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망언’ 징계, 한국당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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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망언’ 징계, 한국당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3.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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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YS도 박근혜도 “5·18은 민주화운동”…징계 거리낄 이유 없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5·18 망언’ 당사자인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가 난항을 겪고 있다. ⓒ뉴시스
‘5·18 망언’ 당사자인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가 난항을 겪고 있다. ⓒ뉴시스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5·18 망언’ 여파는 여전하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5·18을 폄훼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놓고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조경태 최고위원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5·18 망언 논란을 초래한 의원들을 징계해야한다고 주장하자, 김순례 최고위원과 일부 친박(親朴) 중진의원들이 반박에 나서면서다.

이 자리에서 조 최고위원은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변해야 산다고 말씀드렸다. 그 첫 단추가 5·18 (망언)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읍참마속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최고위원은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이 흠결을 가리려고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면서 “그 속에서 우리끼리 설왕설래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도 김 최고위원 감싸기에 나섰다. 홍 의원은 “해당 의원들(김진태·김순례·이종명)이 무슨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확고한 (당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망언과 관련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징계를 놓고 당내에서 파열음이 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런데도 새롭게 한국당호의 키를 잡은 황교안 대표는 “절차에 따라서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영종 당 윤리위원장이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한 것을 근거로, 5·18 망언 당사자들의 징계가 유야무야(有耶無耶)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내놓고 있다.

정치 신인으로서 이제 막 당권을 잡은 황 대표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번 징계 문제를 ‘조용히 묻고’ 지나가고자 하는 마음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아직 당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통해 ‘저력’을 과시한 이들을 강하게 징계할 경우 자칫 당이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 망언은 그렇게 정치적 이유로 덮고 넘어갈 만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당 당사에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건국이념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1983년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독재에 항거하는 23일간의 단식 농성을 벌였던 인물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는 ‘폭동’ 등 부정적 단어로 묘사되던 5·18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를 구속하기도 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5·18 특별 담화문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며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밝히기도 했다. 5·18을 ‘폭동’으로 매도한 것은 자신들의 ‘뿌리’라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인 셈이다.

비단 김 전 대통령만의 뜻이라고도 할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또 “(영화를 보면서)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만들어 광주의 희생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월 30일 국방부가 광주시에 보낸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실 확인요청에 대한 회신’이라는 공문에는 “국방부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보고서 등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좋든 싫든, 지금 한국당을 지탱하는 두 뿌리가 산업화로 대표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민주화의 상징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생을 민주화에 바친 김 전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당이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생각한다면, 5·18 망언에 단호히 대처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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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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