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전대] ‘서울 도련님’ 오세훈 대 ‘거창 촌놈’ 김태호, 흥행 파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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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전대] ‘서울 도련님’ 오세훈 대 ‘거창 촌놈’ 김태호, 흥행 파란불?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1.11 17:5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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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 길 걸어온 두 50대 보수 정치인들의 만남…한국당 전대 관심 커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자유한국당 차기 전당대회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대표 후보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상반된 정치 역정이 주목받고 있다. ⓒ시사오늘 김승종

자유한국당 차기 전당대회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대표 후보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상반된 정치 역정이 주목받고 있다. 각각 1961년·1962년생인 두 사람은 훤칠한 키와 호감형 외모, ‘최연소’ 타이틀 등 공통점이 많지만, 걸어온 길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서울 도련님’ 오 전 시장과 ‘거창 촌놈’ 김 전 지사의 대결에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멋진 서울 도련님’ 오세훈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처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전형적인 ‘서울 도련님’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중동중학교와 대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일조권 소송’으로 일약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일조권 소송이란 1993년 인천 경남아파트 일부 세대가 일조권이 침해됐다며 단체 행동에 나서자, 오세훈 변호사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낸 사건이다. 이 일을 계기로 오 전 시장은 MBC <오 변호사 배 변호사> MC로 발탁되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그 후 방송 능력을 인정받은 오 전 시장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갑론을박 동서남북>, <오늘과 내일>, <뉴스 따라잡기> 등을 진행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오 전 시장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일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남성복 브랜드와 정수기 광고 모델을 맡기도 했으며, 1996년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혼하고 싶은 남성’ 순위에서는 배용준·박상원·한석규·유인촌·한선교에 이어 6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 조사 7위가 이병헌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 전 시장의 높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오 전 시장은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 강남구을 선거구에 출마,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오 전 시장의 ‘스타성’은 국회에서도 발휘돼, 초선 의원으로서 이른바 ‘오세훈법’을 통과시키며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이후 오 전 시장은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나 있다가,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서울시장 당선 당시 오 전 시장의 나이는 만45세로 역대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이었으며,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역사상 최초의 연임 서울시장 타이틀도 갖게 된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오 전 시장의 정치 인생은 2011년 무상급식 찬반투표 이후 크게 요동친다.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변호사와 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가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에게 패하며 낙선했다. 당시 오 전 시장은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던 박진 전 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따냈는데, 이로 인해 ‘당의 승리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낙선 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바른정당에 참여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그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을 앞두고 탈당한 뒤 TV조선 <아내의 맛>을 통해 다시 방송에 복귀, 부드러우면서도 가정적인 이미지로 반등을 꾀했다. 바닥부터 훑는 전통적 방식보다는 방송 등을 활용하는 ‘공중전’에 능한 오 전 시장의 스타일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성공한 거창 촌놈’ 김태호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정반대다. 김 전 지사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나 가조면에서 자랐다. 김 전 지사는 가조중학교와 거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 서울대학교 농업교육과에 진학하기 전까지 인구 6만 명이 겨우 넘는 작은 도시 거창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방송 출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인지도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한 오 전 시장과 달리, 김 전 지사는 밑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차고 올라온 케이스다. 김 전 지사는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김동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신한국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지냈다.

그 후 고향인 거창으로 내려간 그는 1998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되며 처음으로 선출직을 경험했고, 2002년에는 거창군수로 당선됐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4년에는 보궐선거를 통해 경남도지사 자리에 올랐다. 2002년 거창군수 당선 당시 나이는 40세, 도지사 때 42세. 둘 모두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최연소 광역자치단체장 기록이다.

2006년 경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한 그는, 3선 도전을 포기하고 중앙 정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10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불과 12년 만에 도의원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뛰어오른 것. ‘형님이 800명, 아버님이 1000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고난 친화력을 지닌 김 전 지사의 저력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김 전 지사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만남에 대한 거짓말 의혹, 경남도지사 재임 당시 부인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 등으로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국무총리 후보자 자리에서 낙마(落馬) 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중앙 정치 데뷔’를 노렸던 김 전 총리는 ‘양파 총리’라는 오명만 쓰고 자진 사퇴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김해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제19대 총선에서 김경수 현 경남도지사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0대 총선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모두가 거절하는’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서 선전, 당심(黨心)을 사로잡았다. ‘공중전’을 통한 이미지 개선이 아닌, 직접 부딪치면서 ‘입소문’으로 평가를 바꾼 것이다.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당대표 자리를 두고 맞붙을 공산이 커지자, 한국당 전대 흥행에도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사법시험 출신에 교수를 하다가 방송을 타면서 정치권에 안착한 케이스고,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도의원에서 시작해서 이리저리 치고받으면서 커 온 케이스다. 지난 지선 때도 오 전 시장은 조용히 지나갔는데 김 전 지사는 일단 나서서 부딪치지 않았나”라며 “이렇게 정반대 스타일의 두 사람이 치고 나오면서, 전대 흥행에도 불이 좀 붙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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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환 2019-01-12 10:04:35
어디서 이런 미친짓 하면서 ... 행동 처신 똑바로 나이살 먹었으면 선거 활동하나 그래서 이런 미친놈들과 어울리나..

최정환 2019-01-12 10:00:54
거창 사람이면... 이름 팔아 처먹지 말고 거창 사람처럼.., 김해도 3년간 돌아 봤다 홍카콜라고 지랄 하지 말고 한번 ... 나도 김해가자말자 다 들었다. 까불지 말고 주위를 돌아봐

최정환 2019-01-12 09:57:30
너 조심해라.. 내가 단단히 벼루고 있다.너 이름팔아 먹고 거창에 돌아 다니는 쓰레기 다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