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손 편지 단상(斷想)
[사색의 窓] 손 편지 단상(斷想)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1.2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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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요즘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보편화돼 누구든지 빠르고 편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문명의 이기가 주는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 소통의 문화가 많이 발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자재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밤을 새워 편지지에 마음을 담던 불편함은 이제 겪지 않아도 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편리함 뒤에 묻어나는 공허함과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는 한편으로 집 밥이 그리워지는 격이라고나 할까.    

▲ 고마움이나 그리움의 정서를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수단이 편지다. 차마 말로 못 다한 얘기도 편지를 통하면 가능해진다. 편지지는 글쓴이의 마음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 인터넷커뮤니티

늦은 봄 어느 날, 편지지에 곱게 쓴 편지 한 통을 받고는 살포시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보낸 것인데, 지금껏 자신을 키워준 데에 대한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마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게 한 것 같았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추억이 되었다.

편지 내용도 감동이려니와 눈길을 잡아당기는 것은 편지에 담은 마음 씀씀이였다. 노란 단풍잎 하나, 정성어린 손길이 묻어나고 있었다. 수백 마디 무언의 말이 잔잔한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고마움이나 그리움의 정서를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수단이 편지다. 차마 말로 못 다한 얘기도 편지를 통하면 가능해진다. 편지지 여백에 마음의 무늬를 그려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편지지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편지지는 글쓴이의 마음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판소리 <춘향가>를 보면 춘향이 이몽룡에게 쓴 편지가 눈길을 끈다. 변 사또 때문에 겪는 춘향의 고초가 편지의 주된 내용이다. 수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춘향은 옥에 갇혀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연인 이몽룡에 대한 그리움과 위급함을 알리려는 마음의 표현은 눈물 자국으로는 부족했으리라.

춘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보다 강력한 메시지 전달이었다. 춘향은 편지 말미에 혈서(血書)로 ‘아이고’라고 쓰게 된다. 춘향의 피 묻은 편지가 주는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편지 내용을 본 어사또 이몽룡은 춘향을 구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제 편지로 감동 받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이 돼 버렸다. 과학기계 문명을 통한 이메일 편지는 왠지 모르게 인간적인 정감이 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슷비슷한 글자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들이란 특별한 게 없겠기 때문이다. 손 편지의 경우엔 편지지 여백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편지지를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 한 통의 편지가 갖는 무게감은 달라진다.

판에 박힌 듯 무미건조하게 쏟아낸 ‘기계 글’을 읽고 사랑의 감정을 품을 연인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메일이 흔한 시대엔 감성이 깃든 손 편지가 효과적일 수 있다. 이메일에는 반응이 없어도, 자필로 쓴 편지엔 눈길이 가는 법이다. 봄이면 진달래 꽃잎 하나, 가을이면 단풍잎 하나쯤 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사람을 움직인다.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고 우편으로 보내보자.

머지않아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때 느낌 있는 편지를 써 보리라. 춘향의 절박함보다는 딸아이의 순수함이 빛나는 그런 편지를 써야겠다. 부모님 혹은 인생 선배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생각해 본다.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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