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경제 수장들-책에서 정책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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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경제 수장들-책에서 정책을 보다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5.18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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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떤 책을 읽었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주변을 둘러보면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요리관련 서적을, 그림에 관심 있는 이는 예술 서적을 읽고 있다. 이상적인 사람들은 소설을 좋아하고 보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에세이를 찾을 것이다. 논리적인 사람들, 갖가지 전문서적을 주로 읽는가 하면 자기관리의 필요를 느끼는 이들은 자기개발 서적을 읽는다.

책을 분류하는 기준도 가지가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다양한 서적의 범주 속에서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자기만의 책을 선택한다. 괴테의 말처럼, 그 사람이 읽는 책이 바로 그 사람을 말해준다.

MB정권의 경제팀은 3기로 나뉜다. 2008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강만수 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던 1기 경제팀. 2009년 2월 강 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2기 윤증현 경제팀. 5?6개각을 통해 기재부 장관으로 내정,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3기 박재완 경제팀이다. 현 정부의 경제를 이끌어 왔고, 이끌어 갈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이들 모두 MB의 총애를 받는 엘리트지만 각각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고 그들의 색깔만큼이나 그들 옆에 있는 책도 개성있다.  
 
강만수 경제관이 엿보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MB정권의 시작과 함께 한국의 경제를 책임지게 된 강만수 전 지획재정부 장관. 강 전 장관은 2008년 기재부 장관 취임으로 MB와 함께 감세정책, 고환율 정책 등을 이끌어 갔다. 그는 1970년 경주세무서 총무과장을 시작으로 재무부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주미대사관 재무관,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부 차관 등을 두루 거친 경제 분야의 큰형님이었다.

▲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 ⓒ뉴시스
강 전 장관이 기재부 장관 자리에 앉을 당시 그가 직접 집필한 책은 후배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이 2005년 집필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다. 그는 6년간의 집필활동을 통해 그가 30년간 몸으로 부딪쳐 온 한국 경제를 소개했다. 부가가치세에서 IMF, 금융실명제에서 부동산실명제, 금융자율화에서 금융시장 개방까지 경제 정책 결정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체험 경제학을 기술했다.

책에는 그의 소신이 그대로 묻어났다. 재정, 금융, 세입?세출 등 한국의 경제 현장을 옮겨 다니며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답게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확고했다. 실전을 통해 나름대로의 안목과 통찰력이 생긴 것. 그러나 사회정책의 양면성을 보기 보단 자신의 주장만 내세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반대의견을 고려하는 시각이 부족했다.

이는 장관시절 그의 정책 집행 양식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를 말할 때는 ‘뚝심’, ‘고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는 ‘MB노믹스’를 위해 감세와 고환율 정책,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불도저 같은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이를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원유 및 원자재 값의 폭등, 물가 및 유류가격 상승으로 그의 정책이 과연 서민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그때그때 비난에 신경 쓰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갔다. 결국 2008년 말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이듬해 2월, 1년의 임기를 끝으로 기재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서야 했다.  

2009년 초 기재부에서 물러선 뒤 그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과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을 거쳐 현재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은행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대표로 있는 산은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 매각입찰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여전히 변함없는 그의 소신을 확인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계기로 그는 지재부 장관시절 꿈꾸던 메가뱅크(초대형 은행)의 탄생을 꿈꾸고 있다. 정계에는 그의 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일에 대한 열정이 MB와 닮은꼴이라는 평가도 있다.

<남한산성>을 통한 윤증현의 고민, ‘나라란 무엇인가’

2009년 2월 강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윤증현 장관이 경제 수장이 됐다. 당시 공직사회는 지나치게 소신대로 행동했던 강 전 장관으로 인해 화합과 소통의 필요성이 부각돼 있었다. 윤 장관은 그에 응하며 시장의 신뢰를 되찾아야 했고 무엇보다 금융위기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지난 2010년 11월 중앙일보가 발표한 ‘한국을 이끄는 24인이 읽는 책’에서 윤 장관은 김훈 작가가 쓴 <남한산성>을 꼽았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쓰인 책이다. 1963년 겨울, 청나라 용병대가 조선을 쳐들어오자 청나라에 조공을 거부하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몸을 숨긴다. 소설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간 날부터 청에게 항복하기까지 47일간 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백성들의 고통이 그려져 있다.

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쪽과,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는 무리 사이에서 저자는 평형을 지킨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그저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민중의 삶이 비쳐질 뿐이다. 선과 악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물가와 환율문제로 곤궁에 빠져있던 윤증현은 이 책을 읽으며 심도 있게 고민했을 것이다.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진정 나라를 위한 것은 어떤 것인가’ 아니, 이전부터 하던 고민에 힌트를 얻었을지 모르겠다.

