까지 불거지면서 자칫 정권 차원 의혹으로까지 비화할 기세다.

1차적으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이 일파만파다. ‘환경부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문재인 정부에서도 특정 성향 인사들을 공직에서 배제하기 위한 명단, 즉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다른 정부 기관에서도 작성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미 상당수 공공기관에서 이전 정부에서 기용됐거나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 인사들 중에 많은 인사가 중도 퇴진했고, 그 자리에 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들이 자리잡았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표적감찰을 벌였을 것이란 지적들이다.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을 보면 현 정권도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관련 문건들의 진위를 제대로 조사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매일같이 불거지는 사실들은 문 정부판(版) 블랙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정부의 신뢰성은 내부자들의 잇단 폭로로 크게 훼손됐다.

문재인정부는 과거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을 추진해 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의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역죄’ ‘반헌법적’이라고 비판하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했다.

문 대통령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선 후보 시절에는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와 관련, “나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 다음 정부는 절대 그런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인 약속까지 했었다. 그런 문 정권도 집권후 스스로 그 유사한 의혹에 휘말리고 말았다.

물론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돼 온 공공기관 물갈이에 똑같은 잣대를 댈 수 있느냐는 여권 내의 반박도 나오고 있다. 관건은 역시 박근혜정부 김 전 비서실장 사건 항소심 판결에서 제시됐듯,  ‘조직적·계획적·집단적으로’ 지난 정권 인사 배제 작업이 진행됐는지 여부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청와대는 이제 최근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이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어떻게 다른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폭로전에 국민 혼란만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던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최근 폭로전 파장은 거칠기만 하다. 그는 청와대가 기업, 정치인, 언론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법 정보 수집을 했고, 특정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폭로전을 한달 넘게 이어오고 있다.

김 수사관이 공개적으로 등장한 이후 일각에서는 그를 '신적폐'를 용감하게 폭로하는 인물로 띄우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개인 비위로 청와대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리자 신뢰성 떨어지는 첩보를 과장해 공개한 자로 규정한다. 상황이 이러니 상당수 국민이 헷갈려 한다.

그가 제기한 민간인 사찰 의혹만 해도 여야의 입장과 시각이 전혀 달라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안의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정치적 논란과 공방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것이다. 김 수사관 개인 비위와는 무관하게 그동안 그가 직접 제기했거나 그가 연루된 의혹은 실체가 조속히 규명돼야 할 일이다.

청와대 특감반원들이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과 공공기관 임원을 불법 사찰했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의혹과 문제의 핵심이며, 국정에 어떤 파장을 일으켜 나갈지, 어떤 처리방향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다각적 진단이 필요하다.

정부 곳곳 문건존재 기류

쟁점이 된 김 수사관의 리스트에는 출신 당(黨), 보수 또는 진보진영 인사와 친분 관계 등의 평가까지 조사돼 있다는 소식이다.

야당 성향의 인사들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출신’,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 ‘전 정권 인사 추천’ 등의 설명까지 붙였다는 것이다. 결국 현 정권 인사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전 정권 출신 인사들을 찍어내는 블랙리스트였던 셈이다.

정권의 이른바 '충견(忠犬)'들이 나서기 시작했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와 민간인 사찰 의혹은 '꼬리 자르기'로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환경부의 '사퇴 동향' 문건 속 인사들은 언론과의 통화에서도 실제 사표를 종용하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환경부는 '환경부 출신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동향' 문건도 김 수사관에게 줬다고 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사 대부분이 공직에서 물러난 민간인 신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출마 예상 지역' '공천 예상 정당' '환경부 근무 시 직위' 등을 파악해 리스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간인 사찰이 분명하다.
정치적 입김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할 과학계마저 현 정부 출범 이후 표적 감사와 물갈이 인사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자력연구원장,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 10여 명이 줄줄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었고, 그 빈자리는 현 정권과 가까운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졌다. 환경부 외에도 반대세력을 찍어내기 위한 문건이 곳곳에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청와대는 감찰 대상인 공공기관장과 임원을 확인했을 뿐이라며 동향 수집에 대해선 김 수사관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곳곳에서 표적 감사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사실을 감안하면 개인 일탈이라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환경부 문건 정치쟁점화

최근 한국당이 "환경부가 올해 1월 산하기관 임원들의 동향을 담아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라며 공개한 문건도 정치 쟁점화하는 양상이다.

