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낡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산으로 가다
[칼럼] 낡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산으로 가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3.09 17: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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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덧없는 세월 이겨낸 마라톤·백두대간 종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오랜 전부터 산을 좋아했다. 제법 큰 친목산악회에 가입해 열심히 따라다녔고, 산행을 이끄는 대장을 맡기도 했다. 당일치기 산행부터 2박 이상을 산에 머무르는 비박이나 종주산행도 즐겼다. 대학시절부터 취미를 삼았던 클래식 카메라와 함께 산을 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아오는 것은 정말 삶의 큰 낙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관리자로서 직장생활을 이어가다보니 젊은 시절과는 달리 주말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주말이면 안팎으로 일도 많았고, 약속도 줄을 이었다. 무엇보다 그냥 쉬고 싶었다. 자연히 산과 멀어졌고, 술과 음식을 절제하지 않은 탓에 체중은 급격히 늘어났다.

키 185cm에 몸무게는 100kg을 넘어섰다. 몸이 불어나면서 허리가 아프더니 급기야는 다리가 저려 오래 걷지도 못하게 됐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등산은 추억처럼 멀어졌고, '이제는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노인네가 되는구나'라며 덧없는 세월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의원에 다니며 허리와 다리 이곳저곳에 침을 맞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난해 산을 함께 탔던 산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술을 한 잔 했다. 내 처지를 한탄스럽게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 나에게 다이어트에 좋다며 마라톤을 권한다. "1Km도 제대로 걷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마라톤을 하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거짓말처럼 마라톤과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지 세 달 만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했고, 그 다음달에는 풀코스에 도전해 완주했다. ⓒ 최기영
운동을 시작한지 세 달 만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했고, 그 다음달에는 풀코스에 도전해 완주했다. ⓒ 최기영

111년 만의 폭염이 찾아왔다던 지난해 여름은 정말 가혹하리만큼 뜨거웠다. 처음 목표였던 5km를 뛰는데 신발까지 흥건하게 물이 찰 정도로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0.1톤의 거구가 팥죽 같이 땀을 흘리며 하천을 힘겹게 달리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웃음이 나지 않았을까? 

한 번 뛰고 나면 다리며 허리에 통증이 심해졌다. 다음날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고통이 반복됐다. 시간이 흘렀고 체중은 90Kg대로 내려오더니 85kg, 그리고 80Kg까지 내려갔다. 약 네 달 만의 변화였다. 

변화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챘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가 아픈 것 아니냐',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밥은 먹고 사냐?' 등 눈에 띄게 수척해진 내 모습에 그들은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고, 힘겨워 보이는 내 모습은 때로는 그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변화를 느꼈다.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조금만 걸어도 고통스러운 통증에 주저앉았던 다리의 저림 증상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몸이 가벼워진 데다, 다리 근육도 어느 정도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하며 그간의 나태함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도 됐다. 

이윽고 다시 등산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낡은 필름카메라를 챙겨 산을 찾아 나섰다. 정말 오랜만에 설악산의 단풍을 봤다. 눈 내린 함백산에 올라 아름다운 설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훨씬 가벼워진 몸과 튼튼해진 다리 덕분에 등산은 이제 고통이 아닌 즐거움으로 다시 내게 돌아왔다.

30대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해방감, 이제야 사는 것 같다는 조금은 거창하지만 삶에 대한 실존적 가치도 진심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크고 멋있는 산을 올라 그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욕구도 점점 더 커졌다.

산을 좀 탄다는 사람들은 지리산 천황봉을 시작으로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그리고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약 1200km의 산길을 30여 구간으로 나눠 주말마다 오른다. 이른바 백두대간 종주 산행 도전이다.

대부분 30km 이상의 험난한 구간인 데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르내리기를 반복해야 되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백두대간 종주는 우리 국토에 대한 사랑이자, 산꾼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런 훈장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 눈 내린 함백산을 올라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었다. ⓒ 최기영
지난 겨울 눈 내린 함백산을 올라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었다. ⓒ 최기영

백두대간은 원래 백두산에서 시작해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쪽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고봉인 한라산은 해발 1950m다. 2000m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면 한라산은 58위봉이라고 한다.

한라산보다 더 높은 산이 57개나 북쪽에 몰려 있고, 그중 2000m가 넘는 봉우리는 백두산 장군봉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56개나 된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종주는 설악산부터 금강산으로 넘어가며 더욱 험난해 지는 것이다. 

얼마 전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나에게도 아쉬운 결과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가장 아쉬운 것은 남북의 왕래가 좀 더 자유로워진다면 북한의 그 수많은 명산을 올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다시 세월이 흘러버리면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일 텐데, 내가 직접 걸어올라 볼 수 있는 산도 그만큼 줄어들 것 같아서 마음은 괜히 급해진다. 

이번 주말에도 산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등산 후에는 언젠가 나의 낡은 카메라도 북한의 명산을 담아 볼 수 있겠지 하는 바람을 핑계 삼아 어딘가에서 거한 뒷풀이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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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9-03-13 00:47:21
산에 가는 다양한 사람들만큼 산에 가는 이유는 다양할것이다 산에서 얻는 안식은 산에서 땀을 흘려본 사람만이 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