강 전 장관이 시종일간 부처 간에 갈등을 앓아온 것에 비해 윤 장관은 호흡을 맞추는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협조를 구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에 있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남한산성>을 읽으며 했을 고민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강 장관의 추진력과 비교돼 힘이 다소 약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시장은 윤 장관의 신중한 자세를 신뢰했다.

그는 강 전 장관의 감세정책 및 고환율 정책을 이어갔지만 추진 방향에 있어서는 노선을 달리했다. 감세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대상도 중소기업 및 저소득층으로 집중시켰다. 환율에 있어서도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오히려 지난달에는 기업들에게 “환율 의지하지 말라”며 원화강세를 용인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G20 회의 전 “지식의 빈곤을 절실하게 느낀다”고 한탄하는 등 정책을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덕분에 윤 장관은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G20 회의의 성공적 개최라는 업적을 남겼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 지난해 G20 회의에서는 세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윤 장관이 G20 회의를 성공리에 이끌었다.

이제 윤 장관은 5·6 개각으로 취임 28개월 만에 기재부 장관직을 물러난다. 그는 1998년 재정경제부가 출범한 이후 최장수 장관으로 기록됐다. 다만 자리를 물러서며 윤 장관은 해결되지 않은 물가 문제에 대한 걱정을 비쳤다. "성장보다 물가가 어렵다. 떠나면서도 미안하다"며 물가에 대한 아쉬움으로 장관직을 내려놓는다.

박재완의 아이디어 뱅크 <미시동기와 거시행동>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MB정부의 세 번째 경제수장을 맡게 될 박재완 장관 내정자. 박 내정자는 기존 강 회장과 윤 장관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평이 있다. 강 회장과 윤 장관은 공직생활의 전부를 재무부에서 보낸 정통 재무관료이고 각각 행정고시 8회, 10회 출신으로 경제팀 내에서는 까마득한 대선배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뉴시스
이에 반해 박재완 내정자는 행정고시23회 출신으로 전 재무부에서 근무를 하긴 했지만 근무 경력은 2년에 불과하다. 그를 정통 재무관료 출신으로 분류하는 이는 없고 오히려 학자출신 혹은 정치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성균관대 교수와 17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 국정기획수석을 거쳤기 때문이다. 56세라는 젊은 나이와 함께 박 내정자의 이러한 배경은 그가 경제부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낳는다. 

여기에 고질적인 물가문제와 외환시장 구조개선 등 박 내정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 또한 만만치 않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네 달째 4%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물가를 잡는 것이 민심을 잡는 방법일 것이다. 이밖에 대기업에 편중된 성장구도를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MB정권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야 한다.

반면 박 내정자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하고 그에 대한 기대도 있다. 박 내정자는 인수위원회 시절 정부혁신 규제개혁TF팀장과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등으로 일하면서 MB정부의 감세정책과 규제완화 등의 틀을 마련한 ‘핵심 브레인’이다. 박 내정자는 MB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아 2008년 청와대 쇄신 과정에서 기존 수석 중 유일하게 살아남기도 했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지난 6일 내정 발표를 하며 박 내정자를 “당·정·청과 시민단체까지 두루 경험 한 정책 전문가로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과 대안 제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박 내정자가 핵심 브레인으로 인정받기 까지 그를 도운 책이 있다. 200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셸링 교수가 쓴 <미시동기와 거시행동>이다. 박 내정자는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박사를 취득할 당시 이 책을 접하고 그 후로는 줄곳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책에 대한 박 내정자의 애착이 관료들 사이에 소문나면서 경제부처의 필독서로 떠오르기도 했다. 

책의 저자 토머스 셸링은 게임이론의 대가다. 게임이론은 개인의 행동이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다. 셸링의 대표작 <미시동기와 거시행동>은 바로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확장시킨 게임이론의 명서다.

책은 수학적 이론을 주변의 낯익은 일상을 사례로 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왜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사고가 교통체증을 유발할까. 강연장의 청중들은 왜 앞자리에 앉지 않을까. 급변하는 패션에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사소한 생각들에서 일정 법칙을 찾아내 인종, 성, 소득 분리 등 사회적 문제를 설명하기도 한다. 또 책을 통해 개인의 작은 동기가 다른 이들의 행동과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의도치 않은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박 내정자는 이 책을 “한 페이지만 읽어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책” 이라고 표현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제 법칙을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 찾아내는 덕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평상시 발 끝으로 서 있고, 어떤 작은 충격을 계기로 예측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티핑포인트’이론이 박 내정자가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경제 흐름은 물론 정계의 흐름, 시민들의 움직임도 티핑포인트 이론으로 해석한다. 

앞으로 기재부 장관의 자리에서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거시지표와 체감경기 간극을 줄이겠다는 박 내정자의 청사진에도 이 책에서 얻은 수학적, 심리적 통찰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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