환경부가 김 수사관의 요청으로 만들어 건넸다는 문건에는 한국환경공단 등 환경부 산하 8개 기관 임원 21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 등이 담겼다. 문건 상단에는 '환경공단 외에는 특별한 동요나 반발 없이 사퇴 등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아래 주석에는 사표 제출 요구에 반발하는 이들의 사유가 적혀 있다.
‘반발’ 임원에 대해선 ‘새누리당 출신’ ‘야당 의원에게 내부 정보 제공’ 등의 설명이 붙었다. 자유한국당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 확인된 블랙리스트”라며 “청와대가 ‘문재인 캠프’ 낙하산 인사를 위해 물갈이를 진행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인사 정보 문건이 나왔다고 무조건 블랙리스트라고 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라며 문건의 진위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특히 김 수사관이 특감반 근무 시절에 상관의 지시를 받아 민간인 사찰을 했다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민정라인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해놓았다. 그러나 청와대는 오히려 김 수사관이 언론에 청와대 기밀을 유출한 점을 문제 삼아 고발했다.

야당은 또 정부가 과거 정권 인사를 솎아내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증거라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 문건 생산 당시 환경부 관계자와 이인걸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장 등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하는 등 대정부 공세에 나서고 있다. 나아가 환경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의혹을 제기하며 전 부처 실태 파악을 위한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물론, 동향 파악 문건을 공직이나 정부 사업 등에서 배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명단인 블랙리스트라고 단정한 건 너무 앞서 나간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도 공공기관에 낙하산·보은형 인사가 빈번하게 이뤄진 걸 보면, 의혹 부풀리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전언 형식을 빌린 의혹 제기지만 물증이 뒷받침 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김 수사관은 이인걸 특감반장 지시로 경찰에서 파견 온 특감반원이 전국 330개 공공기관장과 감사 현황을 파일로 작성했고, 특감반원들이 이를 나눠서 성향 분석과 세평 조사 등을 벌였다고 했다. 허지만, 청와대는 단순한 명단 정리였을 뿐, 나머지는 김 수사관 개인 일탈로 치부한다.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김 수사관의 해임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의혹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의혹들 계속 돌출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는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의혹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해당 문건에 청와대가 어느 단계까지 관여돼 있느냐다. 지시자가 누구이며,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특정 성향 인사들의 무더기 사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개인 일탈’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김 수사관은 “특감반장이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며 표적 감찰을 지시했다”고 맞서고 있다. 만약 윗선에서 단순한 명단 정리 수준을 넘어 성향 분석 등을 지시했다면 그 파장이 민정수석실 선에 그치기 힘든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관련 문건이 과연 환경부뿐이겠느냐는 의혹이다. 김 수사관은 다른 부처들에서도 비슷한 문건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란 의심 정황을 불거지게 했다. 현 정부 쪽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을 ‘찍어내기’한 작업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의 확신에 찬 반박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또 새로운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고국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사직한 신재민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기재부를 통해 민간기업인 KT&G 사장 교체를 지시했고 서울신문 사장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등의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해소되기도 전에 또다른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으니 답답하고 어지러울 뿐이다.

신 전 사무관은 또 청와대가 기재부의 반대에도 4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라고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11월 14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지시로 다음날 발행된 1조원 규모의 국채 조기 상환 입찰은 전격 취소됐지만, 청와대가 “이미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항”이라며 국채 발행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2017년의 국가 채무 비율은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고, 향후 문재인 정권의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 ‘비교기준’이 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늘려서 현 정권의 정무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의도였다는 주장이다.

▲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와 관련해 김태우 수사관이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으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보고서 수십편 보관

김 수사관이 조국 민정수석을 정점으로 하는 지휘계통에 보고한 문건 목록 속에는 민간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찰 증거가 널려 있다.

