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경섭 “시험관 임신, 한방 병행시 성공률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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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경섭 “시험관 임신, 한방 병행시 성공률 높아”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3.15 11:4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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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경희이경섭한의원 이경섭 원장
"하버드에서 침술 선 보이자 '학장'급 대우로 격상"
"한방·양방 환자 따로 없다…의학계 벽 허물어야"
"한방 우수성, 후배들 논문으로 세계에 증명했으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양방 환자가 따로 있고, 한방 환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환자는 하나고 그 사람에 맞는 치료법이 다를 뿐이에요."

이경섭 강남경희이경섭 한의원 원장이 강조하는 철학이다. 청와대 최초 한방주치의, 미국 하버드 대학 교환교수, 전무후무한 강남경희한방병원장 19년 역임…. 화려한 이력을 쌓는 동안 이 원장은 이미 한국 한의학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수십 년 간 한의학 후배들의 길을 개척했던 그는, 한방·양방의 벽을 허물고 결과로 증명하는 한의학을 주창하며 여전히 일선에 서 있다. 이 원장이 걸어온 길, 그리고 한의학의 미래에 대해 듣기 위해 <시사오늘>은 지난 13일 서울 대치동 강남경희이경섭한의원의 문을 두드렸다.

"양방 환자가 따로 있고, 한방 환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환자는 하나고 그 사람에 맞는 치료법이 다를 뿐이에요."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1세대 한의학 박사다.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원래 난 의사를 지망하는 의학도였다. 의과대학이 몇 개 없던 1966년, 경희대학교에 의예과가 생기며 후기모집을 해서 입학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한의학과였다. 당시 총장이었던 조영식 박사가 내년에 양방 의예과가 생기니, 만약 원하면 전과하라며 재수도 말렸다. 어차피 한의학도 기본적으로 해부학·병리학 등 양방의학도 배우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냥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한의학과의 수업시간이 일주일에 46시간이었다. 의학을 다른 의대처럼 똑같이 공부하고, 거기에 더해 한문과 한의학이론까지 공부해야 했으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살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도망치듯 군대를 갔다. 당시엔 한의사는 군의관제도도 없어서 그냥 사병으로 갔는데, 그 3년 동안 세상이 변했다. 닉슨대통령이 중국에 가고 미중외교가 시작되면서 침술마취가 알려졌는데,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한의학과 침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대할 무렵에는 한의학 붐이라고 할 정도로 한의사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체계도 생기고 나는 최초의 한방 정규대학교 출신이 된 거다. 해야할 일이 워낙 많은데 사람은 부족하다 보니 정신없이 공부와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부인과가 전공이다. 당시엔 생소한 과목이었을 텐데.

"교수들이 나를 괜찮게 봤었는지, 내과나 다른 과목에서도 제의가 왔다. 그런데 당시 내 지도교수였던 분이 부인과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내게 상당한 신뢰를 줬었다. 조교도 시키고, 자신이 바쁠 때는 대강(代講)도 들어가라고 했을 정도다. 그분의 권유로 부인과를 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배운것도 많았다."

-한방병원 1세대기도 하다. 과거 한의원과 달랐던 점은.

"한방 문헌에는 있는데 본 적 없었던 한방병원에서 질병들을 많이 접했다. 한방병원은 서양식 장비가 어느정도 있고, 내겐 양의학의 지식도 있었기 때문에, 한방 문헌의 자료들을 접목시켜가면서 하나씩 치료법을 찾아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붕루'라는 증상이 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출혈이라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나. 그러다 한번은 자궁암 말기의 입원환자가 야간에 출혈이 심하다고 해서 급히 달려갔었다. 엄청난 출혈인데 소독포로 틀어막은게 버티지 못하고 튀어나와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쓸 정도였다. 그때 아, 이게 바로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출혈'이구나 생각했다. 보통 수혈로는 안돼서 혈압계 튜브로 짜듯이 수혈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것은 한의학과가 생기고, 대학병원이 생겨서 가능했던 일들이다. 내 세대에 부인과 뿐 아니라 한의학 전체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자궁암 같은 질병들도 문헌에 나오나.

