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텔링] YS가 하나회를 숙청하지 않았더라면?
[정치텔링] YS가 하나회를 숙청하지 않았더라면?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2.17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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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의 디딤돌이 된 정치개혁의 롤모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군부의 정치개입을 전격 차단한 하나회 숙청은 정치 개혁의 백미로 손꼽힌다. 사진제공=뉴시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개혁의 롤모델로 상징되는 정치인이다. YS는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개혁을 실행하려면 집권 초반부터 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줬다. 역대 정권마다 개혁을 입에 달았지만 YS만큼 전광석화와 같은 실질적인 개혁을 실행한 정권은 없었다. 특히 군부의 정치개입을 전격 차단한 하나회 숙청은 정치 개혁의 백미로 손꼽힌다.

#1 진짜 호랑이를 잡은 하나회 숙청

YS는 3당 합당을 통해 평생의 꿈인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지난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2위에 머물렀다. 문제는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 결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게 밀리는 3위를 차지해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YS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심을 하던 중 노태우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군부 정권인 민정당과 유신 본당인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합의한다.

합당 직후, 당시 야권인 평화민주당과 재야 세력은 ‘3당 야합’이라며 YS의 선택을 강력히  비판했다. 반면 YS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로 맞받아쳤다.

3당 합당의 결과물인 민자당에서도 고난 그 자체였다. 민자당 최대 계파인 민정계의 집요한 견제가 집중됐다. 하지만 동물적인 정치적 감각을 가진 YS는 특유의 정면돌파로 오히려 김윤환 등 민정계 중진들을 포섭하고,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의 지원을 얻어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14대 대선은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과의 최후의 대결이었다. 승자는 YS였다. YS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군부정권과 타협할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곧바로 신군부의 심장인 하나회를 도려내는 초특급 개혁에 나섰다.

YS는 집권 당시 외국의 군부 타협설에 대해서 회고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르몽드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외신이나 외국 정부에서는 ‘김영삼씨가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앞으로 군과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에는 언제라도 쿠데타를 통해 정치 구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강력한 군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러한 시각은 안타깝지만 내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작업을 완결할 때까지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엄연할 현실이었다.”

YS는 ‘정치군인과 동거하거나 군을 마음대로 통수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대통령을 그만 두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군 개혁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고 밝혔다.

YS는 이러한 외국의 우려와 달리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8일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 김 총장과 서 사령관은 5~6공 정부의 최고 권력세력인 하나회의 실세들이었다. 특히 김 총장은 전두환-이종구로 이어지는 리더 중의 리더였다.

YS는 ‘5·24 숙군’을 통해 12·12 쿠데타 관련 고위 장성도 예편 조치하며 하나회 숙청을 마무리한다.

YS의 하나회 전격 숙청은 기세등등한 신군부세력의 정치개입을 전격 차단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YS가 하나회를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2 만약 하나회를 숙청하지 않았더라면?

YS가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한 정치개혁 대신 편안한 국정 운영을 위해 신군부 세력과의 타협을 선택했다면 하나회 숙청은 없었을 것이다.

YS는 하나회 숙청으로 자신의 개혁 추진에 최대 걸림돌을 제거했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나회가 일으킨 두 사건은 군정 연장의 시발점이 됐고, 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대표적인 역사의 일탈이다.

YS는 1993년 5월 13일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마침내 YS는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5·18에 대해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명예 회복’을 선언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YS의 하나회 숙청은 군부의 비토를 받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 교체의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군부가 득세했다면 15대 대선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고, 정상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을지는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합리적 추론- YS가 하나회를 숙청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상 상황을 연출했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권은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발언 파문으로 치열한 정쟁을 펼치고 있다.

만약 YS가 하나회 숙청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5·18 발언은 파문이 아닌 정당한 주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개혁은 YS처럼 정확한 대상과 시기에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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