김 수사관은 상급자가 지시도 하지 않고 읽어 보지도 않는 보고서 수십 편을 보관용으로 작성해서 보관해 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조 수석 산하 민정수석실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만 낭비하는 김 수사관을 1년 반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김 수사관 문건이 파장을 빚자 청와대는 언론이 '6급' 공무원 분탕질에 놀아난다고 했다. 그런데 중앙 부처가 그 '6급' 한마디에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쓰라고 하고, 전직들의 출마 동향까지 조사해 넘겼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혹 투성이다.

환경부에서만 특정 성향 인사들을 공직에서 배제하거나 정치 성향을 파악한 리스트를 작성했겠느냐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김 수사관은 "특감반장이 (출신 등이 적힌) 리스트를 보면서 특감반원들에게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환경부는 중앙 부처 중 거느린 공공기관이 적은 편이다. 정권 입장에서 무더기 낙하산을 투하할 알짜 부처들은 따로 있다.

박근혜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1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민주당 대표는 "대역 죄인들에 대해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고도 했다. 지난달에는 이해찬 대표가 "저 사람들(지난 정부 인사)의 행위가 얼마나 반(反)헌법적인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자신들 블랙리스트가 드러나자 '파렴치한 범죄자의 일방적 폭로'라고 하고 있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를 덮으려 할 테지만 언젠가는 모두 드러날 것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환경부 문건 파장

이번 사태를 청와대와 정부 기관, 수사 당국에서는 김태우 수사관의 개인적 일탈로 국한하려는 데 반해, 김 수사관은 청와대 감찰 라인의 지시와 보고는 물론 다른 감찰반원들의 참여까지 증언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진통이 필요하겠지만, 정국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않을 전망이다.

환경부는 "문건의 윗선 보고는 없었다"고 했다. 야당이 제기하는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김 수사관 개인 일탈로 몰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제시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동향’ 문건에 대해 환경부는 처음에는 작성 사실을 부인하다가, 김 수사관의 요청으로 감사담당관실에서 작성했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환경부는 김 수사관이 지난 1월 중순 환경부 및 산하기관의 현재 동향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해 다른 2건의 문건과 함께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 제공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문건의 내용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부처 공공기관 임원의 임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를 무시하고 인사에 직접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문건에 "한국환경공단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동요나 반발 없이 사퇴 등 진행 중” “새누리당 서울시의원 출신”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 본부장 임명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나” 등 동향까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당은, 환경부가 올해 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 문건을 보고하면서 ‘사표를 잘 받아내고 있다. 선거 캠프에 있던 분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다’고 했다는 주장도 했다.

김 수사관 비위의혹과 징계논란

김 수사관의 개인 비위의혹이 관심의 표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김 수사관 비위 의혹은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특감반 활동을 둘러싼 진실 규명은 이제 본격화한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지게 됐다.

민간업자로부터 골프와 향응 접대, 건설업자 뇌물공여 수사 부당 개입 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혜성 임용 시도 등 청와대의 징계 요청 사유는 대부분 사실로 판단됐다.

과기정통부 임용 시도는 장관 등에게 감찰 실무 전문가 채용 필요성을 제시한 뒤 사무관 자리를 만들어 옮겨 가려 한 것이었고, 지난해 5월 건설업자에게 청와대 특감반 파견을 위한 인사청탁을 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고위공직자 비리와 부패 감찰 권한을 악용해 사익을 취한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잇단 폭로도 그만큼 정당성을 의심받게 됐다. 특감반에서의 비위가 적발돼 원대복귀 조치를 받자 구명을 위해 무리하게 폭로를 이어 갔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감찰본부는 김 수사관의 비위가 중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해임 처분을 대검 징계위원회에 요청했다. 김 수사관이 특감반원 재직 당시의 감찰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를 들어 공무상 비밀유지의무 위반과 민간업자에게서 받은 부적절한 골프 향응 등을 징계 사유로 제시했다. 예컨대 그가 검찰에 복귀한 뒤 ‘우윤근 주(駐)러시아 대사의 채용청탁 명목 1000만원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린 것은 대통령비서실 소유 정보를 무단 반출한 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김 수사관의 최종 징계수위는 그가 소속된 서울중앙지검이나 서울고검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감찰본부가 당초 예상과 달리 징계만 요청하고 수사를 의뢰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청와대의 고발로 비밀누설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파면까지 가능한 중징계 사안을 다루면서 다른 혐의들을 거론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구설수만 증폭시킬 소지가 크다.

