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일제의 정한론과 북미정상회담 결렬
[역사로 보는 정치] 일제의 정한론과 북미정상회담 결렬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3.03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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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정한론의 꿈을 40년도 안 돼 실현한 일본의 야욕과 한반도 적화를 꿈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는 북한, 언제나 먹이감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사진제공=뉴시스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는 단시간에 만들어진 비극이 아니다. 일본은 1867년 대정봉환으로 700여 년에 걸친 막부정치를 종식시키고 천황체제를 확립했다.

일본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외교관계 수립을 원했다. 특히 조선은 일본을 하대했기 때문에 양국의 국교회복이 최우선 과제로 대두됐다.

일본은 1868년 왕정복고를 조선에 통보하고 양국의 국교회복을 원하는 사신을 파견했으나. 당시 집권자인 흥선대원군은 서계(외교문서)의 격식과 도서의 인각을 문제 삼아 사신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일본으로선 참을 수 없는 외교적 무례라고 생각했고,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이 대두됐다. 정한론의 주역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멋진 사무라이의 롤모델로 나온 사이고 다카모리‘다.

일본의 개화파는 조선과의 전쟁보다 국력배양을 중시해 정한론을 배제했다, 결국 사이코 다카모리는 이에 반발해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정한론은 정책 순위에서 밀려났다.

일본은 조선 정벌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 국가 체제를 갖춘 일본은 불과 8년 후, 자신들이 기획한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해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켰다.

일본은 조선의 종주국 청나라를 주적으로 삼아 집중 공략했다. 임오군란으로 잠시 주도권을 빼앗겼으나, 갑신정변으로 텐진조약을 통해 청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했다. 마침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텐진조약의 동시출병 규정을 구실삼아 조선에 출병해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청은 서태후 등 보수파의 득세로 근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대륙의 병든 돼지' 신세였고, 일본은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신흥 공업국으로 급성장했다. 결과는 청나라의 참패였다.

뜻하지 않게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을 견제했다. 고종과 민씨 정권도 친러로 돌아섰다. 일본은 속이 탔다. 청만 잡으면 조선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러시아가 조선을 탐했다. 일본에게 러시아는 나폴레옹도 실패한 너무 버거운 적이었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만주 지배를 인정할 수 없는 영국과 미국을 우군으로 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영일동맹,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러시아에 대항하는 해양동맹을 구축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육군이 만주에서 참패를 당했고, 대한해협에서 발틱함대가 무너졌다. '극동의 헌병' 일본은 전 세계를 경악시켰고, 러시아는 한반도와 만주를 빼앗겼다.

청과 러시아조차 물리친 일본은 거칠 것이 없었다. 결국 조선은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의 오랜 숙원인 정한론이 40년도 안 돼 현실된 순간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미국은 영변+@의 핵시설 등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한 반면, 북한은 추가 핵시설을 숨긴 채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결국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에 의해 북한의 추가 핵시설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북한은 한반도 적화의 야욕을 버린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수십년간 한결같이 핵 보유와 한미동맹 와해를 비롯한 기존의 입장을 포기한 적이 없다.

북한은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와 같을 수도 있다. 정한론의 꿈을 40년도 안 돼 실현한 일본의 야욕과 한반도 적화를 꿈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는 북한, 언제나 먹이감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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