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텔링] 고건 전 총리가 대선에 출마했다면?
[정치텔링] 고건 전 총리가 대선에 출마했다면?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9.03.10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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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고건 전 총리와 같은 행정의 달인이 기성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실용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제공=뉴시스
고건 전 총리와 같은 행정의 달인이 기성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실용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제공=뉴시스

고건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정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은 다 경험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까지 최연소 전남지사, 세 번의 장관, 두 차례의 서울특별시장, 두 번의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등 역대 대통령들은 그를 중용했다.
 
고건 전 총리에게도 대권 도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 당시 17대 대선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는 2007년 1월 16일 17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성정치권의 벽이 지나치게 높다며 대선 출마의 뜻을 접었다.
 
만약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던 그가 기성정치권의 벽을 허물고 17대 대선에 출마했다면 대한민국 정치권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 행정의 달인 고건
 
고건 전 총리은 자신에 대해서 “관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자평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에게 관운은 시대적으로 중요한 국가적 과제를 맡는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내무무 지역개발담당관으로 일하며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직접 수립하는 기회를 얻었고 새마을운동을 담당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가로서의 삶이 주로 부각됐지만 국회의원도 경험한 정치인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역임한 정치지망생이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전북 군산·옥구에서 민정당 후보도 출마해 당선됐다.
 
부친인 고형곤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같은 지역구에서 6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어 부자 국회의원이라는 명예를 갖고 있다. 그는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5공 정권의 정치적 격동기에서 민정당 ‘지방자치제도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지방자치제 부활에 기여했다.
 
고건 전 총리는 정권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특급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지자 고건 의원을 내무부장관으로 등용한다. 장관이 되자마자 6·10 민주항쟁이 터졌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가 명동성당에 집결했다. 고건 장관은 끝까지 명동성당 전경 투입을 반대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곧이어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시작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고건을 관선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다. 서울시장 고건은 2기 지하철 공사를 착수했다. 현재의 지하철 5·6·7·8호선은 이때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 민선 서울시장으로 복귀했을 때 6호선이 개통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 말기 한보사태 위기 극복을 위해 행정의 달인 고건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고건 국무총리는 검찰의 한보사태 재수사를 지시해 이를 관철했고, 마침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하는 초강수를 둬 민심의 동요를 막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고건을 가만두지 않았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두 번째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의 대기오염 해소를 위해 CNG 버스, 즉 천연가스버스를 도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초대 국무총리로 고건을 임명했다. 문민정부 이후 두 번째 국무총리직 수행이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2개월여 동안 대혼란의 시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이 되자 고건 대망론이 부상했다. 본인은 ‘대선에 나가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지지하는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1년여의 고심 끝에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기성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DJ가 불출마를 만류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고건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열린우리당, 민주당에들어가 공천지분권이나 즐기면서 구태정치에 몸을 담그기는 싫었다”고 밝혔다.
 
#고건이 17대 대선에 출마했더라면?
 
17대 대선을 2년여 남긴 고건 전 총리는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는 여권의 정동영·손학규, 야권은 이명박·박근혜 등 거물 정치인들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달렸다. 국민은 행정의 달인 고건을 주목했다.
 
고건 전 총리는 1970년대 30대의 나이로 전남지사, 40대 초반에 장관, 두 번의 서울시장, 두 차례의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 권한대행 등 고건을 따를만한 국정 운영자는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개혁하고 싶었다. 새로운 정치·경제·사회의 틀을 만들고 싶었다. 중도실용의 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기성정치권의 중진들보다는 여야의 차세대 주자들과 손을 잡기로 했다. 특히 원희룡, 남경필, 오세훈 등 야권의 차세대 주자들을 만나 새로운 국가 아젠다로 ‘중도실용’을 제시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아무도 가지 않았던 제3의 길을 열기로 했다.
 
이들 차세대 주자들과 기성정치권의 벽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후진적인 정치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국민이 원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함께 만들어갔다.
 
17대 대선은 여권의 정동영, 야권의 이명박, 그리고 제3의 중도실용 후보 고건의 3파전이 펼쳐졌다.
 
합리적 추론- 고건 전 총리가 17대 대선에 출마했더라면? 이라는 가상 상황을 연출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군인 아니면 직업 정치인들이었다. 행정 전문가는 없었다. 고건 이외에도 조순, 정운찬 등 전직 총리들이 대권을 꿈꿨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했다.
 
현재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면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황교안 대표가 비록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만 고건 전 총리처럼 중도실용과 같은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도 총리 출신 대권 실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고건 전 총리와 같은 행정의 달인이 기성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실용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황교안 대표가 대권 도전의 뜻이 있다면 고건 전 총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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