감찰결과를 보면 김 수사관의 비위는 중징계가 마땅할 정도로 매우 부적절한 처신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수사관은 업자와 골프를 친 것은 접대가 아닌 정보활동의 일환이었고, 중앙부처 사무관직 신설 유도나 지인의 뇌물사건 문의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결과가 사실이 아니어서 정작 억울하다면 1차적으로 징계위에서 사실관계를 다투면 되고, 이후엔 행정소송도 가능하다. 반대로 사실이라면 중징계에 마땅히 승복해야 한다.

국회, 정치공방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해를 넘기고 말았다.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출석한 가운데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렸지만,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채 정치 공방만 벌이다 막을 내렸다. 일방적 공격과 상투적 방어를 주고받는 설전은 진실을 가릴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전해철 수석 이후 12년 만의 일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연계한 야당 요구를 문재인 대통령이 수용해 성사됐다. 그러나 여야 정치공방만 난무했을 뿐 의혹 규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마침 터진 정부의 KT&G 등 민간 기업 인사개입 논란도 있어 국회 운영위는 청문회를 방불케 했고,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입증하려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목소리는 컸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비위 행위자의 일탈’이라는 논리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 정권은 무차별하게 민간인을 사찰한 양두구육 정권으로 위선이 드러났다”고 몰아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에맞서 “비리 혐의자 김태우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면서 엄호하기에 바빴다.

이른바 ‘저격수’들을 투입한 한국당의 공세는 은행장 등 민간인 사찰, 우윤근 주러시아대사 등 여권인사 첩보 묵살, 공공기관 임원 블랙리스트 작성, 김 수사관 특감반원 채용 등 4대 의혹에 집중됐다. 특히 민간인 사찰 및 첩보 묵살과 관련해 민정수석실 지휘계통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또 임 실장 등은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에 공세가 집중됐다. 적폐청산을 내세운 정부에서 국가권력 타락과 민주주의 파괴를 일삼는 신적폐가 드러났다는 주장도 했다.

청와대 책임과 검찰수사 방향

김 수사관의 ‘일탈’을 방치하고 막지 못한 것은 다름아닌 청와대다. 이번 감찰에서 드러난 김 수사관의 특감반 파견 인사 청탁 경위도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규명이다. 김 수사관 주장대로 청와대 윗선에서 민간 영역에 대한 첩보활동을 지시했는지, 있었다면 결과물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등이 명확하게 규명돼야 할 부문이다.

차제에 청와대 비서실의 전면 개편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민정수석 등 핵심 참모들에 대한 전면 쇄신으로 청와대의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검찰의 공명정대한 수사여부가 역시 관건이다.

대검 특별감찰본부가 김 수사관에 대해 제기된 특감반 근무 당시 4가지 비위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며 중징계를 요청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특감반의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불법 사찰이 실제 진행됐는지, 상부의 지시가 있었는지, 수집된 정보들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섬으로써 야당이 고발한 민간인사찰 의혹 수사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방객 민원실에서 관련서류를 건네받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압수수색과는 거리가 멀다. 압수수색을 반부패비서관실과 특별감찰반만 하고 정작 지휘부라 할 수 있는 민정수석실과 조국 민정수석의 휴대폰은 대상에서 뺀 것도 수사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검찰은 강제수사로라도 환경부 문건의 실체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나아가 야당 주장대로 다른 부처도 공공기관장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했는가를 실태 조사라도 해야 한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정치 사회적 파장은 악화일로로 갈 수 밖에 없다.

의혹 덮으려다 더 큰 참사 교훈

지난 정권의 교훈도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 당시 덮어두고 지나갔던 그 일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 결국 불거졌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 자신들에 대한 의혹 제기에는 "정치 공세"라고 한다. 조 수석이 김 수사관이 꾸며내고 야당과 언론이 부풀렸다고 주장하는 이번 의혹도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정권 사례는 교훈을 남긴다.

