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북한군=敵’ 삭제 국방백서, 안보현실 외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북한군=敵’ 삭제 국방백서, 안보현실 외면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1.19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방태세 치명적 이완 우려
北核 강화전략 계속, 한국만 위협
駐日미군, 北=핵보유선언국 경고
우리의 적…소모적 이념논쟁 야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된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적(敵)’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유지돼온 ‘북한은 적’ 개념이 8년 만에 사라졌다.

북의 상시적 군사 위협과 도발, 특히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이 지속되는 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했던 2년 전과도 확연히 다르다.

국방백서는 안보 상황을 평가하고 대내외에 국방정책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2년에 한 번 발간한다. 아직도 북한의 핵위협 등이 엄연한 상황에서 이번 ‘북한은 적’ 삭제는 군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핵무기와 120만명의 정규군을 보유한 북한이 아니면 누가 우리의 적이란 것인지 알수가 없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우리만 적 개념을 없애면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꼴이 된다.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것은 김영삼정부 때인 1995년이며,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삭제됐다가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적이란 표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것이 8년 만에 또 폐기된 것이다. 북한 핵(核) 위협이 고착화해 가는 상황인데도 문재인 정부는 ‘안보 무장해제’에 더 급급해하는 모습이다.

이번 백서는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도입한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응징보복(KMPR)’이라는 용어도 빠지고 대신 ‘전략적 타격체계’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용어를 삭제하면서 국방부의 ‘북한 비위 맞추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호한 적 개념…안보의식 혼미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당면한 과제지만, 현존하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력과 핵 등 대량살상무기는 엄연한 핵심 위협이다.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으로 대한민국을 직접 위협하는 정권으로는 아직도 북한이 유일하다. 분명하게 엄존하는 적조차 모호하게 흐려서는 국방의 목표부터 흔들리게 마련이다.

국방백서 ‘적’ 표현 명기는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반영해 왔다.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협박 발언으로 ‘주적(주된 적)’ 개념이 등장했으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대체됐다. 그러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뒤 ‘적’이란 표현이 재등장해 지금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 때 펴낸 2016년 국방백서도 북한을 적이라고 규정했다.

아직도 남북 대치국면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 언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국군의 전력이 북한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모호한 적 개념과 가상의 적 소멸로 안보의식까지 흐릿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 고려 국방부 자세

새 백서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면서도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만 명시했다.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우리에 대한 위협·침해 세력을 포괄적으로 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적’ 표현 삭제는 지난해 판문점 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등 남북관계의 급속한 변화를 반영한 조치로 풀이되기는 한다. 그러나, 결코 문제가 적질 않다.

주일 미군은 최근 북한이 핵폭탄을 15개 이상 확보했다고 했는데 우리 국방백서는 북의 핵폭탄이 아닌 핵물질 보유량만, 그것도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분칠을 했다.

이번 백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과 고농축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핵무기 소형화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라고만 했다. 북한 핵능력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표현이다. 이런 자세의 국방부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결연히 대비할지는 실로 의문이다.

'적 표현 삭제'에 대해 국방부는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 환경 조성’을 이유로 들었다.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기반을 마련한 것을 반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평화를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방부가 이런 정치적 고려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안보의식 강화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마땅하다.

보수진영, '시기상조' 반발

물론, 국방부도 군의 경계완화 우려를 의식해 이번 백서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우리 군은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새로 넣기는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와 특수전 능력이 고도화했다고 분석하면서, 적재적소 전력 배치로 이런 위협에 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 체결 등을 새로 수록하고, 대신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이로인해,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삭제가 시기상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적대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현실에서 적대상태가 존재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는 비판이다.

이번 백서는 '주적개념'의 삭제외에도 문제가 적지않다.

주일미군을 후방지원해 한국을 도와줘야 할 일본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백서는 ‘일본-중국’의 기존 서술 순서를 뒤바꿨다. 지난 백서엔 일본과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번엔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이웃”으로만 규정했다. 아무리 양국 사이에 역사 마찰이 있어도 안보 차원에선 일본이 우방이다.

정권성향 따라 '적개념' 변화

'적(敵) 표기'가 정권 성향에 따라 빠지고 들어간다면 실로 큰 문제다.

지난 노무현정부가 주적 표현을 '직접적 군사 위협'으로 바꾼 2004년은 한 해 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제2차 북핵 위기가 진행 중이던 시점이었다. 북의 안보 위협은 엄중해졌는데 정권의 대북관이 바뀌면서 백서도 덩달아 바뀌었다.