"물론이다. 단어는 다르지만, 5천 년 전 문헌을 조사하다보면 자궁근종이나 그런 증상들도 다 기록돼 있다. 다만 몇몇은 치료법이 없다. 치료가 된다는 약이 많이 기록된 것은 어떤 약이고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질병들을 임상으로 확인하고, 실험으로 치료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한의학의 숙제였고, 여전히 풀어나가는 중이다."

"한방에 '양정조경'이라는 말이 있다. 여자에겐 조경, 즉 생리 리듬을 조정해 근본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환경으로 여성의 몸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방치료로 이를 도와줄 수 있다. 시험관 시술등을 할 때, 한방을 병행하면 임신률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방에 '양정조경'이라는 말이 있다. 여자에겐 조경, 즉 생리 리듬을 조정해 근본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환경으로 여성의 몸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방치료로 이를 도와줄 수 있다. 시험관 시술등을 할 때, 한방을 병행하면 임신률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최근 한방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부인과 치료는 무엇인가.

"난임, 불임의 치료다. 최근 난임의 원인으로 대두된 다낭성 난포증후군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호르몬의 문제다. 호르몬 문제가 야기한 생리불순이나 생리통, 자궁내막의 문제점 등이 결국은 난임이나 불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한방에 임신의 근본으로, '양정조경'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에겐 양정, 쉽게말해 정자를 키워주는 것이고, 여자에겐 조경, 생리 리듬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 공식이다. 조경을 위해 호르몬 등, 근본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환경으로 여성의 몸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방치료로 이를 도와줄 수 있다. 시험관 시술등을 할 때, 한방을 병행하면 임신률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연구를 많이하고, 논문을 많이 쓰는 한의사로 유명했다. 하버드 의대의 교환교수 초청을 받은 계기도 그래선가.

"하버드에서 처음에는 한의학이 아니라 중의학 지원자들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의학자들의 논문이 재연성이 없다는 거다. 즉, 발표한 논문대로 똑같이 치료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논문의 재연성이 확실한 내게 초청이 왔다. 처음에는 평범한 손님대접을 받았다. 그러던 중 독일에서 온 수의과 교환교수가, 실험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진통제 연구를 하는데 개 발바닥에 진통제를 바른 뒤, 열을 쬐는 방식이었다. 개가 발이 뜨거우면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침을 놓고, 그 사람은 진통제를 발랐는데 침을 맞은 개가 10도 이상을 더 견디는 거다. 어느날 출근했는데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 친구가 소문을 내 줘서, 다들 내게 먼저 인사를 하고 다가왔다. 학장 옆에 방도 얻어주고, 비서도 같이 쓰게 해주고, 실험실도 내주는 최상급 대우를 해주더라. 그리고 신경마취, 진통계열 연구에서 침의 효과를 강의해달라고 했다. 영어가 비교적 짧으니 강의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날 쉬운 방법을 찾았다. 맨 앞자리에 앉은 프랑스 여자 교수가 목을 자꾸 트는 것이 보이기에 '목이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혈을 눌렀더니 아프다고 자지러지더라. '내가 침을 놔줄까'라고 물었더니 남자들은 무서워하는데 그 여교수는 앉은 자리에서 맞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침을 놨더니 한시간 동안, 강의도 필요없이 자신들끼리 토론을 하더라. 그게 또 효과가 있어서 필라델피아에서도 강의 초청이 와서 중간에 다녀왔고, 귀국할 때 우리 다른 교수들을 보내주기로 하고 초청장을 무더기로 받아왔었다."

-강남경희한방병원장을 오래 맡기도 했는데.