2008년 7월부터 3년간 이명박정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치권, 시민단체, 문화계, 금융계 인사 등 사회 각계를 망라하고 민간인을 사찰했다. 사찰의 목적은 단순한 사회동향 파악보다는 탄압, 보복 등 정치적 이유에 맞춰져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사찰공작을 21세기 대명천지에 버젓이 기획하고 자행한 것이다.

MB정권 5년은 총체적 사찰공화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원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사찰과 비난 공격을 퍼부었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쓰레기 수준의 여론조작을 일삼았고, 공무원 사정기관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의 뒤를 캐고 인생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뿌리째 뒤흔든 명백한 헌정 유린 행위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광범위하게 진행된 불법행위는, 자고 일어나면 또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곤 했다. 이 역시 모두 한때 측근으로 불렸던 내부자들에 의해 폭로되었다. 국회의원·서울시장 시절을 거쳐 15년간 이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김희중 전 부속실장의 경우 검찰에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MB의 비리를 술술 진술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민간기업의 인사에 정부가 수집·관리하는 인사파일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황당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정부 인사자료를 민간에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사의 중대한 침해라는 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명분만 좋으면 개인 사생활과 민간의 자율성 등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보호·존중해야 할 제1 가치가 훼손돼도 무방하다는 식은 한마디로 ‘전체주의적 발상’이었다.

당시 노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앙인사위원회가 ‘국가 인재 데이터베이스’로 관리 중인 8만7000여명, 여기에 청와대와 국가정보기관 등이 정권의 코드에 따라 분류한 엄청난 숫자의 인사파일을 민간에 넘길 경우 심각한 사회적 후유증은 불가피했다.

전 분야에 걸쳐 노무현 정권의 코드에 따른 ‘지배세력의 교체’가 그대로 실현될 수 있었다. 노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인사들의 사회 진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살생부’로 악용될 여지 또한 다분했다. 이는 당시 ‘신판(新版) 블랙리스트’로 불렸다. 그것은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권리 침해 차원을 훨씬 넘어서 민주주의 대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악습과 적폐를 결코 되풀이해선 안된다.   

집권 3년차 지난 정권 전철 밟지 말아야

민간인 사찰은 그야말로 적폐다.

청와대는 지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조 수석 등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진상 규명을 위한 철저한 검찰 수사도 뒤따라야 한다.

검찰 공정성도 믿을 수 없는 만큼 국회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상임위 차원의 긴급 청문회와 국정조사는 물론 특별검사도 회피할 이유가 없다.

환경부 사례를 보면 다른 정부기관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을 개연성이 크다. 대검 감찰본부가 김 수사관 비위가 중징계 사유라며 해임을 요청한 것도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감찰 결과처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도 신속하게 수사해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이제 문재인 정권은 곧 집권 3년차로 접어든다. 고꾸라진 경제를 살리고 챙겨야 할 민생도 산더미다. 제기된 의혹을 비켜가려 해선 안된다. 철저히 조사하고 규명하며 정면으로 부딪쳐 털어낼 것은 털어내야 국정 운영의 동력도 마련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문 정권의 '뜨거운 감자'다. 의혹을 대충 덮으려다 더 큰 참사를 빚었던 지난 정부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사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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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삿 2019-01-05 14:01:25
적폐 잔당이 왜 난리냐?
즈그들 편 졸개들이 불이익 받는다고 땡깡이나?
적폐 두목이 둘이나 줄줄이 잽혀 갔으면
적폐 잔당들도 정리되는 게 당연하지.

적폐 잔당이 블랙리스트라 난리를 피운다는 건
블랙리스트 당사자가 즈그들 편이라는 의미이고,
두목들이 역적질하다가 잽혀갔으니
그 나부랭이들도 역적 졸개에 부역자렸다.

적폐청산은 적폐 잔당까지 청소해야 완성된다.
정치조폭 리스트는 범죄자 리스트다.
시다바리도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