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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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1.04.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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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를 행사했는데 죄가 된다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안철현 변호사)

한쪽은 내 권리를 행사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상대방은 그 행위는 범죄가 되니 처벌돼야 한다면서 다투는 예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를테면 아파트 공사를 마쳤는데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건설회사가 공사대금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원을 파견했다.

그래서 공고문 부착과 열쇠장치 등을 통해 그 아파트 10채를 먼저 점유했다. 이른바 유치권을 행사했다는 말이다(예를 들어 구두를 수선해 줬는데, 수선비를 주지 않으면 구두가 내 소유의 물건이 아니더라도 내 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를 점유하고 돌려주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직원들이 방심한 틈을 이용해 그 아파트 소유자가 임의로 아파트를 다시 탈환했다. 그러자 이번엔 건설회사의 직원이 다시는 다른 사람이 탈환하지 못하도록 아애 출입문 외부 6곳에 용접을 해버렸다. 건설회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민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유치권을 행사한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민법과 형법에서는 자력구제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니 어느 모로 보나 그럴듯한 주장이다. 반면 아파트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건설회사의 직원이 자신 소유의 재물에 대해 효용을 해하였으니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면서 처벌을 원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놓고는 뒤통수를 치겠다는 말인가? 사실 이런 문제는 법률전문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실제 사례에서도 항소심에서는 재물손괴죄에 관해서 무죄가 선고됐다가 대법원에서는 범죄를 부정할 수 있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봐야 한다. 먼저 형법에서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법에서는 점유자가 그 점유를 부정히 침탈 또는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자력으로써 이를 방위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형법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둬 법정절차에 의해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력구제권을 인정해 벌하지 않는다.
 
건설회사 직원의 행위 자체는 재물을 손괴한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면 벌하지 않으므로 먼저 그 행위가 과연 사회상규에 반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의 자력구제권을 행사한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①건설회사에서 용접해 버린 행위가 동기나 목적이 정당한지 ②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한지 ③보호돼야 하는 이익과 그로 말미암아 침해되는 이익 사이에 균형이 맞는지 ④그 행위 외에는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여기에서 유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용접한 행위가 그 수단과 방법이 상당한지와 과연 그것이 긴급하고 불가피한 수단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유치권자가 행사하는 점유가 침탈된 경우 자력구제권을 활용해 침탈 즉시 가해자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물건을 탈환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민법에서 정하는 침탈된 물건의 반환을 구하는 점유회수청구를 소송으로 구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침탈이 종료된 다음에야 출입문을 용접해버린 것은 재물손괴죄라는 범죄를 부정할 수 있는 정당행위로까지 인정될 수는 없게 된다. 굳이 법률이 아니더라도 일반상식에 의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유치권행사를 기화로 행사되는 도를 넘는 실력행사라고 볼 수 있다.

유치권이라는 권리도 공사를 마치고 소유자들이 점유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점유하거나 공사를 통해서 점유하고 있는 상태를 이용해 자신들의 채권확보를 위해 행사하는 것이지 그 한도를 넘어 허용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침탈됐을 때 즉시 이를 배제할 수는 있어도 이미 침탈된 이후에 용접해 버리는 방법으로 탈환하는 행위는 사회상규에도 위반되고 법이 허용하는 자력구제권으로 행사할 수 있는 범위도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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