"보통 대학병원이 2년마다 병원장이 바뀌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드문 사례다. 19년을 했으니, 다들 주변에선 내 병원인줄 알고있더라. 하하. 1998년에 강남지역에 한방병원이 없다고 하면서 학교에서 한방병원을 지었다. 내가 책임자가 되면서, 젊은 교수들만 데리고 나와 의기투합했다. 경영전문가들이 4~5년은 적자를 볼 것이라고 했었는데, 3년 반만에 투자금을 전부 갚아줬다. 병원이 흥하는 길은 다른 게 없다. 환자가 잘 치료되면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치료하고 ,연구하고, 그 결과가 좋다 보니 흥할 수 밖에. 한방의 쇠퇴가 오면서 19년 만에 학교측이 방침을 정해 문을 닫기로 결정했지만, 그 전까지 치료받은 환자들은 대부분 아주 만족했다."

-한방의 쇠퇴 원인은 뭐라고 보나.

"아무래도 수가(受價)문제가 있다. 의료보험이 발달하면서 역으로 한방의 수가가 높아졌다. 가격이 비싸니 아무래도 환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이는 제도적으로 바꿔야 할 문제고, 다른 쪽으로는 양방과의 공존이 있다. 사실 치료에 한방, 양방 선을 그으면 안되는데 자꾸만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서모그라피라는 체열진단기가 있다. 걸프전 때 개발됐다가 의료용이 된 열감지 기구다. 한방진료 중에 몸이 차서 오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 서모그라피를 쓰면 보다 세밀하게 어디가 찬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걸 가지고 진단하는 한방의 활용법을 만들고, 냉증의 진단법에 대해 세계 학회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한방이 양방 기계를 쓴다'고 해서 보건복지부에 고발건이 들어갔다. 내가 논문을 제시해서 양방의 체열의학회에서 한방진단에도 쓸 수 있는 기계다라는 인증, 복지부의 유권해석도 받아서 해결했다. 사람을 치료하는데 도구를 가려쓰는 것이 어디있나. 이런 것들이 해결돼야 한다."

-한의학의 미래를 위한 조언인가.

"지금 배우는 학생들이나 제자들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양한방에 선을 긋지 말라고 한다. 부인과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한방 여성이 있고, 양방 여성이 있는가. 여성은 여성이다. 치료에 양방치료, 한방치료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한의학은 양방과목을 기본적으로 배우고 나서 또 한방을 배운다. 그런데 양한방의 벽을 쌓아놓고 있으면 안된다. 동서협진이 필요하다."

"한의학의 우수성을 논문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효과 있다는 이야기는 말로 해도 소용이 없다. 증거를 남겨서 입증해야 의사들도, 대중들도 인정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향후 한의학이 나아갈 방향은.

"한의학은 예방의학에 강점이 있다. 병은 걸린 뒤에 잘 치료하는 것보다, 걸리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걸릴 가능성이 있는 병을 미리 사전에 몸을 강하게 해서 예방할 수 있다. 면역력을 기르고, 약한 것을 보하는 것이다.
또한 한의학의 우수성을 논문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효과 있다는 이야기는 말로 해도 소용이 없다. 증거를 남겨서 입증해야 의사들도, 대중들도 인정한다. 세계로 나가서 한의학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의학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의 한의학이 있는데, 지금 외국사람들은 중의학으로 알고있다. 세계 학회도 중국이 잡고있다. 그런 곳에서 떳떳하게 발표하려면 정확한 논문이 필요하다. 한방이든 양방이든 똑같다. 의사는 치료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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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찬 2019-03-18 15:35:36
훌륭한 분 인터뷰 글 너무 좋습니다. 양한방이 벽을 쌓으면 안되고요. 우리 한의학이 중국한방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경인 2019-03-15 21:24:00
예방은 한방이, 치료는 양방이.
저출산 시대에 양방 '시험관 아기'는 비용도 많이 들고 아주 고통스럽다는데요.
한방으로 불임이나 난임여성들, 가족들에게 희소식이 되겠네요.
희망적인 정보 고맙습니다.

박난희 2019-03-15 12:18:46
한방의 여성과 양방의 여성이
아닌 여성은 여성이란 의미가 와 닿네요.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의학계가 나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