국방백서는 1988년부터 ‘북한=적’을 명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현존하는 위협’ ‘직접적 군사위협’ 등으로 바뀌면서 국민적 비판과 우려를 자초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원래 표현으로 되살린 바 있다. 이를 문 정부가 이번에 완전히 삭제해 ‘적’ 개념을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더 형해화한 것은 군의 대북 대응력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핵심 안보현안인 북핵과 관련,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는 수준의 ‘반쪽 비핵화’가 합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남겨둔 핵무기로 우리를 상시 위협할 수 있다. 정치적 시각에 따라 국방백서의 '적개념'이 흔들려서는 결코 안된다.

北 핵·ICBM 확대 주타깃은 한국

북한의 안보위협은 실로 여전하다. 주일 미군사령부는 최근 북한이 핵무기를 1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북한을 중국·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개 핵보유 선언 국가로 공식 분류했다.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주한(駐韓)미군의 부재(不在)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한다.

대한민국 안보가 지극히 위험하고 엄연한 현실에 직면했음을 알린다. 미국을 상대로 핵폐기가 아니라 핵군축 협상을 하려는 김정은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불길한 해석도 나온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거한 북핵의 주 타깃은 역시 한국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추가 핵 실험과 ICBM 시험 발사 중단을 선언했을 뿐 기존 핵무기 및 생산시설 폐기에 있어 어떤 진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이 작년 비핵화 의지를 밝힌 이후 핵·ICBM 생산을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핵무기 실험 중단 이후 로켓과 핵탄두를 빠르게 대량생산해 왔고, 핵폭탄 6개 분량의 핵분열 물질을 확보했으며, 이에 따라 북한 핵폭탄 총 규모가 20개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통신은 "김정은의 전략은 핵보유국 지위와 대북 제재 해제를 얻는 데 필요한 외교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그 사이 조용하게 핵무기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NBC방송도 현재 속도라면 북한은 2020년에 핵탄두 100개를 보유할 수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이 기만 전략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핵 문제 언급을 피해가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핵무기 생산 중단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했지만, 허언으로 볼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안보상황 급변 징후

최근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은 일본의 한국을 향한 반응이 민감해지는 등 크게 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2018년 방위백서에서 북한을 “이전에는 없던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으로 꼽았다. 대한민국 안보에 절체절명의 과제인 북핵 폐기가 더 요원해지고 있음을 거듭 확인시켰다. 남북관계 개선 조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안보환경의 근본적 개선으로 연결될 징후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분석한 북한군 규모도 128만명으로 우리 군의 2배에 달하고, 특수작전군을 별도로 편성하는 등 특수전 능력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 미국의 비핵화 접근 방식도 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자칫 국제사회가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적어도 안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평화와 화합보다 대립과 갈등의 소지가 더 커졌다.

지난해 북과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북핵 전체를 '1~2년 이내'에 폐기하겠다며 자신만만했던 트럼프 백악관 분위기는 최근 점점 수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이 버티기로 나오자 "서두르지 않겠다"며 시한을 포기하더니, 최근에는 "미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며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만 없애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흐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한의 김영철은 2차 미·북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며칠 후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즉흥적으로 발표했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속편을 조만간 보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ICBM 포기 대가로 '주한 미군'이나 '대북 제재'를 내주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칫하면 한국민만 고스란히 북핵 위협에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할 위기다.
결국 국방부의 이번 백서를 통한 안보상황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 위협이 해소됐다는 증거는 아직도 찾기 힘들다. 되레 북한 비핵화 공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징후들만 속속 드러나는 판국이기에 더욱 그렇다.

▲ 지난해 12월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에서 진행된 남북 시범철수 GP 상호검증을 하기 위해 북측 안내인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현장검증반 윤명식(오른쪽) 육군 대령. ⓒ뉴시스=국방부 제공.

국가안위 근본 최악에 대비를

기본적으로 북한은 현실적인 위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류·협력의 대상이며, 나아가 통일을 이뤄야 하는 상대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다. 현재의 안보환경과 현실이 역시 문제다. '북핵 인질'이 될지도 모르는 판에 우리만 적 표기를 삭제해선 안된다. 실질적인 안보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야기해서는 결코 안된다. 치명적인 국방 태세 이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군은 ‘정치적 이해’보다는 적과 동맹에 대한 단호한 인식은 물론 확고한 유사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구체적인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문 정부는 북한만 바라보다 동맹도 잃고, 국가 안위의 근본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장병들의 안보인식을 흐트러뜨리고 북한에 그릇된 신호를 줄 목적이 아니라면, ‘북한은 적’ 표현 삭제는 철회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군사적 신뢰 조성이 완전히 이뤄진 뒤에 삭제해도 늦지 않다. 안보는 최선을 지향하되 반드시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