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밀렸는데 연말정산도 못 받아 …두 번 우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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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밀렸는데 연말정산도 못 받아 …두 번 우는 노동자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3.15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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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로 생활고 겪는데 환급금도 못 받아 '울상'
월급 못 받았는데 세금 토해내는 이상한 소득세법
체불노동자 중 대부분이 저소득…제도 개선 절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1. 경북 지역의 한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 A씨는 회사 사정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지만 지난달에는 13월의 보너스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아무리 월급이 밀려도 연말정산 환급금은 마땅히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월급은 물론, 환급금조차 주지 않았다. A씨는 관할 노동청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지만 사업주는 배째라 식 태도였고, 결국 체불임금과 환급금을 받을 수 없었다.

#2.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B씨는 지난달 연말정산 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받고 깜짝 놀랐다. 사업주의 상습적 임금체불로 지난해 월급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수십만 원의 소득세를 더 내야 했기 때문이다. B씨는 국세청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현행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임금체불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국세청 등 관계당국의 무관심과 법 제도의 미비로 인해 연말정산 때도 울상을 짓고 있다 ⓒ pixabay
임금체불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국세청 등 관계당국의 무관심과 법 제도의 미비로 인해 연말정산 때도 울상을 짓고 있다 ⓒ pixabay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시름이 여느 때보다 깊어진 가운데, 비합리적인 연말정산 제도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임금체불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연말정산 환급금
국세청의 안이한 대응, 성실납세자 울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6472억 원, 체불노동자는 35만1531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체불노동자 대부분은 연말정산 환급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임금체불 회사는 사정이 어려운 만큼, 세금 체납으로 세무당국이 환급금을 체납처분하거나, 환급금을 수령한 사업주가 이를 유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사례1처럼 체불노동자들이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한 실정이다. 연말정산 환급금은 국세보다 후순위 채권이어서 국세청이 환급금을 체납처분할 시 보호받을 수 없고, 임금체불 문제와 묶어서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사업주가 재산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형사와 별개로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본지의 취재 결과 세무 공무원들은 체불노동자들에 대한 연말정산 환급금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넘길 뿐, 국세환급금 권리 양도제도 등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 ⓒ 국세청
본지의 취재 결과 세무 공무원들은 체불노동자들에 대한 연말정산 환급금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넘길 뿐, 국세환급금 권리 양도제도 등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 ⓒ 국세청

국가 차원의 구제책 역시 전무한 상황이다. 연말정산 환급금은 임금에 해당되지 않아 사업주 대신 정부가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체당금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연말정산 환급금을 노동자가 직접 지급받을 수 있게 하는 '국세환급금 권리 양도제도'가 있지만, 이는 사실상 사문화된 모양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국세환급금에 대한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하기 위해서는 세무서장이 국세환급금 통지서를 발급하기 전에 임금체불 사업주가 국세환급금 양도요구서를 소관 세무서장에 제출해야 한다. 임금을 체불한 회사의 사업주가 나서서 환급금 권리를 노동자에게 넘겨줄리 만무하다.

관계당국의 안이한 태도 역시 체불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양새다.

〈시사오늘〉은 심층취재 차원에서 체불노동자로 가장해 국세청 국세상담센터에 연말정산 환급금 문제에 수차례 문의해 봤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연말정산 미환급은 급여 미지급에 해당해 국세청이 답변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의 안내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국세환급금 권리 양도제도'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공무원도 해당 제도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이 태반이었다. 

매월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죄밖에 없는 납세자들이 국가로부터, 국세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월급 못 받았는데 소득은 인정?
환급금 문제 외면한 당국, 세금 때리기 바빠

연말정산 환급금을 못 받은 체불노동자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앞서 제시한 사례2와 같이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세금을 더 토해내야 하는 체불노동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세법 제135조에서는 '근로소득을 지급해야 할 원천징수의무자가 1월부터 11월까지의 근로소득을 해당 과세기간의 12월 31일까지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근로소득을 12월 31일에 지급한 것으로 봐 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근로소득의 지급시기 의제'라고 한다.

해당 법에 따르면 사업주의 임금체불로 월급을 수령받지 못해도 노동자는 연말이 되면 마치 월급을 받은 것처럼 소득세를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소득이 없더라도 그 소득에 대한 채권이 확실하다면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세소득을 계산하는 '권리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 지급시기 의제에 대한 국세청의 설명 ⓒ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근로소득 지급시기 의제에 대한 국세청의 설명 ⓒ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비상식적인 논리가 법제화된 이유는 세수를 위해서다. 국세청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근로소득의 지급시기 의제에 대해 '근로의 제공으로 근로소득은 발생했으나 미지급한 경우, 월별 원천징수시기·연말정산시기를 확정함으로써 원천징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금을 돌려줘야 할 때는 임금체불 문제라며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미룬 국세청이 세금을 매길 때는 존재하지 않는 소득에까지 집중하는 셈이다.

물론, 이 경우 구제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현행법에서는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납세고지서를 받았을 시 납세자 권리구제 차원에서 '심사청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체불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과정이다. 복수의 판례를 살펴보면 해당 제도를 통해 근로소득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한 관계당국의 처분을 취소시키기 위해서는, 체불노동자가 직접 임금체불 사실을 증명하고, 임금체불 회사의 결손금 등 근로소득에 대한 채권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체불노동자 중 대부분이 저소득…제도 개선 절실

문제는 연말정산 환급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체불노동자도, 월급을 받지 못했음에도 소득세를 내야 하는 체불노동자도 대부분 생계가 어렵고, 한 푼이 아쉬운 저임금 노동자라는 데에 있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쏟아지고 있다. 우선, 연말정산 환급금도 임금으로 보고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우선변제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세무당국의 채납에 앞서 노동자에게 환급금이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연말정산 환급금에 우선변제권을 적용해도 사업주가 유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세환급금 권리 양도제도를 개편해 환급금을 노동자가 직접 지급받을 수 있도록 신청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납세자를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차원에서 연말정산 환급금을 체당금 제도에 포함시키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아울러, 체불노동자에게 소득세가 과세되는 경우에는 고용노동부 등과의 연계를 통해 임금체불 기간과 규모에 따라 소득세 과세 적용을 달리하고, 심사청구 시 근로소득에 대한 채권의 실현 가능성 여부의 입증 책임을 국세청에 물을 필요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와 관련, 윤성기 태성세무회계 세무사는 "연말정산 환급금 또는 징수세액은 납세 의무를 지는 노동자의 권리 또는 의무에 해당한다. 단순히 회사가 원천징수이행상황신고서에 일괄적으로 반영해 임금으로 정산할 게 아니라, 지급명세서 제출 시 노동자 본인의 개인계좌나 납부서를 만들어 권리 또는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즉, 회사는 노동자 원천세를 징수해 납부하는 것으로 의무의 범위를 좁히고, 연말정산분의 반영은 이행상황신고서가 아닌 지급명세서 자체로 종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어려운 체불노동자들에게 당장 금전적 손해를 보게 만드는 현행법 자체가 문제다.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라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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