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송의 치욕과 정경두 논란
[역사로 보는 정치] 송의 치욕과 정경두 논란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1.0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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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패자에서 역대급 호구로 전락한 송의 전략적 실패를 잊지 말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금나라의 팽창이 담긴 역사적 유적인 중국 조어대(좌)와 정경두 국방부장관(우) 사진제공=뉴시스

중국 역사상 북방 민족의 침략에 가장 시달렸던 왕조는 송나라였다. 송은 당 제국이 멸망한 이후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건국한 한족의 나라였다.

송의 건국자는 조광윤이다. 그는 절도사 출신이었다. 절도사는 지방의 군권을 가진 실력자로 5대 10국의 혼란기,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선 군벌이다.

조광윤은 자신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자신과 같은 절도사의 발호는 즉 송의 멸망이라고 생각했고, 절도사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문치주의로 대표되는 황제권 강화만이 자신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과거에서 황제가 관리 선발 최종 단계를 주관하는 ‘전시’제도를 전격 도입해 황제권 강화에 나섰다.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는 인물 대신 군주의 입 맛에 맞는 권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주로 등용됐다.

황제권 강화의 대가는 가혹했다.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장군다운 장군이 없는데 군대가 제대로 훈련될 일이 없었다. 북방의 거란족과 여진족이 나라를 세우며 송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거란족은 야율아보기라는 영웅이 나와 거란족을 통합해 북방의 강국 발해를 멸망시켰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이 건국한 우리 민족의 나라였지만 거란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요의 군사력 팽창은 거침이 없었다. 만리장성 이남의 연운 16주를 차지하며 송을 군사적으로 압박했다. 군대다운 군대가 없던 송은 요의 압박에 ‘전연의 맹약’을 맺는 치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송은 전연의 맹약으로 매년 막대한 양의 비단과 은을 요에 세폐로 바치며 국가의 운명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건국한 서하가 우세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송을 압박해 막대한 세폐를 뜯어갔다. 진과 당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제국을 구가했던 한족으로선 수용할 수 없는 치욕이었지만 국력의 약화를 자초한 탓을 누구한테 할 수 있단 말인가?

여진도 아골타라는 영웅이 나와 금을 건국했다. 송은 요라는 여우를 내쫓기 위해 금이라는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전략적 실수를 저지른다.

송은 금과 손잡고 요를 정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금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요가 송으로부터 받았던 막대한 세폐와 더불어 풍요로운 중원 대륙마저 노렸다. 결국 송은 수도 카이펑을 빼앗기고 항저우로 쫓겨나 남송을 건국했다. 아시아를 호령했던 중원의 주인이 역대급 '호구'로 전락하는 수모는 덤이 됐다.

최근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발언이 논란이다.정 장관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사과 문제에 대해 “일부 우리가 이해를 하면서 미래를 위해 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발언했다. 북한의 사과가 없어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이에 유족들은 즉각 반발했고, 보수 야권은 정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다.

군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집단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유화정책을 펼치면 군대는 ‘휴전’이라는 현실에 입각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맞서라는 말이 아니다. 군 본연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정경두 장관은 송이 황제권 강화를 위한 군사력 약화로 중원의 패자에서 역대급 호구로 전락하게 만든 문치주의 정책이 초래한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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